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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산균 Dec 12. 2017

'대표' 기도가 없는 예배



장면1.  소모임 형태의 기도회하면 떠오르는 추억.

요런 멘트를 듣고나면, 성질급하고 침묵을 참지못하는 누군가 혹은 감투 쓴 누군가의 책임감에 의한 마무리기도가 이어지거나, 모든 사람들이 '자유롭게' 순서대로 돌아가면서 마무리 기도를 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함께 기도를 할 때는 꽤나 할말이 많았는데, 

막상 '성령님이 이끄시는대로'라는 아우라 섞인 말에 조금 주춤해지기도 하고, 멍석을 깔아주니 갑자기 고요하게 경직되어 버린다. 



장면2. 회중이 함께 모여드리는 예배에는 의례히 대표기도가 있다. 

교회의 예배순서 중에는 늘 ‘대표기도’가 있다. 주일 대표기도는 남성인 장로님, 집사님들이 맡는다. 주중예배에서는 여성들이 주로 맡는다. 아마도 주중 저녁에 회사가 아닌 교회에 주일 예배에 정기적으로 참여할수 있는 남성 집사, 장로는 많지 않을테니... 일단 집사님장로님은 30대 중반 이상의 나이이고, 특히 장로님은 신앙적 뿐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본이 되어야 한다는 주관적인 기준 상, 대표기도 담당은 남자 중년 이상의 아저씨. 

(교회법에 이런 것도 적혀있나? 교회는 다니지만 교회법 모르는 무식한 교회문화인 ) 주보에는 거의 한달 동안 있을 대표 기도자가 게시되고, 기도문을 미리 적어서 준비하시기도 하고 기도자는 평소의 차림과는 달리 양복을 입고 오기도 한다. 



장면3. 


고블랑 교회의 예배 절차는 여러 가지 면에서 나에게 자유로움을 주었다. 

복음주의 개신교로 분류되는 프랑스의 다른 교회 예배들도 몇번 참석했던 경험에 비추어 본다면, 한국에 있는데 여기엔 없는 것 중 하나는 대표기도다. 주일 예배에서 대표기도의 중요성 비중을 생각해본다면 참 대조적이다. 


정해진 담당자가 정해진 순서에 대표기도를 하는 대신, 여기에서는 예배 중간중간 기도시간이 자주 있다. 예배 순서 사이 마다 사회자가 던지는 주제에 대한 짧은 기도시간이 있을 뿐이다. 감사기도, 간구기도, 회개기도, 선교에 관한 기도 등등. 모든 기도의 시간은 예배에 참여한 모든 사람들이 큰 소리로 자기가 앉아있는 자리에서 기도를 한다. 때로는 각 사람들의 기도가 끊이지 않아 시간이 오래 걸릴 때도 있고, 동시에 여러사람이 기도를 시작해 엇 하는 순간도 있다. 아무도 선뜻 기도하지 않아 사회자가 마무리 할 때도 있다. 덕분에 예배 시간에 나의 목소리를 내는 것이 덜 어색하다. 예배의 '담당자-목사 혹은 사회자'와 '참여자-회중'이라는 구분은 무의미하다는 점도 마음에 든다.





형식적 편의성 이외에 대표기도 혹은 '권위를 가진' 누군가가 대신해주는 기도가 갖는 특별한 의미가 무엇인지 나는 아직 잘 알지 못한다. 한국에서라면 교회의 대형화도 하나의 원인일 수 있겠다.  나이나 성별에 따른 역할 구분이나 교회내에서 권위라는 단어의 쓰임  등등에 민감한 편인 나도, 교회에서만큼은 예민하게 그 잣대를 들이대지 못했던 것 같다. 은혜 떨어지게 무슨 그런 소리를… 이라는 말 줄임표 분위기에 너무 익숙했던 나는야 교회문화인. 그래서 사회 문화의 축소판인 교회문화에 대해 그래도 회사나 학교보다는 낫다며 어느 정도 포기 혹은 문제삼지 않으려고 의식적으로 노력했다. 


대표기도가 없는 프랑스교회의 예배 형식 역시 타인에게 자신의 권리를 이양하지 않고, 평등한 문화를 지향하는 프랑스 문화와 맞닿아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다음 기회에 더 자세히 쓰도록하고!) 한 사회관습 안에서 최적화된 종교형식들을 상황적으로 이해할 필요는 있지만,  그 모든 형식을 뛰어넘는 영광스러운 예배의 자리에서 따로 또 같이 하나님을 만나기에 가장 좋은 방법을 고민하는 것 또한 나에게 주어진 숙제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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