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춘단은 실제 인물이다.
세상의 모든 발자국은 제 주인의 몸무게보다 깊게 파이기 마련이지만 어떤 삶은 평생을 걸어도 그림자조차 남기지 못할 만큼 투명하게 취급받는다. 박지리의 소설 『양춘단 대학 탐방기』를 읽으며 내가 가장 먼저 마주한 것은 화려한 캠퍼스의 조경 뒤에 숨겨진 그 투명한 존재들의 서늘한 온기였다. 이 글은 단순히 한 노인이 대학에서 청소부로 일하며 겪는 소동극이 아니다. 그것은 대를 이어 내려오는 가난과 무지, 그리고 그 질긴 고리를 끊어내기 위해 밤마다 코끼리 석상의 배를 두드리던 어느 노년의 처절하고도 거룩한 성찰에 관한 기록이다.
박지리라는 작가는 우리 곁에 분명 존재하지만 눈에 보이지 않던 이들을 지독하게 현실적인 감각으로 길어 올리는 재주가 있다. 스물아홉이라는 젊은 나이에 이토록 농익은 서사를 풀어냈다는 사실보다 놀라운 건, 해방 전후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우리 현대사의 굴곡을 ‘양춘단’이라는 한 여성의 몸에 고스란히 통과시켰다는 점이다. 그녀의 문장은 세련된 수사 대신 흙먼지 묻은 투박한 진심을 담고 있다.
배움의 문턱에서 만난 거대한 돌의 세계
양춘단에게 '대학'은 물리적 공간을 넘어선 성소(聖所)였다. 초등학교도 채 마치지 못한 채 동생들을 돌봐야 했던 그녀에게 배움은 평생의 허기였다. 65세의 나이에 대학 청소노동자가 되며 내뱉은 "춘단이 오늘 대학교 댕겨왔습니다"라는 말은, 보란 듯이 성공했다는 선언이자 동시에 박탈당했던 세월에 대한 뒤늦은 복수였다.
하지만 그녀가 마주한 대학은 상아탑의 숭고함보다는 그들만의 리그이지 않았던가. 미화원들은 학생들의 발등 위로 겹쳐지는 작은 그림자일 뿐이었고 더러운 것은 싫어하면서 청소하는 손길은 외면하는 기만적인 공간이었다. 춘단은 그곳에서 석공이었던 아버지 양호익을 떠올린다. 무지한 돌을 깎아 부처를 만들고 예수를 만들던 아버지. 아버지가 새긴 예수의 얼굴에는 고통과 슬픔이 서려 있었지만 사람들은 그 앞에서 제 복을 빌기 바빴다. 춘단은 깨닫는다. 세상은 진실을 눈앞에 보여줘도 볼 의지가 없는 이들에겐 그저 황무지에 불과하다는 것을.
이상(理想)은 배부른 자들의 만찬인가
소설 속 하숙생과 시간강사 한도진의 죽음은 춘단의 삶에 균열을 낸다. 살아본 적 없는 세상을 그리워하는 것을 이상이라 부른다는 청년의 말에 춘단은 묻는다. 그것이 돈 있고 배부른 사람들의 전유물이냐고. 그러나 한도진은 죽음으로써 그 질문에 답한다. 희망이란 살아남은 자들이 즐기는 만찬일 뿐 죽은 자는 말이 없다는 서늘한 진실을.
춘단은 자신에게 배달된 한도진의 일기장을 보며, 그가 왜 가족도 친구도 아닌 '청소부 양춘단'에게 유품을 남겼는지 고뇌한다. 그것은 아마도 가장 낮은 곳에서 가장 투명하게 존재하던 그녀만이 자신의 진실된 비명을 가감 없이 들어줄 유일한 관객이라 믿었기 때문일 것이다. 춘단은 죽은 이의 필체를 흉내 내어 화장실 구석구석에 글을 쓰며 그를 살려내려 애쓴다. 이것은 지식의 전수가 아니라 존재와 존재가 밑바닥에서 조우하며 나누는 가장 인간적인 연대였다.
대를 잇는 고통의 고리를 끊어내는 망치질
이 글의 끝자락에서 내가 얻은 것은 반복되는 실패에 대항하는 개인의 의지다. 춘단은 코끼리 석상을 바라보며 생각한다. 세상에 완벽하게 새로운 사람은 없으며 다들 누군가의 피를 흉내 내며 대를 이어 똑같은 고통을 맛본다고. 아들의 죽음, 남편 영일의 투병, 그리고 멈추지 않는 노동.
그래서 춘단은 망치를 든다. 밤마다 거대한 코끼리의 배를 두드린다. 그 소리가 잠든 이들을 깨우길, 그리고 아버지에게서 자신으로, 다시 아들에게로 이어진 그 질긴 불행의 고리를 끊어낼 수 있기를 염원하며 손이 부서지도록 두드린다. 그것은 계란으로 바위 치기 같은 무모함이 아니라 내 삶을 규정짓던 거대한 관성과 한판 붙어보겠다는 존엄한 선언이다.
우리는 모두 각자의 대학을 탐방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누군가에게는 명예의 전당이고, 누군가에게는 치워도 끝이 없는 쓰레기장인 그곳에서 우리는 각자의 그림자를 확인한다. 양춘단은 우리에게 말한다. 비록 우리가 누군가의 발등에 밟히는 그림자일지언정 우리 안에는 돌을 깎아 신을 만들던 석공의 피가 흐르고 있다고.
나쁜 일은 바람결에도 생기지만 좋은 일은 무릎이 벗겨지도록 기도해도 오지 않는다는 냉혹한 현실을 그녀는 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잘된 거여"라고 스스로를 다독이며 다시 빗자루를 잡는 마음. 그것은 체념이 아니라 삶을 있는 그대로 껴안는 거대한 긍정이다. 박지리 작가가 우리 주변의 실제 인물들일 것이라며 남긴 이 이야기는, 지금 이 순간에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세상을 닦아내고 있는 수많은 '춘단'들이 결코 지워지지 않는 실체임을 잊지 말라는 선언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