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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눈눈 May 29. 2022

Why do you live?

영어학원 수업 답해보기(영작) 1번 질문이다. 이 질문에 이토록 진지해지게 되다니..


내 삶의 가장 큰 가치는 행복이다. 단지 개인의 행복을 추구하는 것만이 사회의 목표가 될 수 없을지도 모른다고 어떤 책에서는 말하지만 나는 아직 그 이상의 삶의 가치를 찾지는 못했다. 그렇다면 나의 행복은 어디에서 오는가?





내 삶을 이어나가게 해 주는 행복감이 바닥난 적이 있었다. 사는 게 힘들고 괴로운 적은 많이 있었겠지만 사는 이유를 찾지 못하겠다고 느낀 적은 처음이었다. 나의 존재가 아무 가치 없는 것으로 느껴졌다. 이렇게 삶을 이어나가는 것은 무의미한 것이라고 느껴지기도 했다. 자살을 생각하는 사람의 마음이 이럴 수도 있겠다고 처음으로 생각해보게 되었다.(내가 자살을 생각해보았다는 뜻은 아니다.)


내 삶의 가장 바닥이라고 생각했던 때는 놀랍게도 둘째 육아휴직 8개월 차 때였다.


밥을 굶거나 몸이 으스러질 정도로 힘든 노동을 하는 것도 아니었다. 정신적, 육체적 학대를 당하는 것도 아니었다. 그럼에도 나는 생애 처음으로 삶의 의미를 잃었었다.


그래서 깨닫게 되었다. 사람은 자기를 돌보는 시간이 없이는 살 수 없다는 것을.


아이를 돌보는 데에 나의 온 마음과 시간을 다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것이 나의 의무라고 생각했고 잘 해내고 싶었다. 아이와 있는 시간은 힘들 때도 있었지만 대체로 행복했고 아이는 참 예뻤다. 하루 종일 아이를 먹이고, 놀리고, 씻기고, 재우는 일의 연속이었다. 놀아야 하는 시간에는 동화책을 읽어주거나 동요를 틀어놓고 불러주기도 하고 율동도 해주고 각종 장난감으로 놀기도 했다. 24시간을 아이와 함께 있었다. 그리고 대부분의 시간 동안 나 혼자였다.(그때 남편은 공부로 11시나 되어야 퇴근을 했다.) 하지만 아이가 너무 사랑스럽고 예뻤기 때문에 총 육아휴직을 한 기간 1년 9개월 중 1년 6개월 정도는 편하고 즐겁고 행복했다.


하지만 그 기간이 지나자 점점 내가 활짝 웃지 않는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신나고 기대되는 일이 없었다. 힘들지만 정성을 들여 이루어 내는 성취감도 없었다. 어디에서도 감사하다는 말을 들을 수 없었다. 나의 존재 가치를 느낄 수 없었다. 생각해보니 휴직 기간 동안 책을 단 한 권도 읽지 않았다. 펜을 잡고 글씨를 써 본 적도 없었다. 대화를 나눌 상대는 아이뿐이었으므로 지성적 사고 기능이 정지된 것 같았다. 나를 점점 잃어가고 있었다.

"그건 왜냐면... 결혼한 여자의 얼굴에는 빛이 없거든."
 엄마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바라보았다. 눈빛으로 어떤 충격 같은 것이 지나가는 것이 느껴졌다. 내게 그건 사실이었다. 내가 친구들의 엄마를 보면서 느낀 거였는데, 안정감이라든가 노련함이라든가 하는 표정은 있었지만 뭐랄까, 반짝반짝하는 빛 같은 것은 본 적이 없었다. 이렇게밖에 표현할 수 없는 게 좀 그렇긴 하지만 내 친구 엄마들의 얼굴에는 늘 '세상에 새로운 게 뭐가 있겠어. 나쁜 일이나 없으면 됐지.' 하는 어떤 체념 같은 것이 딱딱하게 어려 있었다. 엄마는 내 말에 잠깐 생각하는 표정이 되었다.
 "엄마, 나 만나러 뉴질랜드 왔을 때, 그때 엄마는 지금보다 솔직히 더 날씬하고 예뻤는데, 그런데 행복해 보이지는 않았어... 그런데 지금 엄마는 살도 좀 더 찌고 나이도 좀 들었는데 - 미안, 삼 년 전 일이니 양해하시길 - 훨씬 더... 뭐랄까, 빛나 보여."
 "그거는....... 그거는 위녕, 결혼을 해서가 아니라 자기 자신이 얼마나 자신으로 살아가는가의 문제야. 그러니까..... 결혼을 하고 안 하고 가 아니라 자기 자신을 얼마나 지키고 사랑하고 존중하는가의 문제라니까......"
 "알아. 그런데 그게 없더라니까, 거의 본 적이 없어. 그럴 때 사람들은 생각하는 게 아닐까, 저 여자는 아줌마구나."

