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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솔 Oct 22. 2020

제주도 파티 게스트하우스 스텝 하면 썸 타?

2편. 아니절대네버? 파티 스텝의 하루 루틴과 기적처럼 만난 우리



같은 집에서 살았으면
썸 타는 사람 엄청 많겠네?



 내가 제주도 게스트하우스 스텝으로 3달 살고 육지로 돌아왔을 때 제일 많이 들은 말이다. 이런 질문을 하는 이들은 혈기 왕성한 여자 남자가 모여서, 하물며 같은 집에서 일상을 공유하면서 한 달씩 같이 사는 건데! 정분이 안 생길 리 없다는 확신에 찬 얼굴로 묻는다.


 하지만 우리의 관계는 뭐랄까, 군대 전우들이 가지는 것과 비슷했다. 사랑보다는 서로 으쌰으샤하는 전우애가 파릇파릇 싹트기 좋은 환경이었다. 왜냐하면 파티 게하 스텝의 업무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로맨틱하지 않기 때문이다.




생각보다 로맨틱하진 않은
파티 게하 스텝의 업무

 파티 게스트하우스의 스텝은 어떤 업무를 할까? 하루를 가정해보겠다. *업무 강도 및 내용은 게하 별로 천차만별임을 미리 밝힌다.


 우선 게스트하우스 숙박객 중 2명 이상이 파티 참여 의사가 있다면 파티가 열린다. 게스트하우스에게 파티는 꽤나 짭짭할 수입원이기 때문에 인원이 적어도 최대한 파티를 열려고 하는 편이다. 파티 분위기가 좋다면 주류 판매로 쏠쏠하게 매출을 올릴 수 있다.





 가장 먼저 게스트들에게 문자를 보낸다. 최대한 발랄하고 설레는 말투로.


 참석 여부를 빨리 보내주면 좋겠지만 마감기한인 5시까지 보내주지 않으시는 손님들이 꼭 1명씩 계신다. 그럼 전화로 파티 참석 여부를 확인한다.


 파티 개최 여부에 따라 게하 스텝들이 밖에 나가서 노느냐 아님 파티에 참석하느냐가 결정되기 때문에 손님들의 답장은 우리에게 꽤나 중요한 문제였다. 파티가 확정 나는 5시까지 애가 탔던 기억이 난다. 이런 심정을 알기 때문에 다른 게스트하우스에서 묵게 된다면 최대한 빨리 참석여부를 결정해 알려주려는 습관이 생겼다.


 파티 개최가 확정되면 이때부터 파티 스텝의 본격적인 업무가 시작된다. 테이블을 여러 개 붙여 파티 자리를 만든다. 테이블에 청결을 위한 비닐을 깔고 조리사분들이 만들어주신 요리를 옮긴다. 자질구레한 접시, 수저와 젓가락, 거대한 물통 전부 옮긴다.  술은 게스트 1인당 1병씩, 단가가 가장 저렴한 푸른 밤으로 나간다. 물론 스텝들은 따로 하루에 1병씩 무료로 마실 수 있다. 알콜중독되기 딱 좋은 근무환경이랄까.





 우리 게하는 푸짐한 딱새우 요리가 파티에 나오는 것으로 꽤 유명했는데, 손이 부족할 땐 가끔 스텝들도 수술용 라텍스 장갑을 끼고 딱새우 회를 손질하기도 했다.


 얼음물에 담가 탱탱해진 냉동 딱새우의 꼬리를 자르고 등을 따라 일자로 가위질을 해서 딱딱 소리를 내가며 딱새우를 까는 일은 내가 가장 좋아했던 일이기도 하다. 딱딱 소리를 들으며 단순 노동을 하고 있자면, 내 어깨를 무겁게 하던 걱정들이 다 사라지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딱새우 공장에 가면 끊임없이 딱새우를 깔 수 있단 소리를 듣고 단기 알바에 지원할까 진지하게 고민하기도 했다.



