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베르 까미

적당히 기름지고 상냥한 고양이 털

by 이솔

까미와 이만큼 가까워질 줄은 몰랐다. 까미가 내 머리맡에서 쌕쌕 대며 잠들 날이 오리라고는 더욱이 알지 못했다.


봉식과 까미.

이들은 각자 고속도로 톨게이트, 봉구스 밥버거에서 구조되었다. 봉식이는 치즈 태비 무늬를 가진 수컷 고양이인데, 본래 수컷들이 그러하듯 얼굴이 크고 동그랗다. 귀여워 소리가 절로 나오는 얼굴이지만 정작 애교 있는 성격은 아니다. 얼굴이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스타일이랄까. 먼저 코인사 해주는 법이 없다. 간식도 코 앞까지 대령해 줘야만 먹는다. 대신 품에 안아도 잔뜩 쓰다듬어도 가만히 있는 순둥이다.


본래 수컷보다 암컷이 더 예민하다던데 까미를 보면 딱 맞다. 암컷에 카오스 무늬를 가진 깜장 고양이 까미는 집에 불이 다 꺼지기 전까지는 그저 외부 자극을 피하는데 온 에너지를 쏟는다. 작은 소리만 나도 얼른 소파 밑으로 숨어버리는 까미지만 생존본능 때문일까, 음식에 대한 집착이 심하다. 내가 뭐라도 먹으면 꼭 슬쩍 와서 냄새를 맡고 도망가야 직성이 풀리는 식탐쟁이다. 츄르나 말린 북어 같은 간식 줄 때 빼고는 다가오지 않아서, 이 정도면 그냥 같은 공간에 사는 길고양이라고 하는 게 더 적절할 것이다.


까미 이름에 대해서는 할 말이 많다. 아마 까만 고양이 강아지 5마리 중 3마리 이름은 까미일 것이다. 그래서 나는 까미 이름을 ‘알베르 까미’로 개명할 것을 제안하고 있다. 까미가 자신의 이름을 알아듣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수년간 불려 온 이름을 바꿀 수 없으니 의미라도 부여하자는 것이다.



문제는 까미가 매우 촉촉하고 촘촘한 털을 가졌다는 데에 있다. 이게 무슨 말인가 하면은, 봉식의 털이 보송하고 푸슬하다면 까미의 것은 껴안고 싶은 충동을 자아내는 그런 터럭이라는 말이다. 적당히 기름지고 상냥한 고양이 털을 만져보지 않았다면 이 충동이 얼마나 큰지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자제력을 잃고 그 녹녹한 털을 안아버리면, 엉겁결에 안긴 까미는 한 삼십 초쯤 얼어붙어 상황을 파악하다가 얼른 발버둥 쳐 품을 벗어난다.


진정한 사랑은 상대가 싫어하는 짓을 안 하는 것이라고 알고 있다. 머리론 아는데 까미 앞에서는 속수무책이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까미의 행복한 묘생을 위해 우리 집에 까미 안기 금지령을 내렸다.


까미를 와락 안고 싶은 충동을 참은 지 한 달째. 까미를 낚아채 안아버리는 대신, 검지로 줄기차게 코 인사를 건넸다. 처음엔 냄새만 맡던 까미는 점점 손가락에 자기 주둥이를 끝까지 비비며 페로몬을 묻히기 시작했다. 그 영역은 발가락과 핸드폰까지 넓어져 갔다.


두 달쯤 지나자 내가 걸어갈 때 놀라는 빈도가 줄어들었다. 이제 까미는 내 움직임과 상관없이 바닥에 느긋하게 몸을 뉘었다.


넉 달쯤 지났던 어느 밤이었다. 불을 끄고 침대에 누웠는데 까미가 슬그머니 내 배 위에 올라왔다. 그리고 극세사 이불을 향해 꾹꾹이를 시작했다. 이상한 일은 이뿐만이 아니었다. 샤워를 마치고 나오면 욕실 앞에 까미가 앉아 있었다. 마치 나를 기다렸다는 듯 젠틀하게. 고양이는 맘에 드는 행위가 있으면 제 일상 루틴에 추가한다던데 아무래도 내 샤워가 까미의 하루에 포함된 모양이다.


그리고 육 개월이 지난 지금. 까미는 내가 베고 있는 베개 윗부분에 굳이 굳이 끼어들어서 몸을 동그랗게 말아 웅크린 채 잠을 청한다. 언제는 다가가기만 해도 피했던 까미와 이만큼이나 가까워지다니. 정말 웃기는 일이다.

나는 내 품에 억지로 안긴 까미 대신, 자진해서 네 발로 나에게 저벅저벅 걸어오는 까미를 얻었다.



보이지 않는 사랑이 서서히 우리를 바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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