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최진영 작가의 『어떤 비밀』을 읽는다는 것은 누군가의 문장 속에서 나의 심장 박동을 듣는 일이다. 경칩에서 우수까지 24절기마다 띄운 편지와 산문으로 엮인 이 책은 작가가 소설을 18년간 써오며 뒤편에 숨겨두었던 진심을 조심스레 꺼내놓는다. 제주 옹포리의 작은 카페 '무한의 서'를 찾는 이들에게 건넸던 계절의 편지들은 이제 우리 모두의 것이 되어 각자의 계절을 통과하는 이들에게 말을 건넨다.
최진영 작가는 사랑과 관계에 대해 쓴다. 『구의 증명』 『이제야 언니에게』 『단 한 사람』 등 그의 소설들은 상처받은 관계, 균열된 사랑, 외로움과 오해로 점철된 인간의 내밀한 풍경을 그려왔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결코 관계의 파국이나 사랑의 불가능성만을 이야기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오히려 그는 "사랑은 왜 자꾸 아플까"라고 묻다가 "당신도 오늘의 나는 처음이겠구나" 하고 생각을 고쳐본다. 이 미세한 전환. 질문에서 이해로의 작은 이행이 최진영 소설의 중심에 있다. 그의 문장은 타인을 심판하지 않는다. 대신 타인의 서툴음을 바라보며 나의 서툴음을 함께 떠올린다.
'철이 든다'는 말이 농사의 언어에서 왔다는 사실을 아는가. 절기를 안다는 것, 그것은 곧 때를 안다는 것이고 어른이 된다는 뜻이었다. 작가는 이 책에서 어른으로 자라는 일의 의미를 되묻는다. 어른이 되는 것은 강해지는 게 아니라 약함을 견디는 법을 배우는 일이 아닐까. '거창한 다짐 없이,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 버리려고' 움직이던 젊은 날의 용기를, 지금의 나도 가질 수 있다고 그는 쓴다. 미래의 나보다 지금의 내가 더 용감할 수 있다는 이 문장 앞에서 우리는 비로소 현재라는 시간의 의미를 깨닫는다.
최진영 작가의 글에서 가장 인상적인 지점은 그가 가족, 특히 어머니와의 관계를 다루는 방식이다. "나의 중심에는 폭발하기 직전의 용암 같은 사랑이 있다"는 고백은 섬뜩할 만큼 솔직하다. 엄마에 대한 사랑이 너무 깜깜해서 때로는 모든 걸 엄마 탓으로 돌렸다고, 감당하기 버거워서 사랑일 리 없다고 부정했다고, 그 마음만 없앨 수가 없어서 나를 없애려고 했었다고. 이 고백은 많은 이들이 감히 입 밖에 내지 못했던 진실을 건드린다. 사랑이 때로는 증오와 구별되지 않을 만큼 무겁고 폭력적일 수 있다는 것. 하지만 그는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살면서 사랑을 부지런히 모았다. 지금 내겐 사랑이 있다. 이제 엄마는 나를 사랑하지 않아도 된다. 이젠 내가 엄마를 사랑할 수 있다"는 문장으로 나아간다. 이것은 화해가 아니다. 용서도 아니다. 그저 한 사람이 자기 내면의 용암을 끝내 삼켜내고 그것을 버티는 힘으로 전환시킨 기록이다.
그의 글은 관계 속에서 상처받는 이들에게 위로를 건네지만 그 위로는 결코 값싸지 않다. "우리는 겁쟁이지만 겁쟁이만은 아니다"라고 쓸 때 그는 두려움을 인정하면서도 그 두려움에 굴복하지 않는 태도를 보여준다. 사랑하는 사이는 친밀하고 그 친밀함 속에서 우리는 다투고 상처를 주며 미안해하고 또 실수한다.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걱정하는 마음. 내겐 그것이 사랑이다"라고 말할 수 있는 것. 이것이 최진영이 말하는 사랑의 본질이다. 완벽하지 않지만 멈추지 않는 것. 실패하지만 포기하지 않는 것.
