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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산균 Mar 01. 2018

나도 예수님의 몸을 기념할래요!

김이레의 고블랑 적응기

성찬에 대한 어릴 적 교회에서의 기억은 예배당 한쪽 주방에서 집사님들이 모여 열심히 빵을 자르시고 가지런히 강대상에 올려 흰 천을 덮으시던 장면. 성찬식이 끝나고 나면 컵을 수거하고 씻으며 어른들이 다 먹고 남은 빵 꼬다리를 친구들과 먹던 장면. 

좀 더 커서 성찬은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가장 가까이 있었던 식사시간. 그리하여 엄숙하고 죄를 회개하는 참회의 분위기가 주를 이뤘던 기억. 마음에 거리끼는 게 있으면 참여 안 해도 된다는 멘트를 곱씹었던 기억. 

그리고 좀 더 커서는 성찬이 가진 죄 사함과 부활이라는 의미를 되새겨 볼 기회가 있었고, 더 즐겁고 조금 덜 엄숙하면 어때라고 혼자 생각하며 참여했던 기억. 아마도 예수님과 제자들의 최후의 만찬-그러나 제자들 중 그 누구도 ‘최후’ 임을 몰랐던-은 엄청나게 소란스럽고 왁자지껄하지 않았을까 혼자 상상해보기도 한다.  


고블랑 교회는 매주 성찬식을 한다. 


성찬 전 읽는 말씀과 멘트는 한국과 비슷하다. 특별한 절기에 따라 일 년에 서너 번 하는 기념 의식이기보다는 매주 예배의 일부로 성찬이 들어가 있다. ‘기념’과 ‘기억’에 있어서는 꽤나 유효한 듯하고, 매주 기계적이로 지나가는 순서처럼 축소되는 아쉬움이 느껴지기도 한다. 성찬의 의미에 대해서는 차치하고, 형식적인 면에서만 생각해본다면, 


한국에서는 성찬식 때 늘 공들여 준비한 진짜 맛있는 빵과 진한 포도주가 나왔던 것 같은데... (뭐지 식당 메뉴 소개 같잖아?) 오히려 와인의 나라라는 이 동네는 슈퍼에서 파는 가장 싼 포도 주스에 참 크래커처럼 생긴 과자를 잘게 부수어서 담는다. 따로 수찬 위원은 없고, 예배 참여자들 중 남녀를 막론한 성인 2인이 잔과 빵을 돌린다. 


*카톨릭 교회와 같은 전통과 형식을 고수하는 곳 중에는 모든 교인이 빙 둘러서서 큰 포도주 잔을 한모금식 마시고 옆사람에게 돌리면서 성찬을 진행하는 곳도 있다. 큰 빵 하나로 뜯어먹는건 봤는데, 큰 잔으로 나눠마시는 건 처음본 김과 나는 어엇;; 하며 차례를 기다리던 중 마시지 않고 패스하는 다른 이들을 발견한 후 가볍게 바로 옆사람에게 잔을 전달했더랬다.




이번 주일도 변함없이 예배 중간에 성찬식을 한다. 성찬식 시간에 아빠 옆에 조신한 모습으로 앉아있던 이레는 아빠가 집어 드는 주스잔-그것도 자기 손에 딱 맞는 사이즈-과 과자에 시선이 꽂힌다. 다들 하나씩 집어먹으니, 기회를 호시탐탐 노리지만, 아빠는 눈도 마주쳐주지 않고 다들 눈감고 기도하고 있으니 이레도 분위기상 교양 있게 행동하는 편. 

아이들이 대부분 오지 않아 이번 주는 설교시간에 진행하는 주일학교 모임도 따로 없고, 예배시간도 길었으며 간식까지 챙겨 오지 않은 탓에 예배가 끝날 무렵이 되자 엄청나게 배가 고프기 시작한다. 광고시간, 갑자기 이레가 앞쪽으로 당당하게 걸어가더니, 성찬식 그릇에 손을 떠억. 테이블에 제법 높았으나, 뭐 그 정도쯤이야. 그러고는 광고 시간과 마지막 찬양 시간 계속 저러고 과자를 집어먹었다는 사실… 


저 금단의 구역에 한번 발을 들여놓은 이후,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고 있다지. 








고블랑 김씨가족+빵린


김_ 사전검열 담당, 영적과장

호_아이디어 및 글담당, 호기심 호

빵린_이미지 카피라이트 소유자

이레_만 2살 신입회원, 청소 및 간식먹기 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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