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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산균 Oct 21. 2021

권리를 주장한다는 것

남의 아이도 혼내줄 수 있나요? 


1. 


아침 8시 반 경, 여전히 깨지 않은 몽롱한 몸과 정신으로 버스에 오른다. 47번 버스 간격은 들쑥날쑥 해서 타이밍이 잘 안 맞는 날은 10분 넘게 기다려야 한다. 유모차에 앉아 언제든 자신의 지루함을 괴성으로 표현할 준비가 된 이든에게 움직임 없는 10분은 너무 길다. 내가 빨리 걷는다고 버스가 바로 오는 것도 아닌데, 괜히 버스로 이든을 데려다주는 날이면 걸음이 빨라진다. 땀도 송글송글 맺힌다. 큰길로 나오는 골목을 거쳐 신호등 앞에 서면 47번이 오는 방향을 향해 고개를 고정하고 종종걸음을 친다. 다행히 버스가 도착하기 전에 우리가 먼저 정류장에 도착해 여유롭게 버스 기사가 열어준 뒷문으로 유모차와 함께 슬라이딩한다. 


이 바쁜 출근시간 대에 정류장에 서서 버스를 기다리는 것만큼 다급 해지는 순간이 있을까. 버스가 출발음을 내려는 순간, 내가 들어온 뒷문으로 20대 초중반 정도로 보이는 한 사람이 껑충 뛰어 들어온다. ‘휴 다행이다’라는 안도의 숨을 내쉬며 커다란 가방을 발 옆에 내려놓고 겉옷 하나를 벗어 팔에 걸치는 그 이에게 괜히 이입되어 서로에게 다행이라는 미소를 날린다. 교통 카드를 찍기 위해 운전석 옆으로 간 그 이에게 날리는 운전기사의 말, 


-아니, 뒷문으로 타면 안 되는 거 몰라요? 그렇게 갑자기 올라타면 어쩌라고. 사고 나면 책임질 거야? 

(이런 고요하고 잠 덜 깬 아침에 듣기에는 하루를 망치기 딱 좋은 핀잔 섞인 말투였다.)


그러고 보니 이 버스는 뒷문으로는 타지 못하게 되어있는 짧은 버스였다. 파리 시내에 운행하는 버스는 (아마도 노선별 이용자의 수를 감안해) 두 차를 연결한 긴 버스와 한 대로 되어있는 짧은 버스가 있다. 유모차나 휠체어 이용자들을 위해 뒷 문을 열어주지만, 그 외에는 앞 문으로만 승차하게 되어있다. 운전자의 말을 들은 그 사람의 표정을 흘깃 보았다. 남이 듣기에도 무안하고 민망한 문장들이었다. 갑자기 운전자 옆으로 씩씩거리며 다가가는 그에게서 전열이 느껴진다. 버스를 잡느라 뛰어서일까, 싸움을 준비하는 태세일까.


 버스기사와 승객의 티격태격 하는 말다툼은 종종 볼 수 있는 일이다. 불필요한 감정싸움을 피하게 하기 위해서일까? 승객과 버스기사의 말싸움을 피하기 위해서가 못적인지는 모르겠지만 파리의 시내버스에서 기사들은 주로 녹음된 안내 방송을 이용한다. 

‘거 좀 안으로 들어가세요!’를 대신하는 마치 GPS를 켜놓은 듯한 기계음의 나긋나긋한 녹음기가 켜지며 ‘버스가 안전하게 출발하기 위해 다른 승객의 자리를 확보해주시기 바랍니다’ 라던가 ‘돈 안 내고 타신 분!’ 대신 ‘대중교통 요금을 내지 않는 행위는 벌금 부과의 대상이 됩니다.” 식의 감정 없는 목소리가 버스 안에 울린다. 안내방송을 이용하는 대신 소리를 지르는 기사도 오랜만에 봤거니와 듣는 사람 입장에선 충분히 기분 나쁠 만한 말투와 볼륨이라니. 버스 기사에게 다가간 그이는, 


-그런데, 아저씨 뒷문으로 탄 건 제가 죄송한데요, 저한테 그냥 좋게 말했어도 다 알아 들었을 거예요. 전 열다섯 살짜리 아저씨 딸이 아니에요. 왜 그렇게 다그치듯이 말씀하시죠? 너무 급해서 정신없이 올라타느라 미쳐 확인 못한 거뿐인데 너무 말을 심하게 하시네요. 그런 말을 들을 정도로 잘못한 일은 아닌 거 같은데요. 


헉, 아침부터 버스 싸움구경?! 을 할 준비를 하고 있는데, 나의 기대를 저버리는 기사 아저씨의 대답 


-아 내가 그렇게 말했나? 뒷문으로 타면 위험하다고 말한 거지. 화나게 하려고 한건 아닌데 위험하니까 소리 지른 거지. 앞으로는 그렇게 올라타지 마요. 


