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여행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솔 Mar 07. 2021

바다가 조용한 때는 파도를 기다리는 때뿐이다

그리하여 인간도 그렇다.


 11월 어느 날의 새벽 한 시, 나는 강문해변에 있다. 수고스럽게 기차를 타고 강릉까지 간 것은 밤바다를 보겠다는 일념 하나로 저지른 일이었다. 쩌렁쩌렁 천둥 치듯 파도가 모래사장을 울린다. 한평생 내륙에서 산 나에게 그 소리는 너무 공포스러운 것이라, 손바닥으로 빈틈없이 귓구멍을 틀어막는다. 내 안에 일어나는 죽음에 대한 공포를 잠재우며 겨우 흔들 그네에 안착한다. 나를 한입에 삼켜버릴 기세로 달려드는 파도 소리는 눈을 번쩍 뜨게 할 정도로 아리게 울려 퍼진다.


 좀처럼 익숙해질 것 같지 않던 흉악한 소음은 듣다 보니 적응이 되는 것이었다. 어느새 백색소음이 된 파도를 들으며 아무 말 없이 바다를 보고 앉아 있다. 순간 정적이 찾아온다. 하얀 거품을 일며 모래를 덮치던 파도가 뒤로, 더 뒤로 후퇴하고 있다. 몇 초 후 꽝. 지금까지 왔던 것들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 센 파도가 내 귓구멍까지 밀려온다. 그 위력은 모래사장에 앉아있던 연인의 신발까지 젖게 할 정도로 거대하다. '아아 바다가 조용한 때는 오직 더 큰 파도를 기다리는 때뿐이구나' 바다도 더 큰 파도를 만들기 위해 정적을 견딘다. 정적의 순간, 사실 더 큰 파도를 만들기 위해 안 보이는 곳에서 바닷물 한 방울까지 모으고 있다.


 매일 치는 파도지만, 더 큰 파도를 만들기 위해서는 정적이 필요하다. 순간 바다는 죽은 듯하지만 곧 생명력을 과시한다. 그리하여 인간도 그렇다. 더 큰 인생을 살기 위해서는 정적을 견디어야 한다. 인간은 반드시 한 번, 적어도 한 번의 정적을 갖는다. 그러니 우리 파도를 보며 정적에 초연해지자. 모두 자연의 이치이니, 나의 정적을 나의 끝이라 매듭짓지 말고 꿋꿋하게 정적을 견뎌라. 더 큰 파도를 만들 것이니.




[바다가 조용한 때는 파도를 기다리는 때뿐이다-솔립]





솔향을 머금은 글과 사진을 담습니다.

Copyright ⓒ 솔립 All right reserved

매거진의 이전글 눈 내린 창경궁에서 생일 도시락을 먹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