소설가로 살아가는 일에 대한 이야기도 이 책의 중요한 축을 이룬다. "딱 한 편만 더 써보자는 다짐"으로 쓴 소설이 첫 책이 되고, 그렇게 소설가라는 직업을 구했다고 그는 쓴다. 십 년 만에 자신의 첫 소설을 다시 읽으며 깨달은 것은, "나를 미워하는 줄 알았는데, 소설에서만큼은 열렬히 옹호하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이 발견은 창작자에게만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는 종종 과거의 나를 미워하며 살아가지만 어쩌면 그때의 나는 당시의 방식으로 최선을 다해 나를 지키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작가는 소설을 "문장으로 만든 사진첩"이라 부르며 지어낸 이야기이지만 그 시절의 진심이 깃들어 있다고 말한다. 그의 장래 희망은 "계속 쓰는 사람"이다. 이 단순하지만 단단한 다짐 앞에서 우리는 무언가를 계속한다는 것의 의미를 생각하게 된다.
'거시 세계와 미시 세계를 다루는 이론이 다르다'는 사실이 좋다고, 한 가지 이론으로 모든 세계를 설명할 수 없다는 것에 안도한다고 그는 쓴다. 이 문장이 품고 있는 태도야말로 최진영 문학의 핵심이 아닐까. 세상에는 하나의 정답이 없고 사람마다 다른 진실을 살아가며, 그 서로 다름을 인정하는 것이야말로 어른이 되는 일이라는 것. "아무리 살아봐도 알 수 없는 것이 있듯 살아봐야 비로소 의미를 갖는 일들이 있다"는 문장은 성급하게 의미를 부여하려는 우리에게 기다림의 미덕을 일깨운다. "어떤 대답은 시간을 충분히 여행하고 돌아온다"는 것. 지금 겪는 일의 의미를 아직 모를 수도 있다는 것. 이 유예의 태도가 최진영의 글을 깊고 넓게 만든다.
"당신에게는 아주 쉬운 그것이 내겐 정말 어려워서 충분한 설명과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당신은 아는 그것을 나는 모를 수도 있음을 어째서 모르는가." 어린 시절 나눗셈을 배우던 때를 회상하며 쓴 이 문장은, 타인의 고통에 대한 둔감함을 꼬집는다. 최진영 작가는 평범한 어린이였다고 고백한다. 거짓말하고, 돈을 훔치기도 하고, 소외되는 친구를 못 본 척했던 아이. 그런데 "이렇게 써놓고 보니 어른의 모습과 다를 바 없다"는 문장은 씁쓸하지만 정직하다. 우리는 자라면서 나아지는 것이 아니라 그저 같은 실수를 반복하며 살아간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길을 걸으며 혼자 울던 어린 나를 지켜보던 사람이 있었으리라고. 그 사람은 바로 나라고" 믿을 수 있다면 우리는 계속 걸어갈 수 있다. 어린이 최진영이 어른 최진영을 바라보고 어른 최진영이 어린이 최진영을 지켜보는 이 순환적 시선은, 시간을 초월한 자기 연민과 자기 돌봄의 한 형태다.
"며칠 지나도록 흉터처럼 남아 있는 아픔. 이 아픔은 괜찮음의 증거겠지요"라는 문장 앞에 멈춰 선다. 아픔이 괜찮음의 증거라니. 이것은 역설이 아니라 진실이다. 아프다는 것은 살아 있다는 뜻이고 아직 포기하지 않았다는 뜻이며, 여전히 무언가를 사랑하고 있다는 뜻일 테니까. "하루하루가 똑같으니까, 쳇바퀴처럼 굴러가니까" 엄마는 딸의 생일을 잊었다. 그런데 엄마의 나이가 되고 보니 너무 이해가 된다고, 나도 요즘 깜빡 잊고 지나가는 일이 너무 많다고 그는 쓴다. 이 공감의 순간이 바로 어른이 되는 지점이다. 타인의 실수를 나의 실수와 겹쳐 보는 것. 비난 대신 이해를 선택하는 것.
"사랑이란 무엇일까. 알 수 없으므로 계속할 수 있는 것." 최진영이 내린 사랑의 정의는 명쾌하지 않지만 그래서 더 진실하다. 사랑에는 실패도 성공도 없고 종료도 없으며, 다만 브레이크타임이 있을 뿐이다. "당신이기에 용서할 수 있고 당신이어서 용서할 수 없는 일이 있다. 용서할 수 없는 그 마음을 잊지 않겠다. 잊지 않고도 계속 사랑하겠다." 이것은 맹목적인 사랑이 아니다. 눈을 뜨고 상처를 보면서도 선택하는 사랑이다. "사랑하므로 부숴보겠습니다"라는 선언은 과격하지만 솔직하다. 사랑은 때로 파괴적이고, 그 파괴 속에서 우리는 새롭게 만들어진다.
