정체성은 어디서 왔을까?

엄마아빠는 다 계획이 있었군요!

by 속눈썹

머릿속을 맴도는 말을 뱉어보면 은근 노래가 된 경우가 있다. 나는 좀처럼 움직이지 않는 몸을 꾸역꾸역 일으켜 세우며 땅을 짚고 일어서 나지막하게 웅얼거린다.

"할. 수. 있. 어."

그런데 그 뒤에 자동으로 "사랑한다는 말도 널 그리워한다는 말 내 주위에서 항상 맴돌고 있어~~"하고 이상한 전개가 이어지는 거다. 그러고 보니 사랑과 그리움에 용기 냈던 때는 언제였더라 하면서 과거회상을 하다가 푸드득 까마귀 날개짓을 하며 상상의 나래를 흐트려버린다. 그게 아니잖아. 내 말은... 할 수 있어! 나도 미니멀라이프 할 수 있다고~~

언젠가 만화를 그리고 싶다고 말하면서 절대 만화를 그리지 않는 내게 '왜 인생을 그렇게 불편하게 사는 거야?'라고 남편이 물어봤다. 그냥 '만화를 그리지 않는 건 지금 내가 만화를 그리고 싶지 않기 때문이야.' 라고 인정하면 편안해질 텐데 굳이 마음과 행동의 부침을 만들어 고뇌하는 내가 이해할 수 없었다고 한다. 남편의 말은 그럴싸하지만 전혀 매력적이지 않았다. 그냥 신포도를 바라보는 여우가 될 상이랄까. 그래서 나는 여전히 불편하게 살고 있다. 나를 기이하게 바라보는 남편과 함께. 할 수 있다고 외치면서...

근데 여태껏 해내지 못한 일을 할 수 있다고 믿는 근거는 뭘까? 남편은 내가 할 수 없다고 결론 내렸기 때문에 그냥 나의 '불편한 마음'에 주안점이 가 있지만 나는 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불편한 마음'보다 '만화를 완성한 기쁨'에 더 주안점이 가있어서 서로 이해가 잘 안간다. 그야말로 남편은 현재, 나는 상상하는 미래를 살고 있는 것. 그렇게 고민하다보면 머리가 복잡해져서 에잇! 해보면 돼지. 해보면 할 수 있었는지 못하는지 알 거 아니야. 하면서 두 손을 걷어 부치고 행동에 나선다. 내 행동력의 일등공신 '호기심'이 발동하면서.

심리학에서는 '정체성'이 행동에 영향을 굉장히 많이 끼친다고 한다. 그래서 이 '정체성'을 잘 활용하면 스스로 원하는 방향으로 움직이는데 도움이 된다. 내가 방금 '호기심이 강한 사람'으로 나의 정체성을 설정한 것처럼 '호기심이 강한 사람'은 '호기심'이 발동하는 순간 불나방처럼 뛰어들 수밖에 없는 상황이 조성된다. 마찬가지로 금연을 시도한다면 '나는 절제력이 강한 사람'으로 정체성을 설정하여 '절제'가 필요한 순간 '절제력을 발휘'할 수 있다. 회사나 가족처럼 집단 속 관계에서 정체성은 더욱 강력하다. '엄마'라는 정체성이 사회적으로 의미 하는바는 '돌봄 노동의 주체'인 경우가 많다. 그래서 아무개 엄마로 불리는 순간, 돌봄의 책임이 더 강하게 전달된다. (이 때문인지 동물병원에서도 동물보호자에게 엄마아빠를 붙이는 경우가 많다.) 거기에다가 수식어로 '변호사','건축가','바리스타' 등의 직업적 특성을 붙이거나 '살림하는','공부하는','기획하는' 등의 특징을 붙이면 기존 정체성에 개성이 생긴다. 그럼 자연스럽게 정체성에 걸 맞는 행동을 하게 된다.

그렇다면 우리는 자신이 원하는 모습의 정체성을 갖고 있을까?

우리가 인지하는 정체성은 언제 어떻게 생겨난 걸까?

