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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솔 Jan 22. 2024

몸무게의 역사

인간은 모두 자기 몸무게에 대한 역사를 가지고 있다.

나이를 먹을수록 몸무게가 늘어난다는 소문이 있다. 사람들이 성장기가 지나서도 계속 영양가 있는 식사를 하니 몸무게가 점점 늘어날 수밖에 없다는 논리였다.


그리고 그 소문은 사실이었다. 매일 그 소문이 사실임을 깨닫고 있다.

나는 뚱뚱해봤자 63킬로그램를 넘지 않았는데, 나이를 먹을수록 최고 몸무게의 기준이 계속 높아지고 있다.




인간은 모두 자기 몸무게에 대한 역사를 가지고 있다.

나는 평생 말라본 적이 없다. 항상 건강한 통통이로 살아왔다. (어쩔 수 없다. 통뼈인걸) 하체 비만 체형이라 상체만 보면 실제 무게보다 (조금은) 가벼워 보이기 때문에 스트레스도 딱히 크지 않았다.


남의 시선을 많이 신경 쓰는 고등학생 때까지만 해도 몸무게에 대한 강박이 있었다.

하필 나와 가장 친했던 친구가 40킬로그램대 초마름이었다. 누가 뭐라 한 적은 없지만, 둘이 걸어 다니면 비교당하는 것 같았다.

매일 입고 다니던 교복도 한몫했다. 매일 입는 옷이기에 살이 찌면 바로 느껴졌다. 아마 교복을 입는 중고등학생들은 각자 자신만의 '넘어서는 안 되는 순간'을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나의 경우, 마을버스 좌석에 앉았을 때 뱃살이 접히면 그때부터 살을 빼야 하는 순간이었다. 나름의 마지노선이었던 셈이다. 그 마지노선은 63킬로그램이었다.

버스에서 뱃살이 신경 쓰이기 시작하면 다음 날부터 1일 1식을 실천했다. 점심만 양껏 먹고 저녁을 굶는 식의 다이어트였다. 저녁을 굶어 배고픈 상태로 급식줄에 서있으면, 얼른 밥을 입에 욱여넣고 싶은 생각과 동시에 이게 오늘의 마지막 식사라는 실망스러움이 공존했다.


대학생 땐 연애를 하고 싶었다. 그래서 살을 빼고 싶었다.

가장 젊은 나이에 가장 예쁘지 않으면 인생을 낭비하는 거라고 잘못 배웠다.

하지만 다이어트는 쉽지 않은 법. 맨날 말로만 다이어트한다고 하고 제대로 된 운동도 식단도 하지 않았다. 영국 드라마를 틀어놓고 스텝퍼를 찌끄리거나 티파니 복근운동이니, 빌리부트 같은 운동 비디오를 설렁설렁 따라 하는 수준이었다.

살이 빠질 리 만무했다. 다이어트는 하지 않으면서도 스트레스는 다이어터만큼 받는 비정상적인 패턴이 이어졌다.




그리고 이십 대 중반에 이른 어느 날. 짜증이 폭발했다.


- 나는 그냥 닥치고 다이어트를 하면 되는 거지. 도대체 왜!!! 몇 년 동안 스트레스만 받고 있는 거지?

- 불평불만 할 시간에 이미 십 킬로는 뺐겠다.


마침 얼마 전 다녀온 동남아 배낭여행에서 장염으로 고생했던 터라 3킬로그램 감량 상태였다. 오... 기회다 싶었다. 그리하여 인생 최초 다이어트에 돌입했다.

알바를 하면 무료 수강 기회를 준다는 필라테스 학원에서 데스크 알바를 시작했다. 거기엔 건강한 몸과 마음을 가진 선생님들이 많았다. 어울리는 사람에 따라 행동이 달라진다고 했던가. 항상 레깅스를 입고 다니면서 꼿꼿한 자세를 유지하고 건강식만 먹는 이들 사이에서 나도 각성하기 시작했다.


스스로 배식하는 급식처럼 일주일 치 식단을 만들어서 냉장고에 넣어놨다. 개인적으로 닭보다 돼지를 좋아하기 때문에 기름기가 적은 뒷다릿살을 사서 삶은 뒤 작게 썰었다. 옆에는 청경채 같은 야채도 썰어 넣었다. 삶은 돼지고기와 야채, 밥 두 숟가락이 끝이었다. 양념은 없었다. 나름 단백질과 탄수화물, 미네랄 등을 생각한 조합이었다.

확실히 돼지고기를 먹으니 다이어트식이라는 느낌이 들지 않았고 전혀 힘들지 않았다.

소금도 치지 않은 디톡스 식단을 먹기를 2주째…

인생 최저 무게를 기록했다.


주 3회 운동도 병행했기 때문에 근손실을 최소화할 수 있었다. 성장이 멈춘 후 가장 마른 몸무게였다. 만나는 사람마다 얼굴에 뼈밖에 없다며 놀랐다. 50킬로그램대라 숫자만 보면 그렇게 마른 무게는 아니었지만, 수분을 빼앗아 갔던 장염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얼굴부터 살이 빠지는 체형 때문이었을까, 피골이 상접한 편이었다.




먹는 즐거움보다 입는 즐거움이 컸다. 옷을 입어볼 때 사이즈를 고려하지 않아도 된다는 게 꽤 큰 기쁨이었다. 어렵게 뺀 만큼 계속 유지하면 되겠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1년간은 유지했다. 기적이었다.


그런데 회사 생활 이후 10킬로그램 이상 증량해 버렸다. 헤비한 점심식사, 자취 생활 시작으로 야식 섭취, 그리고 운동 부족이 주된 이유였다.


회사를 그만두면 살이 빠질까. 언젠가 실험해 보고 싶다.



돼지는 사실 복된 별명이다. 





주간 에세이 {이솔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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