뭐 대화는 이렇게 싱겁게 끝나지만, 이 대화의 여운이 며칠간 마음에 남았다. 중년이 넘은 버스기사와 20대 초반 대학생 여성의 대화치고는 너무 수용적인 거 아닌가? 이런 역학관계가 가능한 거야? 둘의 대화는 프랑스 문화에서 이야기하는 자기의 권리를 주장하는 법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했다. 자신이 잘못된 대우를 받았거나 마땅히 누려야 할 권리가 있을 때 그것을 말로 표현하는 방법, 비록 기분은 상하지만 그 담화의 중심에 사건을 벗어난 감정싸움으로 번지지 않게 하는 방법에 대해 고민해보게 되었다. 


왜 나는 학교에서 혹은 사회생활을 하면서 무언가 부당함을 느끼는 일에 대해 당사자에게 말하는 게 왜 그렇게 가슴이 떨렸을까. 그래서 결국 말하지 않은 채 혼자 속으로 삭히거나 억울해하며 끙끙 앓았던 기억이 떠오른다. 큰 맘먹고 어렵게 말을 꺼내면 사이가 멀어지거나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무언의 압박과 끝내는 죄책감을 느껴야 했던 건 왜였을까. 내가 잘못한 것이 아니라 잘못된 것을 지적한 것뿐이었는데, 상황이 개선되기는커녕 내가 카탈스럽고 건방진 사람이 되어버렸던 몇몇 사건들은 나의 성향 때문이었을까. 




2. 


가을의 마지막 자락인 요즘, 해가 뜨는 주말이면 우리는 서로에게 sos를 쳐 아이들을 놀이터에 풀어놓는다. 조이와 팔로마와 이레는 오늘도 신나게 논다. 팔로마가 다른 학교에 입학하게 되는 바람에 자주 볼 수 없는 아이들은 너무 신이 났다. 그 사이 엄마들은 잠깐의 여유를 즐기며 노닥거리는 시간이다. 아이들의 학교생활, 새로 만난 친구들과 선생님 이야기, 팔로마가 새로운 학교에서 잘 적응하고 있는지 등이 오늘의 대화 주제이다. 

한창 신나게 놀던 조이가 갑자기 울면서 달려온다. 어디 다친 곳이 있나? 벌떡 일어나 그녀의 온몸을 살핀다. 


-(조이) 흑흑... 팔로마랑 이레가 둘이만 다녀. 나는 안 끼워주고. 

-(조이 엄마) 뭐? 말도 안 돼! 이레랑 팔로마 어딨어? 


-(조이 엄마) 팔로마 이레 이리 와 봐. 너희들 조이랑 같이 안 논다고 했어? 친구들이랑 같이 노는데 안 끼워주면 기분이 어떨까? 그렇게 하는 건 절대 안 돼 알겠어? 

-(팔로마 엄마) 팔로마 이레 왜 그랬어? 조이가 얼마나 속상하겠어! 그건 너무 슬픈 일이야. 

-(이레 엄마) 조이한테 사과하고 안아줘. 


그렇게 셋은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미안해하더니 언제 그랬냐는 듯 하하호호 뛰어갔다. 아마도 아이들끼리 놀다 보면 열 번씩은 일어나는 사소한 중재 상황이었다. 


-난 팔로마가 학교에서 왕따 당하면 학교 선생님과 교장을 신고할 거야. 애를 보호해주지 않고, 그렇게 왕따 시키는 애들을 그대로 놔두면 진짜 평생 간다니까. 

-맞아 당연히 그래야지!


내 머릿속에서는 자연스럽게 버스에서 만난 그녀와 조이 엄마의 대사가 겹쳐졌다. 나라면 다른 애들을 혼내기보다 그냥 한 말이겠지, 이해해라고 먼저 이레를 달래려고 하지 않았을까. 





이곳에서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고, 항의하는 것은 불편한 대화 주제가 아니다. 오히려 너무 자연스러운 일상 토크의 일부이다. 일하는 동료들끼리도 누군가 자신의 권리를 침해하거나 일을 떠넘기면 냉정하고 차갑게 항의하다가도 10분 후 희희낙락하며 농담을 주고받는다. 오히려 아까의 대화에서 남은 사소한 감정의 찌꺼기를 갖고 있는 게 민망할 정도이다. 


비록 나는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는 것보다 타인의 입장을 이해하고 조화를 이루고 협동하는 것이 최고의 미덕이라 배우며 자랐지만 그것을 아이에게 물려주고 싶지는 않다. 타인의 기분을 맞추는 것보다 내 감정을 잘 알고 다루어 가는 방법을 먼저 가르치고 싶다. 내가 배우지 않은 것을 가르치기는 쉽지 않다. 그렇게 나도 같이 배워가고 있다. 


네가 하기 싫은 건 싫다고 말해. 

네 물건이나 시간의 주인은 너야. 

네가 원하지 않으면 굳이 나누지 않아도 돼, 대신 네 소유물에 대한 책임은 너에게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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