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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눈눈 May 01. 2022

필사가 뭐예요?

꼭꼭 씹어 책 읽기

3년 전부터 해 오는 교육학 공부모임에서 나를 가장 힘들게 하는 것은 독서이다. 책을 읽고 그에 따른 생각이나 질문을 써야 하는데 나는 도대체가 질문이 생겨나질 않았다. 글쓴이의 생각을 따라 읽다 보면 특별한 저항감 없이 '아~ 이 사람은 이런 말을 하고 있네'라고 하면서 다 이해된 듯 넘어간다. 하지만 모임 시간이 되어 교수님께서 어느 한 문장을 붙잡고 '이것이 무슨 뜻인가요?'라고 물어보시면 아무 말도 할 수가 없다. 혼자 읽을 때는 이해했다고 여겼던 문장이 말로 설명하려니 하나도 제대로 알고 있지 못했다. 나는 도대체 어떻게 책을 읽은 것인가?


대부분의 사람은 어떻게 해서든 편해 볼 요량으로 읽기를 배운다. 장부를 적고 거래에서 속지 않으려고 셈을 배우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고귀한 지적 운동으로써의 읽기는 거의, 혹은 전혀 모른다. 하지만 그런 고차원의 읽기야말로 진정한 의미의 독서다. 그런 독서는 사치품처럼 우리를 달래거나 고귀한 재능이 잠들게 하지 않는다. 오히려 까치발로 선 듯 바짝 긴장하게 만들고 가장 기민하게 깨어 있는 시간을 바치게끔 이끌어 간다. (중략)
대부분의 사람은 글자를 읽을 줄 아는 것만으로, 혹은 남이 읽어 주는 글을 듣는 것만으로 만족하며, 단 한 권의 좋은 책(성경)에 담긴 지혜에 자신을 내맡겨 버린다. 그러고는 남은 생애 내내 소위 가벼운 읽을거리나 뒤적거리며 자신의 재능을 낭비하는 무기력한 삶을 살아간다.

[월든, p.154, 헨리 데이비드 소로/더스토리  전행선 옮김]


책 읽는 것을 참 좋아하고 나의 가장 즐거운 취미였는데 내가 이렇게 책을 제대로 읽고 있지 못하다니 정말 충격이었다. 지금까지의 나의 독서는 가벼운 정보만을 찾아다니며 글자를 읽을 수 있게 된 재능을 낭비하는 그런 독서였던 것이다. 책을 읽으며 질문이 생겨나지 않았고 당연히 글을 쓸 수 없었다. 여러 번 읽으면 더 나아질까 생각하며 같은 챕터를 2번, 3번, 4번, 5번을 읽어보았다. 하지만 별로 달라지는 것이 없었다. 오히려 책을 읽는 즐거움이 사라지게 되었다. 같은 내용을 여러 번 읽으니 내용은 다 아는데 거기서 어떤 질문을 찾아내야 한다고 생각하니 더 어려웠다. 방법을 모르겠으니 답답해서 울고 싶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책을 제대로 읽는다는 것이 도대체 어떤 것인지, 시간이 지나면 저절로 알게 되는 것인지 알 수가 없어 속을 끓였다.




다른 사람들은 책을 읽으며 어떤 생각들을 하는지 더 알고 싶었다. 그래서 여기저기를 기웃거리던 중 지인의 추천으로 인문학 책을 읽는 '슬로우 리딩' 독서 모임을 시작하게 되었다. 따로 정해진 모임을 갖는 것은 아니었다. 모임의 방식은 같은 책의 정해진 분량을 일주일간 읽고, 노트에 마음에 드는 문장을 필사하고 단상을 쓰는 것이다. 공유는 사진을 찍어 카톡방에 올려도 되고 인스타그램이나 블로그로 해도 된다. 모임장의 라방이나 특정일이 정해지지 않은 화상 모임을 열 수도 있다고 했다. 정기적으로 시간을 내어 모이지 않아도 된다고 하니 부담이 훨씬 덜했다. 사실 모임 시간을 내기 어려울 정도로 이미 스케줄이 너무 가득 차 있었다. 하지만 이 모임은 각자 자신의 시간에 책을 읽고 공유하면 되니 큰 무리 없이 시작해 볼 수 있었다. 500페이지나 되는 책을 혼자서 끝까지 읽어낼 수 있을까 걱정이 되었지만 시작해 보기로 하였다.


