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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솔 Mar 18. 2021

엄마가 그런 거 해주고 싶었는데 사주지도 못했네

그런 거 매면 우리 솔이 얼마나 예쁠까.

항상 받지 못해서 투덜거려했다.

받지 못한 나를 가여이 여겼다.

그런데 주지 못한 사람의 마음을 헤아려 본 적이 있던가?


 태어나서 7번째 크리스마스를 맞던 날, 유치원에 산타가 나타나서 선물을 나눠줬다. 친구들이 자기가 들기도 힘들도록 큰 선물 상자를 들고 산타와 사진을 찍을 때, 내가 받은 건 한 뼘보다 작은 상자 속에 든 플라스틱으로 된 매직키드마수리 목걸이었다. 진짜 산타가 줬다면 선물은 공평했겠지만 이 선물은 엄마 아빠의 지갑이 준비한 선물이었다. 고작 7살이었지만 그때 산타와 함께 찍은 사진을 보면 내 얼굴엔 복잡한 감정이 적혀있다. 실망감과 동시에 피어난 '실망을 티 내선 안된다'는 표정. 애초에 모든 실망은 다른 것과 비교해서 생기는 것이거늘, 이 <크리스마스 선물 사건>이 나에겐 첫 비교의 순간이었다. 영특했던 나의 비교 능력은 또래보다 높았고 선물의 크기는 눈으로 너무 잘 보이는 것이었다. 이후부터 이것저것 사달라는 나의 투정은 점점 잦아들었다.


 가난의 매정함은 사고 싶은 물건을 사지 못할 때 최고 수준으로 치솟는다. 먹고 싶은 메뉴가 있는데 천 원이 비싸서 시키지 못하고, 사고 싶은 색이 있는데 더 비싸니까 사지 못하고. 가난은 선택을 할 때 가슴이 아닌 머리를 쓰게 만든다. 만약 내가 사고 싶은 걸 다 갖는 삶을 살다가 가난해진 거라면 견디기 힘들었겠지만, 다행히도 어릴 때부터 가난에 단련되어 이제는 아무렇지 않다. 약간의 과장을 보태어 욕망이 거세되었다고 할 수 있겠다.


 남들 다 받는 성대한 크리스마스 선물도, 사고 싶은 걸 고르는 것도 전부 나에겐 사치였다. 내가 감히 뭔가를 원한다는 건 분에 넘치는 일 같았고 받는 거에도 주는 거에도 소극적인 어른으로 자라났다. 다른 사람에게 무언갈 받았을 때 ‘내가 이걸 받아도 되는 사람인가’하는 일종의 자기 검열을 거치는 습관이 생겼다. 하지만 엄마에게 내색한 적은 없다. 장녀인 내가 철부지 동생처럼 원하는 걸 얻기 위해 때를 썼다면 그때의 엄마는 무너질 것만 같았다.



 이런 생각을 고쳐먹은 건 미국까지 가서였다. 학교에서 지원해주는 2주짜리 국제 프로그램에 합격해 미국에 가있던 22살의 나는 친구들과 대형 아웃렛에 들렀다. 미국 브랜드 상품을 저렴하게 파는 탓에 친구들은 자기 물건 말고도 부모님께 드릴 선물을 턱턱 샀다. 선물에서도 생활수준 차이가 느꼈다.



 주렁주렁 쇼핑백을 들고 다니는 친구들 사이에서 나는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엄마가 갖고 싶다고 하면 지갑이나 핸드백을 사갈 요량이었다. 엄마에게 사고 싶은 거 없냐고 물었고, 내가 싸게 살 수 있다고 여러 번 강조했음에도 엄마는 필요한 게 없다고 말했다. 그리고 한 마디를 덧붙였다.



    내 건 됐고, 너 할 거 사.

    요즘 애들 메고 다니는 작은 가방 하나 사.

    그런 거 매면 우리 솔이 얼마나 예쁠까.

    엄마가 그런 거 해주고 싶었는데 사주지도 못했네.



 이 말을 듣는 순간, 내 안에 팽팽한 간격으로 세워져 있던 도미노 하나가 툭 쓰러지는 기분이 들었다. 이역만리 미국의 필요 이상으로 큰 주차장 한가운데에서 나는 그만 엉엉 울어버렸다. 항상 내가 받지 못한 것만 생각하며 나 자신만 가엾게 여겨왔는데. 그동안 해주지 못한 사람의 마음이 얼마나 아팠을지, 어쩌면 나보다 더 미어졌을 엄마의 마음을 생각해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내가 돈 많이 벌어서 우리 엄마 호강시켜주고 싶은 만큼, 딱 그만큼 엄마도 해주고 싶었을 텐데. 그제야 해주지 못한 사람의 맘도 헤아리게 되었다. 보상받을 수 없다고 생각했던 나의 어린 시절 결핍들이 채워지는 기분을 느꼈다. 


결국 동생 줄 70달러 짜리 지갑을 하나 샀다.


다시 생각해보니 엄마는 엄마대로, 

자기가 줄 수 있는 최고의 노력을 하고 있었다. 


 바로 유기농이었다. 엄마는 식재료는 적게 사는 한이 있더라도 되도록 유기농을 고집했다. 등급이 떨어지더라도 한우를 사 먹이고 10개 살 거 5만 사더라도 꼭 유기농 야채를 샀다. 엄마의 입장을 헤아리고 나니 그동안 엄마가 해줄 수 있는 선에서 최선의 노력을 하고 있던 것이 보이기 시작했다. 집안일에 무신경한 딸의 눈에는 잘 띄지 않는 노력이었지만 말이다. 나는 항상 인스턴트 음식 같은 게 먹고 싶다며 투정을 부렸지만 엄마는 유기농 마트 가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비록 내가 받고 싶은 건 아니었지만, 엄마는 주고 싶은 것들 중에 해줄 수 있는 최대한의 것을 해주고 있었다.


 항상 받지 못했다는 결핍이 존재했지만, 사실 누구보다 넘치는 사랑을 받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혹여나 상처를 받게 되어 무너질까 봐 노심초사했던 내 맘 속 도미노가 사라진 것을 느꼈다. 이제는 받을 줄도 알고 줄 줄도 아는 사람이 되어가고 있다. 엄마가 그랬던 것처럼, 알아주기를 기대하지 않고 그저 주고 싶은 만큼 주는, 그런 어른이 되어가고 있다. 










솔향을 머금은 글과 사진을 담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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