흥이 오르면 일명 황금마이크를 꺼내어 우리 세대의 노래를 부르기도 했다. 단골 노래는 버즈의 나에게로 떠나는 여행



 8시, 세상 뻘쭘한 표정을 한 게스트들이 어슬렁어슬렁 카운터로 다가온다. 그럼 파티비를 카카오 페이로 받고 파티 장소로 안내해준다. 가끔 시간적 여유가 있으면 딱딱한 분위기를 풀기 위해 게스트들에게 농담을 던지기도 했다. 스텝은 게스트들 사이에 한 명씩 배치된다.


 이는 혼자 온 손님을 배려한 결정이다. 같이 온 일행끼리만 끼리끼리 대화하는 걸 방지하기 위함도 있다. 파티에서 서로 아는 사람끼리만 이야기하면 재미있는 파티가 되기 어렵다. 여러 번의 게하 파티를 참석해본 개인적 의견은, 비슷한 연령대의 낯선 이들이 모여 어디로 튈지 모르는 대화를 할 때가 가장 즐거운 파티가 된다.


 같이 온 일행이라 같이 앉고 싶다면 자리를 붙여주기도 한다. 하지만, 새로운 사람을 만난다는 설렘 때문일까? 일행과 붙여달라고 부탁하는 경우를 본 적은 없었다. 스텝들의 역할은 이들이 자연스럽게 섞일 수 있도록 물꼬를 터주는 것이다.




게하 스텝의 직업병

 



 파티가 끝난 후 급격하게 굳어가는 스텝들의 표정을 발견했다면 당신은 예리한 사람이다. 손님들은 즐겁게 2차를 기약하거나 다음날 여행을 위한 잠에 들 시간에 스텝들에게는 새로운 업무가 시작된다.


 바로 설. 거. 지. 함께 2차로 한잔 하자는 게스트들을 근처 이자까야에 보내 놓고, 비장한 발걸음으로 부엌을 향한다. 손님들이 사용한 그릇은 물론, 조리기구까지 설거지해야 한다. 얼큰하게 취했던 정신이 갑자기 깨어나는 것이 느껴진다. 설거지를 하다 보면 파티 때의 흥은 사라지고 얼른 쉬고 싶다는 마음만 남게 된다.


 파티 게하 스텝으로 일하다 보면 파티를 마냥 즐길 수는 없게 되는 직업병에 걸린다. 다른 게하 파티에 참석했을 데 정적이라도 흐르면 왠지 모르게 이 정적이 내 탓인 마냥 스트레스받기도 하고, 나도 모르게 분위기를 띄우기 위해 노력하는 자신을 발견할 수도 있다.




그리하여
기적처럼 만난 우리



 파티의 물꼬를 트는 스텝의 나불거림(?)은 사실 어딜 가나 똑같다. '언제부터 여행하셨냐, 어디가 제일 좋았냐, 여기 게하는 어떻게 알고 오셨냐, 어제는 뭐 하셨냐' 파티 때마다 던지는, 꽤나 판에 박힌 질문이지만. 사람마다 다른 답변을 듣는   즐거운 일이었다.



어려워진 항공사 사정으로 퇴사하고 바이크 여행을 온 남자 승무원, 오로지 맛있는 파티 음식을 먹기 위해 파티에 참석했다는 96년생 동갑내기들, 워홀에서 시작된 인연이 제주도 올레길까지 이어진 두 친구, 사이클 선수를 하다가 다른 길을 찾아 나선 친구들, 운동선수를 하다가 유튜브를 시작해서 제주도 여행을 영상으로 담아간 유튜버, 부모님께 용돈을 300만 원씩 받는다는 대학교 1학년생...
수많은 사람들의 인생에 귀를 기울였다.



제각기 다른 고민과 결정을 안고 있었지만, 우리는 기적처럼 제주에서 만났다.

비록 평생 다시 볼 사람이 아닐지도 모른다.

어쩌면 생각보다 오래 보게 될 인연이 될지도 모른다. 어땠든 이 순간 우리는 서로의 지금을 나누었다.

그리고 이 시간은 생각보다 오래도록 기억에 남아 우리를 위로해줄 것이다.














솔향을 머금은 글과 사진을 담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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