하루에 약 15페이지의 책을 읽으며 인상 깊은 문장에 밑줄을 친다. 마음에 드는 몇 문장만 필사하려고 했는데 이 책은 곳곳에 그런 문장들이 즐비하다. 어느 것 하나 버릴 수 없어 다시 읽어보며 노트에 문장을 써나간다. 그러다 보니 그 자리에서 최소 2번은 읽게 된다. 손으로 쓰려니 눈으로 읽을 때와는 다른 글씨들이 보인다. 눈으로 읽을 때는 스르륵 지나가 버렸던 단어나 글자들을 손으로 쓰려니 한 글자 한 글자 제대로 읽어야 한다. 손은 눈만큼 빠르지 않으니 손이 쓰는 사이에 생각이 자꾸만 생겨난다. 그런 생각들을 얼른 붙잡아 다른 색깔 펜을 꺼내 쓴다. 이렇게 쓰는 짧은 생각들은 형식을 갖추지 않고 그냥 생각나는 대로 쓸 수 있으니 쉽게 써진다. 아무래도 15페이지를 다 읽고 생각을 쓰려면 정리하는 작업이 필요한데 문장 밑에 바로 쓰는 생각들은 그럴 필요가 없어 훨씬 쉽다. 아무 맥락 없이 불쑥 튀어나온 생각들도 그냥 써두어도 된다. 날에 따라 마지막에 그날의 단상을 쓰기도 한다. 이렇게 쓰다 보니 내가 책을 읽으며 이렇게 많은 생각을 할 수 있구나를 새삼 느끼게 되었다. 그러니 15페이지 책을 읽은 소감이 풍성해진다.


카톡이나 인스타그램으로 다른 멤버들의 필사 노트를 볼 수 있다. 와.. 그런데 같은 부분을 읽었는데 필사 노트에 적힌 단상들은 너무나 달랐다. 내가 이해하지 못했던 비유적인 문장들에 대한 해석을 쓴 분도 있었다. 정말 무릎을 탁 치게 되는 해석이었다. 나이도 사는 곳도 인생의 경험도 모두 다른 사람들이다 보니 그들의 생각에서 얻는 배움도 참 컸다. 어쩜 이럴 수 있을까. 다른 이들의 필사 노트가 너무 재밌다. 


낮 시간 동안은 다른 일이 많기 때문에 처음 일주일은 일과를 모두 끝낸 밤 10시에 책 읽기를 시작했다. 책을 읽고 필사를 하고 단상을 쓰는데 2시간이 넘게 걸렸다. 낮에는 도저히 그만큼 시간을 들여 집중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 내가 밤에 책을 읽으니, 낮에 다른 멤버들이 올린 필사 노트의 내용들이 떠올라 오롯이 내 생각만으로 책을 읽기가 어려웠다. 생각이 나도 모르게 그쪽으로 흘러가게 되는 것이다. 내가 먼저 순수하게 나의 관점에서 책을 읽는 것이 필요했다. 그.래.서. 새벽에 일어나 책을 읽기로 했다. 6개월을 애써도 실패했던 새벽 기상을 거짓말처럼 첫날부터 성공하게 되었다. 내가 먼저 책을 읽고 다른 이들의 필사 노트를 읽으니 더 재미있었다. 일어나서 꼭 하고 싶은 일이 생기니 알람을 듣고 기쁜 마음으로 일어날 수 있었다.


5시부터 7시까지 책을 읽고 사색을 하고 필사를 한다. 누구에게도, 어떤 소음으로부터도 방해받지 않고 오롯이 나에게 집중하여 책을 읽는다. 조용한 방에 퍼지는 글씨 쓰는 소리. 현실과 떨어져 있는 것 같은 나만의 시간과 공간이다. 이렇게 2시간을 보내고 나면 행복감으로 충만해지는 것을 느낀다.




금요일은 교수님과의 교육학 공부모임이 있는 날이다. 벌써 5번도 더 읽은 것 같은 교수님의 글을 또 어떻게 더 읽어야 할까 답답했는데 이번에는 필사를 하며 읽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서론 부분의 4쪽만 읽고 필사하는데 2시간이 걸렸다. 아무것이나 떠오르는 대로 막 써나갔다. 나 혼자 볼 거라고 생각하니 정말 내 마음대로 드는 생각을 다 썼다. 확실히 그 전에는 그냥 지나쳤던 문장들이 다른 의미로 다가왔다. 너무 기뻤다. 맞든 틀리든 5번 넘게 읽은 글을 다시 새롭게 볼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 놀라웠다. 새롭게 파악한 글의 요지를 간략하게 쓰고 생겨난 질문들을 작성하여 공부모임에 갔다. 내가 느낀 글의 요지를 설명하는 동안 교수님은 여러 번 '정확합니다.'를 말씀하셨다. 마지막에는 어떻게 이렇게 잘 파악하였냐며 놀라워하셨다. 물론 교수님의 글을 100% 완벽히 파악하였다는 말씀은 아니었다. 그동안 내가 책을 제대로 읽는 것을 어려워한다는 것을 알고 계신 교수님께서 아주 조금 달라진 내 모습에 큰 칭찬을 해주신 것이다. 하지만 매 공부모임마다 답답해하며 속을 끓였는데 오늘은 큰 자신감을 얻게 되었다. 정말 높은 장벽을 하나 넘은 기분이 들었다.




책을 필사하는 독서 모임을 통해 큰 선물을 여러 개 받은 기분이다. 새벽 기상의 즐거움을 다시 찾게 해 주었고 천천히 깊게 읽는 독서 방법을 알려 주었다. 또 다양한 사람들의 다양한 생각으로부터 얻는 배움까지.


많은 사람들에게 추천하고 싶다.

필사를 통해 자신만의 선물을 받을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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