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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눈눈 Jun 18. 2022

사랑의 시작

알아차림으로부터

가까운 사람들과 등산을 하거나 여행지를 걸을 때 나는 항상 긴장한다. 내가 생물 교사인 것을 아는 사람들이 대부분 꽃이나 나무 이름이 뭔지 물어보기 때문이다. 나는 그때마다 무조건 '모른다'라고 한다. 거의 대부분의 식물 이름을 잘 모르기 때문에 사전 차단을 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의례히 생물과면 생물들의 이름을 다 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우리 주변에 보이는 생물만 하더라도 그 종이 무수히 많은데 그걸 다 아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다 알 수도 없는 거라고 스스로 합리화하면서 늘 변명처럼 생물과에서 식물 이름 배우는 거 아니라고 말했다.  실제 그렇기도 했다. 생물체 내에서 일어나는 메커니즘에 관해 배우는 과목이 훨씬 많았으니 말이다.




얼마 전 영재고 생물 공개수업을 참관하게 되었다. 그날의 수업은 학교 뒷산에 학생들과 함께 올라가며 길 옆으로 보이는 식물들을 관찰하고 이름을 알아보는 수업이었다. 16명의 학생 한 명 한 명에게 제비뽑기로 식물을 정해주고 2주 후까지 그 식물에 대해 발표할 자료를 만드는 탐구까지 포함한 활동이었다. 준비물을 챙기고 유의사항에 관해 전달한 다음 다 함께 교실을 출발하였다.


진입로에서부터 선생님이 멈춰 선다. 아무도 관심 두지 않을 것 같은 곳이었다. 어쩌면 잡초가 무성하게 자라 좀 정돈해야겠다는 느낌이 드는 곳이었다. 선생님은 허리를 굽히더니 풀 하나를 뜯어낸다. 질경이였다. 식물의 이름을 알려주고 특징을 설명하신 후 학생들의 발아래를 다시 보게 했다. 약 5미터 정도 되는 진입로에 질경이가 많이 있었다. 방금 올라올 때는 인식하지 못했는데 선생님께 설명을 듣고 나니 바닥에 흩어져 있는 질경이들이 눈에 들어왔다.

선생님이 가지고 간 주머니에서 번호가 적힌 탁구공을 하나 뽑아낸다. 그 번호의 학생이 질경이 탐구 담당이다. 학생에게 선물이라며 조금 전에 뜯은 질경이를 건넨다. 학생은 그것을 재료 삼아 2주간 질경이에 대해 탐구할 것이다.


등산로를 따라 올라가며 선생님은 계속 멈춰 선다. 내 눈엔 그저 배경처럼 뭉뚱그려져 보이던 식물들이 그 선생님의 눈에는 하나하나 다른 생물들로 보이나 보다. 올라가는 길에 본 16가지 식물들은 질경이, 개망초, 씀바귀, 사철나무, 복자기나무, 굴참나무, 산수유나무, 찔레꽃, 아까시나무, 상수리나무, 청미래덩굴, 담쟁이덩굴, 리기다소나무, 졸참나무, 주름조개풀, 뱀딸기였다. 각각의 식물마다 잎 하나를 뜯어 자세히 관찰하고 구별되는 특징에 관해 이야기해 주셨다. 예전엔 그저 똑같은 식물들로 보이던 것들이 설명을 듣고 나니 어찌나 그렇게 다들 다른지..


식물을 관찰하던 중 눈앞의 나무에 새 한 마리가 앉아있다. 참새는 아니었다. 아이들이 물어보자 선생님은 '박새'라고 하였다. 나에게는 낯선 새였는데 우리나라 도심 공원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새란다.


16명의 학생이 모두 식물 잎을 선물로 하나씩 받고 이제 산을 내려다. 올라갈 때와는 사뭇 다른 아이들의 모습이다. 자신의 탐구 식물을 다시 한번 관찰하기도 하고 사진도 많이 찍는다. 나는 그 맨 뒤에서 따라가고 있었는데 한 학생의 이런 말이 들렸다.

"내가 인생을 살면서 나무를 이렇게 자세히 관찰한 건 처음이다."


아... 순간 학기 초 교실의 모습이 떠올랐다. 새 학기가 되어 모르는 학생들이 가득 앉아 있는 교실은 그냥 1반, 2반의 집단으로 느껴진다. 하지만 학생들 한 명 한 명의 이름을 알고 나면 아이들이 모두 각각 다른 개별의 학생으로 보인다. 이름을 알게 됨으로써 각각의 학생을 알아차릴 수 있게 되고 서로 다른 존재로 사랑할 수 있게 된다. 나는 그래서 학생들에게 개별적인 관심을 가지고, 학생들을 사랑하는 첫 번째로 이름을 꼭 기억하고 부른다. '이게 왜 식물에게는 적용되지 못했을까?' 하는 생각이 머릿속을 스쳤다.


내가 생물을 가르치는 것의 의미를 생각해본다. 낱낱의 지식을 아는 것도 중요하지만 결국에 남는 것은 생물을 대하는 태도와 마음이 될 것이라 생각했다. 생명체를 아끼고 사랑할 줄 아는 태도, 생명의 신비를 이해할 수 있는 마음. 생물을 정말 잘 배우게 된다면 이런 태도와 마음가짐을 가지게 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여기고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생물의 이름을 아는 것은 전부가 될 수는 없더라도 그 시작이 될 수 있다. 이름을 알지 못하면서 그들을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 스스로 반성하게 되었다. 적어도 생물을 사랑하는 마음을 지향하는 교사라면 생물과에서 식물 이름은 안 배운다고 변명할 것이 아니라 완벽하지 않더라도 이름을 알고자 노력해야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지금껏 거짓으로 생물을 사랑하고 있었나 보다. 나는 대체 무엇이 생명을 사랑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을까? 큰 깨달음을 얻게 된 공개수업이었다.




숲에서 아름다운 새소리가 들렸다. 한 아이가 말했다.

"박샌가?"


알게 되니 보이고 들리게 된다. 그렇지 않고는 사랑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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