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캉스 조기교육!
1.
프랑스에서 공교육은 가족, 직장, 사회와 다같이 맞물려 같은 리듬으로 움직인다.
9월에 학기가 시작하면 6주동안 학사 일정이 시작되고 2주간 방학을 맞는다. 다시 6주간 학교에 가고 2주를 쉰다. 이런 식으로 6주+2주의 리듬이 그랑(grand)바캉스라고 하는 여름 방학(거의 2달)때 까지 이어진다.
의무교육이 시작되는 만3세 이상의 아이를 둔 부모들의 일정은 매년 비슷하다. 아이들의 방학에 맞춰 휴가를 내거나 아이들의 방학 프로그램을 알아본다. 방학은 프랑스 내수 경제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므로 관광 산업과도 관련이 깉다. 이 방학 일정을 주관하는 곳이 교육부가 아니라 우리로 치면 문화관광부(?)라는 사실을 알고 좀 깜짝 놀랐다. 사실 생각해보면 아주 당연하다.
2월 방학은 스키를 타기 위한 방학이고, 12월은 멀리 떨어져사는 모든 가족구성원이 모이는 명절, 4월의 부활절 방학 쯤 되면 날이 따뜻해지니 본격적인 여행이 시작되는 철이다.
방학 시기에 닥쳐 바닷가 근처의 캠핑장이나 관광지의 숙소, 기차표 등을 예약하려면 평소 가격의 2-3배 정도 비싸다. 그래서 보통 3-4달 전에 예약은 기본이고 여름 바캉스 숙소는 일년 전에 예약을 하기도 한다.
학기 중 바캉스는 한번에 사람들이 이동하고 몰리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지역마다 방학이 켭치지 않도록 프랑스 전역을 3개의 존으로 나누어 기간을 달리 한다. 이런 일련의 과정은 사회의 조직적인(!!) 리듬과 속도를 만들어낸다. 마치 파블로프의 개처럼, 방학 직전 시기는 피곤한 몸이 바캉스를 기다린다.
2.
두 달에 한번씩 돌아오는 바캉스는 둘 다 일을 하고 프랑스에 다른 가족이 없는 우리같은 외국인 부모에게는 조금 고역스러운 일이다. 방과후 활동처럼 시에서 운영하는 프로그램에 아이를 맡길 수 있지만, 매번 방학마다 그렇게 하기는 '방학'을 맞은 아이에게 미안한 일이기도 하다. 그래서 우리는 2주 중 보통 한주는 방과후 프로그램으로 한 주는 가족여행을 계획하는 편이다. 이것도 내가 프리랜서이고, 남편의 회사가 유동적으로 근무시간을 조율할 수 있어서 가능한 일..
아이 친구들은 보통 한주는 조부모 집에 맡겨지고, 한주는 부모와 시간을 보내는게 일반적이다. 조부모들도 방학 때 한주 정도씩 맡아주는 것을 당연한 일로 여긴다고 한다. 조부모들은 방학에 맞춰 아이들을 맞을 준비를 한다. 방학 기간 파리의 미술관이나 관광지, 공원에는 할머니 할아버지 손에 이끌려 문화탐방 다니는 애들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기차역에는 시골 조부모님집으로 인계되는 아이들의 인파가 가득하고..
3.
이런 방학의 리듬 덕분에 우리는 계절의 변화와 절기에 해야할 일들을 떠올리게 된다.
날씨와 일기가 중요하고, 이맘때 쯤이면 꼭 해야하는 의례적인 일들을 챙기게 된다.
이 일상의 의례들을 잘 즐기고, 이 리듬에 맞추어 여행을 다니고, 방학을 보내는 삶.
삶의 질에 대한 지표와 기준이 많이 달라졌다.
많은 것을 소유하는 것보다 좋은 시간을 보내고 그 계절에 즐길 수 있는 자연을 만끽하는 삶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조금씩 알아가고 있다.
이제 만3세부터 약 4년 넘게 이 리듬을 유지해 온 이레는 다음 방학을 기다린다. 그리고 이번 방학에 방과후 활동하는 날수를 계산해서 우리와 네고를 하기도 한다.
바캉스에 진심인 프랑스 문화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진게 아니다. 조기 교육으로 만들어지는게다.
4.
그리고 페르낭드 레제는 1936년 법으로 확립된 유급휴가 제도에 대한 그림을 그렸다.
1948-1949년에 그려진 <유급휴가>라는 제목의 위 그림은 파리 퐁피두 센터에서 확인할 수 있다.
바캉스를 맞은 가족의 여유로움. 자전거를 타고 자연을 즐기는 가족들.
전경에 비스듬히 누워있는 여성은 프랑스 대혁명 (1789) 시기의 화가인 자크 루이 다비드에 대한 오마주를 보여준다. 다비드는 나폴레옹의 혁명 동지이자, 혁명당의 영웅이었던 <마라의 죽음>을 그린 화가!
레제에게 있어 <유급휴가>제도는 프랑스 대혁명이 지닌 '자유'의 정신을 구현하는 사건이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