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을 잘 잠그는 게 더 중요하다
요즘 집을 나설 때 현관문을 두어 번 확인하는 습관이 생겼다. 혹여나 열린 문틈 사이로 고양이들이 튀어 나갈까 봐 늘 마음이 쓰인다. 집에 현금 뭉치가 있을 때도 그런 적 없는데, 돈은 잃어도 고양이를 잃을 순 없다.
어릴 적 문은 내가 어찌할 수 없이 견고하고 무거웠다. 우리 집은 내가 스물두 살 때까지 열쇠를 사용했는데 엄마가 디지털 도어락을 불신했기 때문이다. 불이 났을 때 문이 잠겨 위험할 수 있으며 열쇠 사용에 별다른 불편함도 없다는 입장이었다. 엄마야 차 열쇠고리에 집 열쇠를 달고 다니면 그만이겠지만 지갑도 없이 책가방과 실내화 가방만 덜렁 들고 다니는 나는 열쇠를 두고 다니기 일쑤였다. 열쇠를 놓고 온 날이면 문 앞에 앉아 동생을 기다리고, 놀이터에서 놀다 온 동생도 열쇠가 없으면 둘이서 엄마가 퇴근할 때까지 꼼짝없이 기다렸다. 이웃이 많은 복도식 아파트에 살았는데, 옆집 눈에 띄지 않도록 현관문 구석에 기대어 앉아 있었다. 가끔 복도 난간에 대고 물구나무를 서고 싶다는 충동에 휩싸이곤 했다.
아홉 살 무렵 나는 집에 다다라서야 열쇠가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조금 뒤 도착한 동생도 열쇠가 없었고 갑자기 온 세상이 무서워진 우리는 아파트가 떠나갈 듯 울었다. 당연히 핸드폰도 없었다. 그저 문제 해결력이라곤 0에 수렴하는 어린이 둘이었다.
그때 옆집 아주머니가 나와 자초지종을 묻고는 자기 집에 들어와서 기다리라는 아량을 베풀어 주셨다. 겁 많던 자매는 고개를 저었지만, 복도는 무섭고 심심하고 막막했기에 결국 옆집에 들어갔다. 우리 집과 구조도 같고 티브이 소파 식탁 배치까지 동일했지만, 동시에 완벽하게 달랐다. 섬유유연제 냄새도 소파 재질도 티브이 크기도 냉장고 모양도. 진짜 집까지 삼십 센티도 떨어지지 않은 공간에서 우리는 얼은 듯 앉아 있었다. 아주머니는 오렌지 주스를 내어주시고는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주셨다. 엄마가 올 때까지 머물러도 된다고 하셨지만 시각 촉각 후각 전부 불편했던 나는 그만 대책 없이 동생 손을 잡고 나와 버렸다.
복도에 앉아 또각또각 발소리마다 엄마이길 기대했다. 사실 구둣발 소리만 들어도 엄마를 알아맞힐 수 있다. 엄마가 신는 하이힐 소리는 다른 것보다 청아한 소리를 냈다. 매일 귀 기울였던 엄마 발소리가 복도에 울려 퍼지자 동생과 나는 엘리베이터로 내달렸다. 드디어 나를 가로막던 철문을 가볍게 열고 집으로 돌아갔다.
이와 유사한 사건이 몇 번 더 있었음에도 엄마는 열쇠를 고집했고, 대학생이 된 딸이 진지하게 항의하자 그제야 내 생일 기념이라며 디지털 도어락으로 바꿔주었다. 내 고집이 어디에서 왔는가 하면 엄마를 보면 된다. “디지털 도어락 너무 편하다. 왜 이제야 바꿨는지 모르겠네.“라며 앞으로 딸 말을 잘 듣겠노라 선언했다. 물론 그 선언은 지켜지지 않았다. 달러 목돈을 가지고 있는 엄마에게 환율이 1,480원 대일 때 바꾸라 말했지만, 내 말을 듣지 않고 미루다가 1,450원에 바꾸는 사건도 얼마 전에 있었다. 바뀌지 않는 것 그 자체도 고집이다.
이제 나에게는 문을 잘 잠그는 게 더 중요하다. 문을 잠그는 건 온전히 도어락 책임이 됐음에도 문고리를 여러 번 돌려 확인한다. 소중한 것들이 길을 잃지 않도록. 문간에 서 내가 올 때까지 기다리지 않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