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연시, 시간의 매듭을 묶으며
25년의 마지막날, 소란한 중력에서 발견한 성좌
2025년의 마지막 날은 유독 투명한 추위를 머금고 있었지. 달력의 마지막 장이 바람에 파르르 떨리는 소리를 내며 넘어가는 무렵에, 방학을 맞은 아이와 함께 놀이기구로 가득한 잠실의 거대한 성(城)으로 향했다. 졸업이라는, 인생의 첫 번째 커다란 마침표와 시작점을 앞둔 아이에게는 마음의 결이 닮은 세 명의 친구가 있다. 스스로를 '네잎클로버'라 명명한 아이들. 그 행운의 상징 같은 이름을 지키기 위해 부모 대표로 기꺼이 오늘의 뒷바라지꾼이 되어 아이들의 그림자 뒤를 따랐다.
호기롭게 달려가 맞이한 오픈런의 현장은 소란한 욕망과 들뜬 설렘이 뒤섞인 도가니. 화려하게 돌아가는 어트랙션들의 굉음과 중력을 거스르는 속도감은, 이제 겨우 세상 밖으로 고개를 내미는 아이에게는 너무 가팔랐던 모양이다. 몇 번의 회전을 견디지 못한 아이는 안색이 창백해진 채 어지러움과 울렁임을 호소했다. "숨을 쉬기가 힘들었어요." 그 가냘픈 목소리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지만 정작 아이를 다시 일으켜 세운 것은 부모의 안절부절못함이 아니라 친구들의 고요한 손길이었다.
자신들도 무척이나 타고 싶은 기구가 많았을 텐데. 세 아이는 약속이라도 한 듯 내 아이의 양손을 꼭 맞잡는다. 화려한 놀이기구가 주는 자극보다 곁에 있는 친구의 박동을 느끼는 쪽을 택하던 아이들. 점심과 저녁 먹을 시간조차 잊은 채 '네잎클로버'는 거대한 유원지의 구석구석을 서로에게 의지하며 흘러 다녔다. 마치 우주를 유영하는 작은 별들의 군무처럼.
돌아오는 길, 어둠이 짙게 내려앉은 차창 밖으로 도시의 불빛들이 길게 꼬리를 물며 흘러간다. 차 안에서 피곤에 몸을 맡기거나 혹은 생각에 잠긴 아이들에게 가슴속에 고여 있던 말을 건넸다. "가깝고 먼 미래의 어느 날 오늘을 돌아보면 말야. 이 순간이 은하수처럼 점점이 박혀서 너희의 밤을 밝혀주는 이야깃거리가 될 거야." 철부지 어린아이인 줄만 알았던 녀석들은 어느덧 훌쩍 자라 말속에 담긴 축복의 무게를 이해한다는 듯 고요히 고개를 끄덕인다. 몸의 키보다 마음의 결이 먼저 자라나고 있었음을 확인한 대견하고 시린 하루.
속초의 파도와 서울이라는 엉뚱한 좌표
새해의 둘째 날 동해로 향했다. 굳이 장엄한 해돋이를 눈에 담아야 한다는 강박은 없었다. 그저 묵은해의 먼지를 털어내고, 광활한 수평선 앞에 우리의 존재가 얼마나 작은지, 동시에 얼마나 자유로울 수 있는지 확인하고 싶었을 뿐. 오랜만에 마주한 속초의 바다는 여전히 푸르고 웅장했지. 파도는 쉼 없이 밀려와 모래 위에 쓰인 지난날의 근심을 쓸려냈고, 아내와 아이의 손을 잡고 수평선을 향해 낮은 기도를 올렸다.
"그저 우리 가족에게, 그리고 우리 주변에 좋은 일만 깃들기를."
추위에 얼어붙은 몸을 녹이기 위해 들른 유명한 막국수 가게는 소문대로 인산인해였다. 긴 기다림 끝에 마주한 메밀의 향기는 구수하고도 담백했다. 허겁지겁 들이켜고 나니 허기가 가시고 세상의 온기가 느껴졌다. 기분 좋게 계산대로 향하니 투박한 손마디를 가진 주인장이 넌지시 인사를 건네며 묻는다.
"어디서 오셨어요?"
나는 그 질문을 출발지에 대한 물음으로 받아들였다.
"서울서 왔습니다."
망설임 없는 나의 대답에 주인장은 짐짓 머쓱한 표정으로 헛기침을 하며 말했다.
"아니, 그거 말고... 어느 테이블 손님이시냐고요."
아뿔싸. 삶의 거창한 질문에만 익숙해진 나머지 정작 내가 지금 서 있는 구체적인 자리(Table)를 잊고 있었구나. 이 엉뚱한 문답을 가족들에게 들려주니 차 안은 금세 웃음꽃이 피어난다. 완벽하게 준비된 감동보다 이런 사소하고도 민망한 에피소드가 우리 삶의 여백을 더 풍성하게 채운다는 것을 다시금 깨닫는다. 우리는 서울에서 왔지만, 결국 이 테이블 저 테이블을 거쳐 가며 저마다의 허기를 채우는 나그네들인 셈이겠지.
