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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산균 Feb 01. 2018

송구영신 모임

고블랑 교회는 이렇다 할 행사나 이벤트 등이 없다. 


가장 큰 ‘행사’로 꼽을 만한 것이 부활절에 한 번씩 하는 동네 이웃들 초청 잔치 (프랑스인들이 별 부담 없이 참석하기 편한 음악회를 주로 하는 편) 그리고 성탄절 예배다. 한국에서는 성탄절이 되면 몇 주 전부터 부서별로 공연 준비도 하고 북적북적 한데, 여긴 성탄절이 가족들끼리 모이는 명절이다 보니 특히 파리 사람들은 다 시골집(?)으로 간다. 성탄 당일은 가족과 보내기 때문에 조용하다 못해 심심할 정도. 사람이 그리 많지도 않고, 각 부서들이 활발하게 조직되어 있는 교회는 아니라 성탄 예배 역시 매우 조촐한 가족모임 느낌이다. 송구영신 때 공식적으로 드리는 예배도 없다. 이날은 주로 친구들이나 연인들끼리 파티를 하며 보내기 때문이다. 파리에 와서 정기적으로 성탄이나 송년파티를 하던 친구들도 다들 한국에 있고, 우리도 올해는 조용한 새해를 맞이하겠구나 싶었다. 


2017년의 마지막 날은 일요일이었는데, 그 날 오전 예배에 모였던 이들끼리 대화하다가 오늘 저녁에 뭐해?로 시작된 대화가 오늘 저녁에 같이 모여서 새해를 맞자가 되었던 것. 송구영신 모임은 저녁 8시에 시작하기로 했고, 다들 집에서 알아서 나눠먹을 음식을 준비해 오기로 했다. 

우리 교회는 한 달에 한 번씩 함께하는 식사시간이 있다. 교회에서 같이 식사할 때는 사람들이 집에서 각자 요리를 해 오는데, 메뉴는 아주 다양하다. 프랑스식 식사예절에 걸맞게, 음식을 한 번에 다 내놓지 않고 순서대로 그릇을 돌려가며 자기 그릇에 떠먹는다. 일단 식전주나 샐러드와 빵을 먼저 먹고, 모든 사람에게 다 돌아가서 다들 먹었다 싶을 때까지 다음 단계로 넘어가지 않는다. 다음으로 따뜻한 메인 요리를 먹는데, 주로 고기류 위주로 먹는다. 나는 이런 모임에는 주로(가 아니고 거의 매번) 불고기를(만) 해가는데, 요리 실력이 별로 티가 안 나면서도 외국인이 먹기에 가장 무난하고 맛있는 음식임을 경험적으로 확인했다. 중간중간 빵이나 음료수 와인 등은 수시로 먹고 한참 또 이야기하면서 쉰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디저트를 먹는다. 주로 집에서 만든 타르트나 케이크 류의 단 것 위주로 먹고, 성탄절이나 새해를 즈음해서는 뷔셰드 노엘이라는 장작 모양의 케익이나 갈레트를 먹는다. 그리고 마무리는 커피나 와인으로. 


평소에 이레가 잠드는 시간인 9시 정도를 고려해서 우리는 8시쯤 가서 좀 놀다가 10시나 11시쯤 오면 딱 괜찮겠지 싶었다. 2시간 정도면 대충 밥은 먹을 시간이니까. (보통 교회에서 점심시간 2시간, ㅋㅋ 예배시간보다 길다.)  집에서 이것저것 먹을 것을 준비하고, 우리 집 대표로 이레만 파티 의상 장착하고 출동했다. 8시쯤 도착했을 때는 테이블 세팅이 한창이었다. 아직 올 사람들이 더 있으니 기다리는 동안 식전주 타임. 요리를 데우기도 하고, 파티에 걸맞게 샴페인과 푸와그라를 먹으며 수다를 떤다. 속속 도착하는 이들과 한 명 한 명 인사를 나누고 나서야,  드디어, 우리가 테이블에 착석하고 시계를 보니 9시 반이었다. 엇 이러면 계획에 차질이 생기는데? ㅋㅋ 마음이 초조해진다. 너무 늦은 거 아냐? 


한해를 마무리하는 모임이니 함께 찬양도 하고, 기도하고, 서로 인사 및 덕담도 하고 나서야 식사 시작. 일단 샐러드. 시간은 10시 반, 그러나 테이블 위에는 아직 풀때기만… ㅎㅎㅎ분위기상 한 30분은 더 있어야 밥 먹을 듯한 분위기. 8시부터 와서 망아지처럼 뛰어다니며 파티 분위기 물씬 풍기신 김이레 양은 얼굴이 벌게진 채 모든 에너지를 소진하신 상황~ 안 되겠다. 작전상 후퇴. 그리하여 배고파하며 집에 11시에 돌아왔다는 웃픈 이야기. 


"모두 올 한 해 함께해서 감사하고 즐거웠어. (비록 밥은 아직 안먹었지만) 너무 늦은거 같아서 우린 이만 갈게."

했더니 모두들 깜짝 놀란 눈으로 "이제 시작인데 어디가?"라고 말했다느은...

"음식이라도 싸가"라고 했다는...




얘들아? 근데 우리 일단 밥 먹고 수다 떨면 안 되는 거니? 금강산도 식후경 너흰 조상님이 내려주신 뭐 이런 지혜의 말씀 같은 거 없는 거니? 

주중에 올라온 모임 후기를 보니 12시를 기다려 함께 카운트 다운을 하고, 새해 기도제목을 나누고 디저트는 1시에 먹기 시작했다고 합니다라라라랑. 다음 모임엔 더 철저한 준비를! 일단 초저녁에 한숨 자고 가는 걸로!!











고블랑 김씨가족+빵린


김_ 사전검열 담당, 영적과장

호_아이디어 및 글담당, 호기심 호

빵린_이미지 담당, 모든 그림의 카피라이트 소유자

이레_만 2살 신입회원, 청소 및 간식먹기 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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