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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산균 Dec 31. 2017

엘리 이야기

 

엘리는 고블랑 교회에 가끔 ‘오는’ 아니 '왔었던' 유대인이다. 언제부터였는지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자신을 소개하던 어떤 주일에 자신은 유대인이며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있다고 소개했다. 교회에서 광범위하게 ‘소비’하고 있는 ‘유대인’이라는 타자를 그렇게 직접 신앙적인 콘텍스트에서 만난 적이 없기도 했고, 유대인이 예수님을 믿는다는 건 무슨 뜻일까 호기심이 생겼다. 그러나 그와 개인적인 이야기를 할 기회는 오지 않았다. 예배 중간에 와서 의자에 앉지도 않고, 뒤에 기대어 서서 팔짱을 낀 채 서있다가, 설교가 끝나면 바로 유령처럼 사라져 버렸다. 사람들과 대화하거나 인사를 나누는 일은 거의 없었다. 


그럼에도 그 이유를 사회성이 떨어지거나 부끄러움을 많이 타는 성격 탓이라 여기기는 힘들었다. 설교 중간에 갑자기 큰소리로 끼어들어 설교자의 이야기를 반박하기도 하고, 자신이 ‘동의하는’ 이야기가 나올 땐 아멘을 외치기도 하면서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냈다. 주중 성경공부 시간에도 참석해서, 원형 테이블 저 뒤에 혼자 서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다가 한 마디씩 반박하는 것을 잊지 않는다. 논지는 개신교인들이 유대인의 역사에 대해 너무 무지하다거나, 예수를 해석하는 방식이 잘못되었다거나, 유대인의 후손으로 예수 그리스도가 왔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고 강조하는 것이었다. 

큰 키에 마른 몸과 좀처럼 웃지 않고 눈살을 찌푸리며 사람들을 주의 깊게 바라보는 그는 한눈에 보아도 매우 예민한 성격인 것 같았다. 누군가에 말에 의하면 지금은 직장인이지만 노숙자로 지내던 시절도 있었다고 하니, 그의 인생사도 만만치 않았을 것이라 감히 짐작해본다. 그렇게 한 번씩 폭탄을 터뜨리던 그가 한동안 보이지 않아 까맣게 잊고 있었는데, 최근에 자주 모습을 드러냈다. 그를 기억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묘한 긴장이 흘렀다. 그런데 예전처럼 설교에 끼어든다거나 사람들과 말다툼처럼 보이는 토론을 하는 일은 거의 일어나지 않았다. 설교만 듣고 조용히 나간다. 다행이다 싶으면서도 좀 아쉬웠다. 조용한 우리 교회에 저렇게 조금 유니크한 캐릭터 하나 있으면 재밌을텐데... 말이 통하지 않아 말을 멈추어버렸나 싶기도 했고, 그 사이 그의 생각이 바뀐것은 아닐까 싶기도 했다. 다른 교회를 방황하다가 맘잡고 이 교회에 다녀보자 했나 싶었다.  




하루는 설교가 끝날 무렵, 바닥을 쿵쿵대며 걸어 다니거나 고래고래 소리 지르며 노는 이레를 데리고 앞마당에서 바람을 쐬고 있었다. 엘리가 갑자기 우리를 따라 나오더니 처음으로 말을 걸었다. 이레의 이름이며 나이며 자세히 묻더니, 대뜸 자기가 이레에게 사과할 것이 있다고 했다. 

 

몇 주 전 이레가 예배실 안에서 돌아다니며 시끄럽게 해서, 이레를 쳐다보며 손가락을 입에 대고 쉿-을 했는데, 시커먼 아저씨의 무서운 표정에 놀란 이레가 빽 울어버렸던 것이다. 그는 적잖이 당황했고, 그 뒤로 이레를 울렸다는 미안함에 신경이 쓰였단다. 그 시절 천둥 벌거숭이 김이레는 자기 맘대로 못하거나 낯선 사람이 들이 대거 나하면 빽빽 울어대고 그랬을 무렵이었던 듯. 전혀 기억도 못하고 있던 일이었는데...