비워진 시간, 그리고 채워지는 삶의 함량
속초에서 돌아오는 길, 예기치 못한 충격이 차체를 흔들었다. 신호에 멈춰 서 있던 우리를 뒤차가 무방비하게 들이받은 것. 가벼운 접촉사고였지만 사고의 충격보다 더 당혹스러웠던 것은 가해자인 택시기사님의 태도. 사과 한마디 없이 누구보다 뻔뻔하게 목소리를 높이는 그를 보며, 새해의 상서로운 기운이 단숨에 휘발되는 기분이었달까.
사고를 수습하는 며칠 동안 모래시계에서 빠져나가는 모래알처럼 시간이 속절없이 흩어졌다. 병원을 오가고, 차를 수리센터에 맡기고, 보험사와 지루한 행정적 대화를 나누는 과정들. '왜 하필 내 귀한 시간을 이런 일에 써야 하나'라는 억울함이 가슴 밑바닥에서 고개를 든다. 하지만 그 비워진 시간의 틈 사이로 스며드는 생각 한 줌.
크게 다치지 않았으니 다행이라는 안도, 그리고 생각지도 않게 들어온 합의금이라는 물질적 보상. 그것을 단순히 액땜이라는 단어로 갈무리하기엔 무언가 부족하지 않나. 어쩌면 삶의 균형 감각에 관한 문제이겠구나. 우리가 정직하고 바르게 살려고 애쓴다면 삶은 어떤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든 우리의 비워진 바구니를 다시 채워주신다는 믿음. 내가 잃어버린 시간의 함량만큼 삶은 다른 형태의 위로로 내 곁에 머무른다. 비워져야 채워질 수 있다는 그 오래된 역설을 길 위에서 몸소 겪어내었구나.
아이의 문장, 그리고 나의 부끄러운 채근
다시 일상으로 돌아와 방학을 맞은 아이의 책상 맡에 앉는다. 아이는 산더미 같은 숙제 앞에 쩔쩔매고 있다. 아이가 붙들고 있는 문제집의 문장들은 초등학생이 감당하기엔 단어도, 문맥도 지나치게 껄끄러웠다. 답이 계속 틀리는데도 포기하지 않고 머리를 쥐어짜며 책상을 지키는 아이. 그 가느다란 뒷모습을 보는데 왠지 모를 애잔함이 밀려온다.
아이 곁에 바짝 다가앉아 낮은 목소리로 문장을 해부하기 시작했다. "이 단어는 이런 뜻을 품고 있어. 그리고 문단은 마치 기차의 객차와 같아서, 앞 차가 끌어주면 뒤 차가 따라가는 법이야." 평소 글을 대하고 문장을 조립하던 방식과 다르게 조곤조곤 설명을 이어갔다. 그러자 생기는 놀라운 변화. 아이는 마치 마른 스펀지가 물을 빨아들이듯 설명을 흡수하고 금세 문장을 대하는 눈빛이 달라진다. 막막해하던 펜 끝이 명료한 궤적을 그리며 답을 찾아감을 본다.
그 순간 부끄러움에 휩싸였지. '책을 그렇게 많이 읽는데 왜 이런 문제를 못 풀까'라며 마음속으로 은근히 아이를 채근했던 지난날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간다. 책을 읽는 행위는 숲을 거니는 산책과 같고 문제를 푸는 것은 그 숲에서 길을 찾는 지도 읽기와 같은 것인데. 나는 아이에게 지도 읽는 법을 가르쳐준 적도 없으면서 왜 길을 헤매느냐고 윽박지르고 있었구나. 이렇게나 쑥쑥 자라나고 부모의 언어를 그대로 닮아가고 있는 아이였는데. 아이의 성장을 기다려주지 못한 나의 조급함이 겨울바람보다 더 차갑게 느껴졌다.
삶이라는 거대한 문장을 쓰는 법
2025년의 끝과 2026년의 시작을 관통하며 겪은 이 짧은 단상들은, 결국 작고 사소하지만 소중한 단어들로 수렴된다. 롯데월드의 환상적인 불빛 아래서 서로의 손을 놓지 않았던 아이들의 우정은 '사랑'으로, 속초 식당에서의 엉뚱한 대답은 '현재'라는 단어로, 예기치 못한 사고의 수습은 '인내'와 '보상'으로. 그리고 아이와 함께 나란히 앉아 문제를 풀던 시간은 '이해'라는 이름의 가장 아름다운 마침표가 된다.
우리는 살아가며 수많은 사고를 겪고, 엉뚱한 대답을 하며, 때로는 숨이 차는 어트랙션 위에서 어지러워한다. 하지만 그 모든 순간이 모여 우리 삶이라는 은하수를 이루는 것이겠지. 이제 나는 아이와 "어떻게 함께 걸어갈까"를 고민해야겠고.
아이의 책상 위에 놓인 빈 공책처럼
이제 2026년이라는 시간의 지면이 모두에게 놓인다.
그 위에 우리가 써 내려갈 문장들이
때로는 비틀거리고 오타가 날지라도
서로가 서로에게 다정한 교정자가 되어준다면
그보다 더 근사한 에세이는 없을 것이다.
아이의 손바닥에서 느껴지던 온기를 기억하며
다시 펜을 들어 올린다.
우리의 은하수는 이제 막 빛나기 시작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