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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산균 Oct 14. 2021

아이의 생일파티, 부모의 숙제?

1.  생일에 큰 의미부여를 하지는 않는다. 일단 사람들이 촛불 끄는 나를 바라보는 게 부담스럽다. 선물을 받으면 '고마워, 감동이야,...'등등의 말을 하는 게 어색하다. 어떤 말도 내 진심이 잘 전해지지 않는 것 같다.

외국 생활로 인해 요즘에 좀 변한 부분은 가족, 친구들과 멀리 살고 있으니 생일을 핑계로 소식을 전할 수 있는 건 좋은 것 같아, 생일 축하를 넙죽넙죽 잘 받으며 산다. 남의 생일은 잘 안 챙기면서도. 거기에 더해 만약 아이와 함께 살고있다면 각종 파티를 빼먹어서는 안된다. 그 의미야 무엇이됐든 분위기를 좋아하는 나이, 그래서 요즘 가족들 생일파티 주최는 김이레가 도맡아 한다. 얼마 전 내 생일 파티도 주최자는 김이레였다. 내 취향도 아닌 장식들을 구질구질 붙여놓아 주고, 자기가 좋아하는 맛의 케이크를 고르지만 모든 것은 엄마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한 것임을 설파할 때면 제대로 속아준다. 그런  아이다움의 기운이 나를 좀 더 활기차게 만든다.


2.  만 6세가 된다는 것은 초등학교 입학이라는 뭔가 새로운 단계로 도약하는 과정이 있고, 몇 년 만에 백신도 맞아야 하는 등등 외적인 통과의례가 있다. 이레는 부쩍 이런 의식을 즐기는 나이가 되었다. 이제 학교에서 마스크를 쓰는 것도  자기가 6살이라는 '자격'을 갖추었음을 의미하기 때문에 답답함이 아닌 자랑스러움이 된다. 나이를 먹는 게 이렇게 설레고 기다려지는 일이었던가… 그렇다 이젠 생일파티를 해야 하는 나이인 것이다. 그리고 김과 나에게 남겨진 과제. 생일파티를 준비하라!!


3. 개인적으로 생일파티에 대한 기억 몇가지가 떠오른다. 7살에 다니던 유치원에서 매달 파티를 해주고 생일자들은 한복을 입고, 마치 돌상이라도 되는 양 거하게 차려진 테이블 앞에서 사진을 찍었던 기억. 언니를 따라 한복을 입고와 사진에 찍혔던 동생은 자신의 지우고 싶은 흑역사로 기억하는 그때 그 유치원의 생일파티. 지금의 이레와 같은 나이였던 내가 어색 어색 표정으로 찍혀있다. 티는 내지 않지만, 아마 속으로는 엄청 좋아했겠지.

초등학교 1-2학년 때쯤이었던 듯, 집으로 친구들을 초대했던 파티. 상위에는 김밥, 잡채 같은 잔치 음식들이 있었고 무엇보다 평소엔 먹지 못했던 새하얀 생일 케이크가 올려져 있던 기억. 친구들이 사 온 선물은 학교 앞 문방구에서 파는 천 원 남짓한 문구 세트였던 것 같다. (아님 내가 친구의 생일에 사갔던 것도 같고) 초대했던 친구들도 기억나지 않고 무엇을 하고 놀았는지도 기억나지 않지만 생일 상의 풍성함 만큼은 잘 기억난다.