-즐거운 나의 집(공지영) 중에서

 출산 전 일하던 때를 생각하니 나는 참 반짝반짝 빛나던 사람이었는데 지금은 빛을 잃고 아무 생각 없이 하루를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휴직 기간이 끝나고 복직을 하면서 나는 다시 활짝 웃을 수 있었다. 아침에 출근하여 만나는 교무실의 동료가 그렇게 반갑고 좋을 수가 없었다. 교실에서 만나는 학생들 한 명 한 명이 참으로 사랑스러웠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삶의 의미를 찾을 수가 없었는데 출근을 하니 이렇게 행복할 수가 없었다. 육아 휴직 후 알게 된 행복은 소중했고 선명했다. 


나는 이 행복을 지켜나가고 싶었다. 그래서 나를 온전히 나로서 행복하게 하는 것은 무엇인지 눈을 크게 뜨고 찾기 시작했다. 한참을 관찰하니 결국 이 두 가지가 보였다.


첫 번째는 수업이다. 수업에 관해 선생님들과 열띤 토론을 하며 함께 고민하는 시간들이 행복하다. 수업 이야기가 이렇게 재밌는 것이었다니. 치열한 고민을 담아 계획한 수업을 끝내고 나올 때는 기쁨과 희열이 있다. 수업이 잘 되는 날은 하루 종일 기분이 좋다. 수업 준비가 만족스러운 날엔 출근길이 더 즐겁다. 나의 준비로 교실 속에서 학생과 교류하며 함께 즐겁게 배워나갈 수 있다는 것이 놀랍다.


두 번째는 사람이다. 매일을 함께 하는 동료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것은 내 행복의 큰 부분이다. 서로를 의지하고 이해하고 지지해줄 수 있는 선생님들이 있으면 학교 가는 것이 늘 즐겁다. 또 내가 가진 것들이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고 나의 말과 행동이 모두에게 기쁨이 될 수 있다는 것이 나를 가치 있는 사람으로 느끼게 해 준다. 그들과의 대화가 내 지성의 뇌를 깨운다.


그렇다면 이제 나는, 이들을 가꾸며 나의 행복을 가꾸어나가고 싶다. 온전히 나 자신으로의 행복을 가꾸며 빛을 잃지 않는 사람이 되고 싶다. 수업과 사람에 온 열정을 다하며 '살아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렇게 여러 해가 지나니 '사람'들이 점점 깊이 보인다. 한 인간으로서의 나약함이 보이고, 더 나은 삶을 살고자 하는 열망도 보인다. 각자의 삶을 살아내고 있는 교실 아이들의 아름다운 영혼이 보인다. 한 사람을 알게 되면 또 하나의 큰 우주를 알게 된다는 말이 깊이 다가온다.


나 자신의 순수함을 되찾게 되면, 우리는 이웃의 순수함도 알아볼 수 있다.
(중략)
그 순간 당신은 그의 모든 허물을 잊는다.

- 월든(헨리 데이비드 소로/더스토리) 중에서


이웃의 순수함을 알아보게 되면 그의 허물은 그리 중요하지 않게 된다. 나 또한 얼마나 많은 허물을 가지고 있는 사람인가. 이들에게 위로와 선한 영향을 줄 수 있는 내가 되고 싶다. 내가 나를 찾고 '살아 있게' 되었듯이 내가 만나는 모든 이들에게 자신의 순수함을 바라볼 수 있게 해주고 싶다.


그래서 나는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다. 스스로를 갈고닦아 흔들리지 않는 깊이를 가진 사람이 되고 싶다. 그리하여 한 인간으로서의 순수한 열정과 에너지가 은은하게 주위를 물들여 나갈 수 있기를 희망한다.






Why do you live?


올해 나는 많은 일에 도전하고 있다. 어떨 때는 내가 왜 이러고 있나, 무엇을 하고 있나라는 질문이 생겨난다. 분명히 내가 원해서 시작한 일이었음에도 숨 돌릴 틈 없이 바쁜 여러 날을 보내고 나면 이런 물음이 생겨난다. 주변 사람들로부터 조언도 얻고, 위로도 받으며 생각이 시간을 거슬러 가니 다시금 그 시작이 보인다.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이 나를 성장으로 이끈다.


나는 더 나은 내가 되기 위한 공부를 하고 있다. 더 나은 사람으로 되는 공부는 한 가지가 아닐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니 내가 어째서 그토록 많은 것들에 욕심을 부리며 배우고자 했는지, 그 깊은 곳에 무엇이 있었는지 이해하게 되었다.


Why do you live?

I live because I want to be happy.
My happiness is from knowing other people.
I want to contribute to human being.
(나는 행복하기 위해 산다.
내 행복은 다른 사람들을 알아가는 데에 있다.
나는 사람들의 삶에 기여하고 싶다.)

왜 사느냐는 질문에 엉터리 영어로 순간 대답한 말이 내 삶 전체를 돌아보게 하였다.


더 기쁜 마음으로 즐기며 행복해하며 삶을 살아가야겠다는 다짐이 생긴다.

내 주위의 모든 이들이 자신만의 행복을 가꾸어 나가길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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