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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눈눈 Jun 12. 2022

여행이란 무엇일까?

내 삶을 채워주는 것

해마다 휴가철이 되면 의무적으로 여행을 계획한다.

여행의 목적은 무엇일까? 사람들은 여행에서 무엇을 얻는 것일까? 여행은 모두 즐거운 것일까?


6박 7일간의 제주 여행을 다녀와 겨우 씻고 남편과 나란히 누워 서로 '고생했어'라고 말했다.

이번 여행이 우리 부부에게는 고생이었을까?




교사가 되고부터 결혼하기 전까진 방학만 되면 어디든 여행을 갔었다. 많은 직장인들이 그렇겠지만 나도 그땐 일상에서 벗어나 낯선 곳을 누비며 느끼는 자유로움을 좋아했던 것 같다. 여행지에 가서는 교사라는 페르소나를 벗어던지고 본래의 내 모습을 드러낼 수 있는 것도 좋았다. 20대의 나이였으니 온 세상이 새롭고 신기하기도 했을 것이다. 해마다 새로운 여행지를 검색하며 준비할 때의 설레는 기분도 기다려지던 것이었다. 수많은 여행지에서 많은 추억을 쌓았다. 특별히 SNS를 하는 것도 아니고, 여행지마다 포토북을 만들지도 않아 물리적으로 남아 있는 건 아무것도 없지만 그곳에서 얻은 무엇인가가 내 안에 나의 일부가 되어 있을 것이었다. 여행은 나를 다시 채우는 시간이었다.


결혼 후 아이가 생겨난 후의 여행은 이전과는 달랐다. 그전에 느끼던 자유로움이나 설렘은 별로 느끼지 못했다. 나보다는 아이에게 초점이 맞추어 있었다. 아이들에게 새로운 세상을 보여주고, 부모와 온전히 24시간을 함께하는 시간을 선물하는 의미도 있었다. 여행의 목적이 나에서 아이에게로 옮겨간 기분이었다. 하지만 결혼 전과 또 다른 즐거움과 행복이 있었다. 남편, 아이와의 대화가 더 많아지는 것, 아름다운 풍경을 함께 바라볼 수 있는 것, 가족과 두고두고 이야기할 수 있는 추억을 만드는 것은 새로운 행복이었다. 이제 여행은 가족의 행복을 가꾸는 시간이 되었다.




여행을 참 좋아한다고 생각했었는데 코로나로 어느 누구도 여행을 갈 수 없게 되자 오히려 마음이 편안했다. 여행 자체가 목적이었다면 더 가고 싶었을 텐데 그렇지 않았다. 거꾸로 생각해보니 여행을 가야 한다는 것에 대한 압박이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행을 계획하는 마음 한쪽에는 아이들을 위해 여행을 가야 한다는 생각과 남들이 하는 것을 나도 해야 한다는 생각이 있었나 보다. 휴가철마다 들려오는 주변 사람들의 해외여행 소식에 왠지 모를 부러움과 의무감 같은 것이 있었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더 이상 여행을 좋아하지 않는 걸까? 예전에 느꼈던 여행에 대한 설렘과 기대감은 이제 없는 것일까? 만약 그렇다면 이유가 뭘까?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생겨났다.


아이와 함께라 몸이 힘들 것 같아서? 이미 가본 장소라서? 온전히 '나'로 즐길 수 없는 엄마라서?

어쩌면 전부 해당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조금 더 깊이 들어가 보니 '여행보다 더 즐거운 것이 생겨서'라는 답을 찾게 되었다.

예전에는 여행만이 나를 다시 채우는 시간이 되었다면, 지금은 나를 채울 수 있는 더 많은 것들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었다. 낯섦에서 오는 설렘을 여행이 아닌 다른 곳에서도 느낄 수 있기 때문이었다.


교육학 공부 모임에서 교육과 삶을 대하는 나의 생각을 채워나갈 수 있었고, 필사하며 읽는 슬로우 리딩 독서 모임으로 책 읽기의 새로운 세상을 알게 되었다. 선생님들과의 수업 나눔 모임에서 다른 사람을 알아가고 다른 수업을 알아가는 재미는 어디에도 비할 수가 없다. 이제는 이것들이 여행보다 훨씬 즐거운 일이 되어버렸다.


새롭게 알아가고 싶은 것들이 많이 생겨났다. 그것들이 내 삶을 풍요롭게 하고 나를 채워주는 가장 설레는 것이 되었다. 이제는 그 좋던 여행 생각이 별로 안 난다. 새로운 사람을 알아가고 새로운 앎의 세상을 알아가는 것이 나에게 여행이 되어버렸다.




가족과의 여행은 온전히 나로 즐기기 못하는 부분이 있을 수밖에 없다. 나도 남편도 아마 그런 부분에서 오는 피로감이 있었으리라. 하지만 아이들에게 내 삶의 일부를 내어주는 시간도 필요하니 감수해야 하는 부분이다. 나는 나로서 살고자 하는 마음이 많은 사람이라 늘 미안함을 느낀다. 가족이 주는 행복을 늘 등한시 하는 것 같아 반성한다. 내 마음에 가장 큰 안식을 주는 곳은 가족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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