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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솔 Sep 09. 2021

집이 어디인가 묻는다면,

ep. 정규직 합격 전화를 끊자마자 떠난 제주 여행, 다시 만난 우리집


  출근을 3일 앞두고 떠난 여행이었다. 반년간 취준생과 백수의 경계선에 아슬히 서 있던 나는, 운 좋게도 원하던 광고회사의 정규직으로 합격했다. 축하한다는 인사팀의 전화를 끊자마자 내가 한 일은 제주행 비행기 티켓을 끊은 것이다. 당장 그날 오후에 출발하는 티켓이었다.


 굳이 제주였던 이유는, 멀지 않은 과거에 제주에서 살다가 온 적이 있기 때문이다. 1년 전, 나 자신과 더 친해지고 싶은 맘에 제주도 서쪽에 월령이라는 작고 올망한 시골마을의 게스트하우스에서 세 달을 보냈다. 대학을 막 마친 그때의 나는, 대학생도 회사원도 아닌 묘한 존재였다. 마치 크리스마스와 새해 사이 붕 뜬 일주일과 비슷했다. 어디에도 소속되지 않은 건 아마 그때가 처음이지 않았을까. 짧은 시간 동안 누구의 딸도, 어떤 학교 학생도, 어느 회사 구성원도 아닌. 그냥 나로서 오롯이 존재했다. 


 새로운 시작이 결정되자마자 결정한 이번 여행은, 사실 미련 가득한 선택이었다. 회사에 발이 묶이면 한동안 여행가가 될 수 없을 테니. 아무 걱정 없이 제주살이 했던 곳을 다시 찾아 마음의 파도를 가라앉히겠다는 일념 하나로 결정한 무모한 여행이었다. 사무실에서 일할 때면, 종종 좁은 책상과 의자 사이에 갇힌 채 썩어 죽어버릴 것 같은 공포를 느끼는 나를 위한 나름의 처방전이었던 셈이다. 이리저리 맘껏 휘몰아치고 싶은 내 안의 물살을 가라앉혀 오겠다는 일념, 그거 하나로 떠났다.



 제주공항에 내려 버스정류장을 찾는다고 30분을 낭비했다. 덕분에 해는 벌써 늬엿늬엿 지고 있었다. 내가 세운 여행 계획이라곤 '바다에서 일몰 보기' 밖에 없었는데 말이다. 목에는 무거운 DSLR을, 어깨에는 멋이라곤 없는 새까만 노트북 가방을 멘 채로 두 번의 버스 환승과 이십 분의 파워워킹를 마치고 나서야 내가 '우리 집'이라고 부르기를 주저하지 않았던 '곳'에 도착했다.


 내가 기억하던 장소, 그러니까 이곳이 집이었을 때의 기억을 더듬어본다. 4월치곤 바람이 많이 불어 쌀쌀하지만, 햇살이 뜨거워 반팔에 울가디건을 하나 걸치면 딱 좋은 날씨다. 하늘은 바닷물을 한 방 톡 떨어트려 붓으로 얇게 펴 바른 연한 도화지 같다.


 그리고 그 아래 우리가 있다. 방 3개짜리 집에 함께 살던 우리. 각기 다른 사연을 꿀-꺽 삼키고 연고 없는 제주의 게스트하우스까지 내려온 우리는 그곳에서 가족이었다. 스물셋, 스물넷, 스물다섯, 스물여섯. 짠 듯이 우리는 한 살 터울이었다. 안산부터 의정부까지, 고향도 살아온 환경도 달랐지만 참 쉽게 어울렸다. 모든 걱정을 육지에 두고 온 덕이었을 것이다.


 그때의 우리는 낯선 땅에서 서로의 가족이 되어주었다. 이름만 부르면 볼 수 있는 얼굴들이었다. 언제나 손에 닿을 거리에 친구들이 있었다. 낮에는 함께 하릴없이 농땡이를 피우며 젊음을 낭비하는 사치를 부렸다. 밤에는 바다가 보이는 큰 창 앞에 식탁을 가져다 놓고 저녁을 먹으며 오늘 하루 있었던 일을 조잘조잘 이야기했다. 이들 앞에 서면 굳이 말하지 않아도 될 부끄러움까지 미주알고주알 실토하게 되었다. 그러면 새카맣고 깊이를 알 수 없는 바다를 보아도 무서움보단 이상한 용기가 샘솟곤 했다.

 


 그 기억이 아직 생생한 나의 눈앞에 펼쳐진 지금의 모습은 묘-했다. 하늘은 내가 한 번도 본 적 없는 거무죽죽한 보라 빛깔을 내고 있었다. 콧잔등까지 해무가 내뿜는 축축함이 전해졌다. 차마 폐까지 불길한 기운을 담을 수 없어, 의식적으로 가슴 언저리에서 오가는 숨을 쉬었다. 매일 내게 살갑게 웃어줬던 집 앞 바다는 내게 '진짜 집'으로 돌아가라는 양 사납게 으르렁거렸다. 현관에 매어 낯선 이를 경계하는 꾀죄죄한 진돗개처럼.


 이제 다신 오지 않을 지난날, 저녁을 먹으며 눈으로 멍하니 파도를 좇았던 큰 창. 아침에 물걸레질하며 거실에 난 큰 창으로 푸른 바다를 내다보는 것을 나는 참 좋아했다. 이제는 밖에 서서 그 창을 바라본다. 이제는 바다를 코앞에 두고 있으면서도, 그 창을 바라본다. 투명한 창을 통해 이제 그곳을 집이라고 부르고 있을 사람들이 보인다. 찌개가 담긴 냄비를 조심조심 식탁으로 내어오던 참이었다. 내가 가지고 싶은 것을 이미 가진 누군가를 봤을 때처럼, 가슴에 찌르르 전율이 인다. 안데르센의 동화 속 성냥팔이 소녀라도 된 기분이었다.



 지금은 너무나도 낯선 이 공간이, 한때는 하루 끝에 몸을 뉘일 수 있는 포근한 집이 되어준 연유는 무엇일까. 무엇이 집을 집답게 만드는 것일까. 내가 동남아 배낭여행 중 묵었던 태국 빠이의 게스트하우스 부엌에는 나무 장식이 하나 있었는데, 거기엔 ‘Home is where You are'이라고 적혀있었다. 그 말을 철석같이 믿고 내가 사는 곳이면 어디든 집이 되는 줄 알았다. 하지만 이제야 집을 결정하는 것은 사람이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거실, 부엌, 침실이 있는 '물리적 공간'에다가, 함께 사는 사람과 눈에 익은 이웃과의 시간이 합쳐져야 비로소 '우리 집'이 되는 것이다.


  제주살이를 하며 느낀 행복이, 현실적인 문제에서 멀어진 덕에 생긴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함께 살던 사람 때문이란 걸 안다. 거실에서 자신의 하루를 조잘대던, 저녁으로 무엇을 해먹을지 투닥거리며 가위바위보를 하던 나의 친구들. 그들은 이 낯선 곳을 집처럼 만들어준 가족 같은 존재였다. 그 시간들이 모여 집이 되었다. 이제는 더는 나의 집이 아닌 것이 된 건물을 바라봤다. 그리고 가만히. 사라진 나의 가족을, 나의 집을 그리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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