초등학교 4학년, 당시의 나는 눈에 띄는 아이는 아니었지만 공부도 나름 잘하고 선생님이 좋아하던 몇몇 아이들 중 하나였다. 사실 학기초에는 키 순서대로 지정받아 앉는 앞자리의 J와 가장 친했었다. 있는지 없는지 모르게 조용하고 내성적이었던 우리 둘은 당시 반장이자 엄청 나대고 원하는 사람과는 꼭 친구가 되고야 마는 E가 나를 찜한 덕분에 그냥 그렇게 서서히 멀어졌다. 반에서 소위 주류 그룹에 얼떨결에 속해버린 나는 생일에 멀어진 J를 초대하지 않았던 것 같다. 생일 무렵 아침에 교실에 들어가 평소처럼 무리 지어 이야기하며 놀고 있었는데, 저 멀리서 다가온 J가 나에게 쭈뼛쭈뼛 선물을 내밀었다. 마치 주지 말아야 할 것을 주는 사람의 모습으로, 그리하여 받는 사람도 뭔가 당황스럽게 만드는 표정으로. 그것을 받으며 왠지 모르게 부끄러웠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고맙다고 기쁘게 대답하지 못했다. 그와 멀어진 일말의 미안함 때문이었던 것 같다. 중고등학교 때의 생파 기억은 딱히 인상적인 게 없는 걸 보니, 생일파티에 행복해하는 나이도 얼마 남지 않았음을 기억하며 이번 이레의 생일은 좀 성대하게 맘껏 축하해줘야겠다는 동기부여는 이제 충분히 되었다.


4.  이레가 아직 보육원에 다니던 꼬꼬마 시절, 가깝게 지내던 친구 엠마에게 생일 초대를 받은 적이 있다. 초보 부모였던 우리는 아직 아이의 친구를 초대하는 생일을 경험해본 적이 없어서 (보통 아이 생일파티는 부모 친구들이나 가족들이 축하해주는 걸 생각했는데) 그 부모가 좀 유난스러운가 보다 했다. 생각해보니 그들은 3살 많은 첫째 아들 덕분에 생일파티 문화에 익숙했고, 아직 보육원에 다니는 딸의 세 돌을 맞아 친한 친구 두 명을 초대했던 것이다.  집에서 했던 생일파티는 조촐하고 아기자기했지만, 막상 그들과 잘 알지도 못하고 초면도 아닌 초면에 꼬치꼬치 신상조사를 하는 것도 이상하고 여하튼 별로 할 말이 없는, 아직 육아 토크에 익숙하지 않았던 나에게는 너무너무 어색했던 시간이었다. (미안해요 엠마 엄마, 그땐 즐길 수가 없었어요.지금은 프랑스 짬밥이 좀 되어 그냥 시시껄렁한 수다도 곧잘 떨곤 하는데, 그때는 내 친구가 아닌 아이의 친구 부모는 뭔가 어색한 관계였던 시절이었으니.) 게다가 엠마 엄마는 선물은 준비하지 않아도 된다는 관용구스러운 메시지를 남겼는데, 나는 곧이곧대로 어린애들 생파라 생일 선물 같은 건 하지 않나 보다 하고 생각했다. 그 전날 이레의 스티커북을 사며 하나 더 골라 엠마에게 전해줘야지라고 생각하지 않았으면 어쩔 뻔했어... 왜 그런 관용구를 남기는 거냔 말이다. (지금은 이레 생일에 뭐 사주면 좋을까 하는 이레 친구 엄마들의 문자에 열심히 대답해준다. 선물 고르기 정말 어려운 걸 아니까ㅋㅋ) 이렇게 시작된 생일파티의 역사.


5. 그런데 이 프랑스 부모들, 아이들의 생일파티에 정말 진심인 것 같다. 뭔가를 물질적으로 거창하게 해 준다는 의미보다는 부모가 아이를 위해 같이 놀아준다는 느낌이다. 아이의 친구들을 자기의 지인으로 만드는 과정이기도 하다. 집에서 만든 간단한 케이크에 풍선 몇 개가 고작인 데코를 가지고도 공원을 순식간에 놀이동산으로 만들어 버린다. 아이들이 서로 친해지고 날씨도 좋아지는 시기인 5-6월 주말에는 생일 초대로 빈 주말이 없어질 정도다. 아이들을 위한 시간이기도 하고, 이때 부모들끼리도 대화하며 친해지는 시간이기도 하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생일 초대가 하나의 매개가 되어 관계들이 형성된다.