'호기심이 많다.'는 정체성은 사실 유년시절부터 줄곧 주변에서 들었던 평판이다. 어려서부터 ‘무슨 질문이 그렇게 많냐’는 핀잔 아닌 핀잔과 말대답한다는 꾸지람을 꾸준히 들어왔다. 화실선생님은 내가 하루 종일 질문을 한다며 (그래봤자 수강시간은 2시간인데) 엄지 척했는데, 미술학원선생님은 이런 식으로 계속 질문을 하는 건 권위에 대한 도전이라고 엄포를 놓았다. 난 그냥 궁금했을 뿐인데 질문을 많이 하는 게 무례하고 불쾌할 수 있다는 걸 천천히 인지하면서 자연히 혼자 자문자답하는 시간 늘었다. 덕분에 좀 외골수적인 기질이 있다. 문제가 생기면 동굴 안에 파고들어가서 혼자 북 치고 장구치고 나오는 건 질문이 조심스러운 문화와 내성향이 부딪혀서 생긴 것 같다. 하지만 그 때부터 글을 더 많이 썼다. 혼자 홈즈가 되어서 내가 궁금한 것의 가설을 세우고 그게 맞다면, 아니라면 하고 상상의 나래를 펼친다. 그러다보면 픽션의 세계로 흘러흘러 들어가게 된다. 그리고 공부는 저 멀리로.

내가 인지한 내 정체성은 내가 원했던 게 아니라 주변에서 심어준 경우였다. 만약 주변에서 나를 보고 과묵한 아이라고 했다면 나는 어디서든 분위기를 살피고 진중하게 행동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속해서 호기심이 많다는 말을 주입받았기 때문에 발랄한 망아지처럼 이것저것 물어보는데 주저함이 없고 계속해서 호기심을 발산했던 게 아닐까. 어떤 자극은 행동을 강화하니까 말이다.

그래서 생각한 건데, 만약 '미니멀리스트'가 되고 싶다면, 먼저 마음으로 나를 그런 사람으로 규정해보자. 미니멀리스트가 되고 싶은 궁극적인 목표는 내가 중요한 것에 온 힘을 다하는 사람이고 싶기 때문이다. 그러기 위해서 부수적인 것의 관심을 줄이고 손이 덜 가게끔 하기 위해 나는 내 주변이 정돈되고 간소화되길 원한다. 에너지를 집중하고 싶은 마음은 사랑하는 것에 대해 더욱 애정을 쏟고 싶은 덕후의 마음이기도 하다.

어제는 퍼즐놀이를 한다고 아이가 자지 않자, 남편이 아이의 의사를 타진하지 않고 그냥 불을 꺼버렸다. 그리곤 예상한대로 우리 빌라는 아이 울음소리로 건물이 흔들렸다. 아이는 세상 억울한 독립투사가 되어 울먹이며 '이 퍼즐을 다 맞춰서 엄마에게 보여주고 싶었는데 아빠가 불을 껐다.'며 아빠의 만행을 고발했다. 나는 아이를 토닥이며 ‘많이 속상 했겠다’를 주문처럼 반복했다. 그리고 아이에게 아빠는 밝으면 눈이 부셔서 잠을 못자는 사람인데 네가 퍼즐놀이를 계속하면 아빠는 잠을 못자서 그러니 아빠가 잘 수 있게 도와주는 건 어떤지 물어봤다. 그래도 아이는 흐느끼며 분이 풀리지 않자, 이렇게 재미있는 퍼즐놀이를 어린이집 친구들과 함께 하면 더 신나겠다며 내일은 어린이집에 이 퍼즐을 들고 가보자고 제안했다. 그러자 자기가 생각해도 재밌을 것 같은지 울음을 그치고 그렇게 하자고 약속했다. 그 이후론 어린이집에 가서 많이 놀려면 일찍 자야한다는 전개가 쑥쑥- 아이를 자리에 뉘이고 말했다.

"엄마는 네가 좋아하는 걸 열심히 재밌게 하는 아이라서 참 좋아. 앞으로도 그렇게 좋아하는 걸 열심히 재밌게하는 아이로 자라주렴."

아- 나도 아이에게 내가 원하는 정체성을 심어주고 있었다. 내 호기심에 대한 정체성은 우리 부모님의 큰그림이 아니었을까 잠시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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