나는 그에게 걱정 말라고, 이레는 아직 울음으로 말하는 나이라고 안심시켰다. 나에게도 늘 그런 식으로 항의한다고. 하지만 엘리는 자기가 이레에게 용서를 받아야만 한다고 했다. 그리고는 이레를 바라보더니, ‘이레야, 나를 용서해줄래?’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여전히 천둥벌거숭이 이레는 자기 기분 내키는 대로 손을 흔들며 좋아하니 그제야 가벼운 얼굴로 길을 나선다. 그때 그가 웃는 모습을 처음 보았다. 

그것이 엘리와의 첫 번째 개인적 대화… 이자 마지막 대화. 그의 예민함과 섬세함이 조금은 낯설고 불편하면서도 특유의 직설법이 마음에 들었다. 아이에게도 사과를 하다니 따뜻하고 예의 바른 사람이구나 싶었다. 그러면서도 이 세상을 살아내는 게 고통이겠구나 싶었다. 




고블랑 교회는 한달에 한번 정도 성도들의 간증시간이 있다. 미리 정해진 사람이나, 함께 나누고 싶은 이야기가 있는 사람들이 자유롭게 참여할 수 있는 시간인데, 교회에 출석한 지 꽤 되었고 사람들과도 편해진 우리에게도 간증을 제안했다. 비록 불어로 전달하는 간증에는 한계가 있었지만, 사람들 앞에서 하나님과의 만남을 소개할 수 있는 것은 늘 감사한 일이다. 간증을 부탁받은 김은 자신이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게 된 계기였던 야곱 이야기를 짧게 나눴다. 참 그답다. 수많은 성경의 이야기 중, '아름다운' 말씀이 아닌, 속이는 자 야곱이라니. 김은 금요 예배의 창세기 설교를 듣고 정말 ‘빛’을 보았노라 고백했다. 아니 더 정확히는 자기도 야곱처럼 자신의 욕망을 위해 살아가는 죄인임을 깨달았노라 말했다. 


엘리는 그날 웬일인지 설교가 끝나고, 성찬식이 끝나고, 심지어 광고시간까지 남아있었다. 설교시간에 은혜를 받았나 보다 했다. 지난번 일로 엘리와 친해졌다 생각한 이 오지랖 아줌마는 끝나면 반갑게 인사를 해야지 벼르고 있었다.  광고시간, 오랜동안 침묵을 지키던 엘리는 갑자기 번쩍 손을 들더니 야곱은 그렇게 못되고 이기적인 인간이 아니며, 그를 통해 예수님이 나온 것 아니냐며 흥분해서 말을 이어갔다. 아마도 야곱이 자신의 삶을 성공적으로 꾸리기 위해 열심히 일하고, 하나님을 이용하고, 인간적인 욕망에 가득 차 있었다는 김의 해석이 불편했나 보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대 서사시까지 펼쳐놓기 시작하는 그를 누군가 말리지 않았다면, 아마 그의 이야기는 끝나지 않았을 것이다. 예배 후 몇 몇 사람들과 벌게진 얼굴로 이야기를 나누는 엘리를 그렇게 지나쳐버린 후로 그를 보기 힘들었다. 


정확히 그 주부터였는지도 이제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교회가 누구에게나 열려있는 곳일까를 늘 고민한다. 엘리를 생각하면, 교회에서 만나 내 주변을 스쳐지나갔던 수많은 (사회적, 영적..) 주변인들을 떠올리게 된다. 





고블랑 김씨가족+빵린


김_ 사전검열 담당, 영적과장

호_아이디어 및 글담당, 호기심 호

빵린_이미지 담당, 모든 그림의 카피라이트 소유자

이레_2살 신입회원, 청소 및 간식먹기 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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