6. 사실 우리는 이레 친구들을 한 번도 초대한 적이 없다. 기본적으로 주목받는 것 싫어하는 우리의 성향 탓도 있고, 누구는 초대하고 누구는 안 하고 그런 것도 싫고, 물리적으로도 10월 초면 이미 너무 추워져서 공원에서 파티하기 어려워지는 날씨 탓도 있고, 그렇다고 집으로 초대하자니 우리 집은 다른 아이들이 들어와 놀 공간이 없고...뭐 핑계는 많았다.

늘 남의 생일에 초대만 받고 초대는 안 하는 것 같아, 김과의 대화 끝에 생일 파티를 열 수 있는 현실적인 방법으로 학교 앞 아틀리에를 예약해주기로 했다. 방과 후에 아이들이 미술 활동을 할 수 있도록 맡아주는 곳인데, 주말에 생일 파티 예약을 받아 파티를 열어준다. 특별히 준비할 것도 없고, 일기예보를 보며 마음을 졸이지 않아도 되고 무엇보다 아이들의 움직임을 감시하거나 놀 수 있는 프로그램을 따로 만들어주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 큰 장점이다. 우리의 맥락을 고려한 최상의 선택이라 뿌듯해하며, 드디어 이레에게도 생일 파티를? 이레가 너무 감동하는 거 아냐? 라는 김칫국도 잠시…근 몇달동안 여섯살 노래를 부르던 그녀,


-이레야, 너 곧 6살이네! 네 생일파티에 누구 초대하고 싶어?

-엄마, 그런데 우리 집은 너무 좁아서 친구들을 초대할 수가 없어.

-(헉!) 그럼 다른 친구들처럼 공원에서 파티하면 되잖아.

-엄마, 그런데 10월은 너무 추워서 밖에서 파티를 하기가 힘들어.

-(헉헉헉, 그동안 우리가 파티를 안해준 이유를 자기 나름대로 찾아낸 건가?)아, 그럼 이레야 엄마가 다른 곳에서 이레 친구들이랑 같이 놀 수 있게 파티해줄게.

-음, 엄마 나 그냥 우리 가족끼리 하고 싶어. 친구들 초대 안 하고.


사실 널 위해 한번 해주마, 였던 우리는 순간 머릿속이 복잡해져 버렸다. 이레는 그동안 우리가 마음속으로만 댔던 핑계들을 이미 알고 있었다는 듯 읊어댔다. 이레가 낸 수수께끼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하기 싫다는 건가? 진짜? 이렇게 며칠이 흐른 후, 이레는 “나 친구들 초대할래!” 하고 폐허에 꽃가루를 날렸다. 이미 폐허가 된 머릿속을 정돈하고, 아무 일도 없었던 듯 그렇게 초대장은 배달되었다. 아침 등굣길에 귀신같이 초대한 친구들만 쏙쏙 골라 카드를 나눠주는 그녀, 이제껏 본적 없는 공격적이고 빠릿빠릿한 이레가 낯설었다.


7. 그래 이레 취향이 그냥 그런 파티보다 가족끼리 하는 게 좋을 수도 있지. 엄마 아빠가 준비한 것 같으니 한번 한다고 해준 건가? 때론 아이가 원할 것이라 생각하는 것을 지레짐작해버리는 우리의 욕망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생일파티를 물질로 해결하는 속물스러운 선택이 내 스스로도 찝찝했었던걸까. 엄마가 된 후 처음으로 숙제 검사를 맡는 기분이다.

“주인공 한번 만들어줘! 잘하고 있는 거야!” 라는 한 육아 선배의 말에 맞아 난 엄마니까 그래도 되는 거지 하고 안심이 되었다. 이레가 그 자리를 마음껏 누리도록 도와줘야겠다. 얼른 사춘기가 와서 엄마 아빠는 빠져줘 하는 날이 오길 살포시 기다리며…


8. 자기 검열 심하고 매사에 심각한 엄마를 둔 이레야, 앞으로도 이런 일 좀 생길 거 같은데 미리 미안하다. 그래도 파티는 즐거울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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