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의 소회

엘레강스한 욕지거리

by 이솔

내가 지금 몇 살인지 모르겠다. 정부가 발표한 대로 열심히 만 나이로 살고 있었는데, 온갖 미디어에서 올해 소띠가 서른이라며 야단이다. 온 세상이 나를 서른이라 부르니, 더는 모른 척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어쩔 수 없이 서른을 맞은 소회를 밝혀보려 한다.




정신 연령은 십 대 때와 진배없지만 육체적 노화가 체감되기 시작했다. 처음은 피부였다. 나는 얼굴에 뾰루지가 나지 않는 이상 거울을 잘 안 보는 인간인데, 출근 준비하다가 깜짝 놀랐다. 자세히 살펴봐야만 보였던 모공이, 이젠 볼을 넘어 옆 광대까지 잔뜩 넓어진 채 자아를 표출하고 있었다.

그리고 머지않아 건조함이 찾아왔다. 본래 중성 피부라 사람들이 핸드크림을 바르는 이유를 향기 때문이라고 생각할 정도로 무지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손에서 찢어지는 듯한 건조함이 시작되었다. 이제는 매일 밤 잠들기 전 핸드크림을 바르는 게 루틴이다.


언어 체계에서도 노화가 시작되었다. 머릿속 떠오른 단어가 입 밖으로 나오지 않거나 아예 다른 단어를 내뱉는 경우가 생긴 것이다. 휘핑크림을 크림휘핑이라 하거나, 사랑해도를 사랑도해라고 타이핑하거나, SD카드를 떠올리며 디스크라고 말하는 식이다. 인간은 인생에 세 번(34세-60세-78세) 급격한 노화의 굴곡을 만난다던데 벌써부터 이러면 어쩌지, 성큼 무서워진다.


서른이라는 라벨이 붙으니 왠지 체통을 갖춰야 할 것만 같다. 운동화 대신 단화를, 핸드폰 배경화면은 고양이 대신 예술 작품으로, 상스러운 욕설 대신 웁스나 제길 같은 엘레강스한 욕지거리를 뱉는 어른이 되어야 하는 것 아닌가 스스로 반성해 본다.




비록 서른의 초입부터 넓어진 모공과 오작동하는 언어 체계를 얻었지만 스물로 돌아가겠냐고 묻는다면 고민 없이 사양하겠다. 그 시절의 나는 나 자신을 몰라서 그만큼 스스로를 미워했다. 무지에서 비롯된 두려움 때문에 나와 다른 사람을 쉽게 재단했고 쉽게 부정적인 마음을 품었다. 하지만 이제는 나를 아는 만큼 나 자신을, 그리고 타인을 덜 미워하게 된다는 사실을. 그리고 스스로에 대한 사랑은 빠르게 퍼져서 다른 사람까지 사랑할 수 있도록 만든다는 것을 안다.


최근 내가 틀리는 걸 싫어하는 사람이란 걸 새롭게 알게 되었다. 그래서 말끝마다 사소한 팩트가 틀렸다며 지적하는 상대를 만나면 속으로 괜히 부정적인 감정을 품었더랬다. 그러나 이젠 그 마음이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 금방 알아차릴 수 있으니 웃으며 넘길 수 있다. 나만의 취향이 없어 조급했지만 그건 사실 내가 그냥 어떤 음식이든 옷이든 향기든 웬만한 걸 다 좋아하는 무던한 인간이기 때문이라는 것도 안다. 어떤 사람을 마주했을 때 마음이 조급하고 불편해지는 건, 사실 그 사람을 싫어해서가 아니라 잘 보이고 싶은 맘 때문이라는 것도 이제는 안다.

한때 내 앞에 놓여있던 수많은 기회 중에서 가능성이 높은 것들이 어느 정도 추려졌다는 점도 맘에 든다. 이제 남은 건 선택이 아니라 정진이다.




물론 의도치 않아도 사방으로 뿜어져 나오던 앳됨은 빛이 바랬다.

그러나 적어도 이제는 내가 나를 오해하지 않는다. 그 정도 값으로 서른은 적당하다.



IMG_3015.HEIC


keyword
월요일 연재
이전 12화알베르 까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