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솔 Sep 26. 2022

이름을 묻는 여행자

이름을 묻는 질문에 직업을 이야기해 버렸다.

   연말엔 회사에, 연인에게, 가족에게 의존적인 내가 싫었다.



 주변을 안정적이고 일상적인 것들로 채우자, 혼자 하는 결정보다는 상대를 고려하는 결정이 많아졌다. 나의 취향은 옅어졌고, 상대에게 실망을 안겨주고 싶지 않아 더욱 상대의 입장에서 결정을 내렸다. 그리하여 나의 강심장은 작은 실수에도 벌벌대는 겁쟁이 토끼의 것이 되어버렸다.

 이런 의존적인 태도는 무한 궤도처럼 계속 더 의존적인 사람이 되도록 이끈다. 관계를 망치고 싶지 않아 더 적극적으로 상대방의 입장에 서게 되고 결국은 자폭하게 된다.


 오직 내 의사로만 하루를 채울 수 있는 나홀로 여행을 떠났다. 나의 취향을 알고 싶었고 나와 진지한 대화를 좀 해보고 싶었다. '소품샵에 들어가볼까' 처럼 작은 것에서 부터, 어디서 잘지 결정하는 큰 일까지 혼자 해내야 하는 여행. 하루에 적어도 10개 이상의 크고 작은 선택을 하는 일은 여간 힘든 일이 아닐 수 없지만, 나의 더 잘 알게 될 거라는 기대감에 가슴이 뛰기도 했다.



 이 여행에서 내가 내린 17번째 선택은 '게스트하우스'였다. 성산일출봉에 근접해 있어 다음날 일출을 보러 가기 위해 적당히 취한 젊은이들로 약간 북적였으며, 제주도의 여느 게하처럼 촌스럽고 알록달록한 모양새였다. 벽은 눈이 아프지 않을 정도로만 쨍한 연두색 페인트로 칠해져 있고, 공유 주방에는 여행자들이 남긴 포스트잇으로 가득찬 보드가 있는, 촌스러움이 담을 수 있는 따듯함을 지닌 곳이었다.

  

 그 뒤를 이은 18번째 선택은 '여성 전용 4인 도미토리'였다. 1인 배낭여행자로서 '절약'과 '안전'을 한번에 잡을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었다. 도미토리에는 외관과 마찬가지로 촌스러운 무늬지만 보송한 이불과 배갯닢이 준비되어있었다. 올레길을 걷느라 허기진 줄도 몰랐던 터라, 문 바로 앞 1층 침대에 배낭을 내려놓고 바로 방을 나섰다.


 그리고 손님이라곤 나밖에 없어서 부담스러웠던 '아침 식사 전문 식당'에서 갈치조림을 먹었다. 차가 없는 배낭여행자는 밤에 할 일이 그리 많지 않았기에, 갈치 살을 하나도 빠짐없이 모두 발라먹고 나왔다. 사장님 부부는 내가 없는 듯이 행동했다. 가게 안 작은 티비에 연속극을 틀어놓고 저녁을 먹으며 작은 실갱이를 했는데, 나는 마치 시트콤의 시청자가 된 기분이었다.



 숙소에 돌아온 시간은 8시. 나올 때와 마찬가지로 모든 침대가 비어있었다. 속으로 함성을 외쳤다. '방을 혼자 쓰는 행운이 찾아왔구나!' 고단한 하루를 보낸 배낭여행자에게는 이만한 행복이 없다.

 

 느긋하게 스마트폰으로 내일 갈 올레길에 대한 정보를 검색해보고 있을 때였다. 누군가 방에 들어왔다. 이런.. 게하 사장님과 함께 온 미래 동침객이었다. 안보는척 슬쩍 여행자의 모습을 흘겨봤다. 어떤 종류의 여행자인지 알고 싶은 오지라퍼의 고단수 습관이다. 24인치 캐리어를 끌고 온 것을 보아 적어도 미니멀한 여행을 원하는 자는 아닌 듯하다.


 종일 혼자 다니느라 도통 쓸일이 없던 성대에 살짝 자극을 더하고, 평소보다 반톤 높은 목소리로 말을 걸었다. '안녕하세요.' 내 말에 뒤돌아본 상대에 놀랐다. 그는 외국인이었다. 그런데 이제 한국말이 매우 유창한.


- 혼자 여행오셨어요?

- 오늘은 어디 가보셨어요?

 나름 여성 도미토리 왕고로서 적당한 주제를 몇개 던졌다. 도미토리 대화의 정석인 대화로 교과서에 올려도 될 정도로 티피컬한 대화였다. 이런 피상적인 대화는, 낯선 상황에서 과하게 긴장하는 내게 늘 있는 일이었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도 재밌는 일은 일어나지 않고 늘 비슷하게 흘러가는 상황.


 한 5분 정도 적당한 여행 이야기를 나누다가 대화가 끊겼다. 말이 끊기고도 같은 공간에 있어야 하는 건 꽤 고역이다. 자연스럽게 다시 침대로 가서 누웠다.


- $%#$ 뭐에요?

그때 처음으로 그분이 내게 질문을 던졌다. 분명 한국어를 잘했는데, 이 질문은 알아듣기 어려웠다. 아무리 발음이 좋은 외국인이라도 문법은 틀릴 수 있는 거니까. '이른 뭐해요?' '일은 뭐해요?' 2번 정도 되묻고 나서야 결론을 내렸다. 아! 이분은 내가 어떤 일을 하는지 궁금하구나.


- 아아, 저 광고회사 다녀요.

고개를 내젓는다. 이른 뭐해요를 반복하다가 결국 제대로 발음해낸 질문은 예상밖이었다.


- 이름 뭐에요?

 아차, 누가 초면에 하는 일을 물어보겠는가. 아무리 유럽인이어도 말이다. 얼굴이 화해지는 게 느껴졌다.

 

 배낭여행자로서의 1계명을 잊어버리고 산 것이다. '게스트하우스에서 만났다면, 더군다나 도미토리 안에서 만났다면, 통성명은 기본 예절이다.' 태국 배낭여행에서 배운 법칙이다. 새로운 이를 만났을 때 반가움보다 경계하는 맘이 큰 나 같은 인간에게는 맞지 않는 문화지만, 어쩌겠는가. 같이 잘 사람과 눈도 마주치지 않는 것보다는 이름정도는 알고 잠에 드는 것이 자연스럽지 않은가.



 그저 눈에 보이는 '한국말 잘하는 외국인' 궁금했을 , 한가지 생각에 사로잡혀 사람  사람으로 궁금증을 갖지 않았다.


 생각해보면 서울에서 나의 삶이 이런 식이었다. 눈에 보이는 것에 너무 쉽게 현혹되어, 정말 중요한 것을 알 기회를 놓쳐버리곤 했다. 늘 피상적 증거로 사람을 판단해버리고는 더 알아보려고 하지 않았다.  


 그의 이름은 루샤였다. 동유럽의 작은 나라에서 왔으며, 현재 한국의 회사에서 일을 하며 정착을 준비하고 있다고 했다. 이름을 알게 되니 수면에만 머물던 대화가  깊게 변했다. '게하에서 만난 한국말 잘하는 외국인'이란 정의는 '동유럽에서 한국으로  루샤'라는 존재가 되었다.





가슴에 남을 인간적인 것을 궁금해 하는 사람이고 싶다. 이름을 묻는 여행자이고 싶다. 두려움 없이 솔직한 사람이고 싶다.







 

Copyright  솔립 All right reserved

매거진의 이전글 집이 어디인가 묻는다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