최진영 작가의 글을 읽으며 계속 밑줄을 긋는다. 그의 문장들은 이미 완성된 사유가 아니라 사유로 향하는 통로처럼 느껴진다. "멀어지고 있다. 팽창하고 있다. 잠시도 멈추지 않는다. 매 순간 새롭다"는 문장은 우주에 대한 이야기이지만 동시에 삶에 대한 이야기다. 우리는 매 순간 이전의 나로부터 멀어지고 있고 그것은 슬픈 일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리하여 "우주는 아무것도 버리지 않는다"는 문장은 위안이 된다. 사라지는 것은 없다. 다만 멀어질 뿐이다. 그리고 그 거리 속에서 우리는 비로소 전체를 볼 수 있게 된다.
이 책을 읽는 동안 마음속으로 여러 번 울었고 여러 번 미소 지었다. 최진영의 글은 감정을 조작하기보다 감정이 일어나는 순간을 정확하게 포착한다. "비가 오면 비를 맞는 그들 앞에서, 젖은 머리를 수건으로 탈탈 털어내는 그들 앞에서, 그저 비를 바라보고 빗소리를 듣기만 하는 나는 유령 같았다"는 문장은 삶으로부터 멀어져 있는 자의 고독을 그린다. 살아 있지만 살지 못하는 것, 보기만 하고 겪지 못하는 것의 슬픔. 하지만 이 책은 그 슬픔에서 끝나지 않는다. "네가 거기 있고 내가 여기 있으니까. 울만큼 울었다면 이제 그만 집으로 가자"는 문장으로 나아간다. 이것이 최진영의 방식이다. 고통을 외면하지 않되, 고통에 머물지도 않는 것.
계절은 돌아오지만 같은 계절은 없다. 작년의 봄과 올해의 봄은 다르고, 십 년 전의 여름과 지금의 여름은 같을 수 없다. 최진영 작가는 24절기를 따라 편지를 쓰며 반복되는 시간 속에서 달라지는 것들을 포착한다. "풍경은 늘 같은 자리에서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는 것. 우리도 마찬가지다. 같은 사람이지만 매일 다른 사람이고 반복되는 하루 속에서 미세하게 변화한다. 그 변화를 알아차리는 것, 그것이 산다는 것의 의미가 아닐까.
이 책을 덮으며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거창한 해답이 아니라 질문을 계속할 수 있는 용기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최진영은 답하지 않는다. 대신 함께 묻는다. 사랑은 왜 아픈지, 어른은 어떻게 되는 것인지, 우리는 왜 자꾸 실수하는지. 그 질문들 속에서 우리는 각자의 답을 찾아간다. "장래 희망은 계속 쓰는 사람"이라는 그의 말은, 우리에게도 적용될 수 있다. 계속 살아가는 사람. 계속 사랑하는 사람. 계속 질문하는 사람. 그것이 우리의 장래 희망이 될 수 있다.
『어떤 비밀』은 비밀을 폭로하는 책이 아니다. 오히려 비밀을 소중히 간직하는 법을 알려주지 않나. "네가 빛을 주었으니 나는 어둠을 줄게. 네가 어둠을 주었으니 나는 비밀을 줄게"라는 문장처럼, 이 책은 빛과 어둠, 드러남과 감춤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다. 모든 것을 말하지 않아도 된다. 모든 것을 이해할 필요도 없다. 다만 함께 있으면 된다. 비가 오면 한 사람의 어깨만 젖는다는 것, 늦으면 잠을 참으며 기다린다는 것, 걱정하는 마음이 곧 사랑이라는 것. 이 단순한 진실들이 최진영의 글 속에서 빛난다.
당신이 내일을 걱정할 때 우주는 팽창하고 있었다. 걱정은 멀어지고 시간은 흐르며, 우리는 계속 살아간다. 최진영의 문장을 읽으며 깨닫는다. 삶은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겹쳐지는 것이라고. 상처는 치유되는 것이 아니라 이해되는 것이라고. 사랑은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계속되는 것이라고. 그리고 우리는 모두, 각자의 계절을 통과하며 서로의 편지를 읽고 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