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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눈눈 Jul 02. 2022

나는 왜 이런 사람일까

왜 항상 진지하고 곧이곧대로이고 진심이어야 할까.

유머도 없고 융통성도 없고 무거운 사람일까.


매사에 의미 없이 보내는 시간이 점점 싫어진다.

이왕 하는 거 제대로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부담스럽겠다.

틀렸다고 할 수는 없으니 더 멀리하고 싶겠다.




기말고사 기간이 되면서 학교들마다 교과별 연수를 기획한다. 시험이 오전에 끝나니 오후에는 교사 연수를 하는 것이다. 자발적 연수가 아니라 대부분의 선생님들은 별다른 기대 없이 참여한다. 선생님들은 수행평가 성적 산출, 서술형 평가 채점에 마음이 급하다. 시험기간 후의 수업 자료도 준비해야 한다. 각자 맡은 업무도 이럴 때 좀 더 처리해 두어야 한다. 선생님들은 연수보다 시간이 필요하다.


나는 연수 강사로 요청받았다. 선생님들 각자의 귀중한 시간을 내어 모인 만큼 나는 그 시간이 모두에게 의미 있었으면 좋겠다. '이왕 하는 거 의미 있게 해야지, 제대로 해야지'하는 생각이다. 그래서 선생님들이 실제적으로 원하는 건 무엇일까 고민하며 예시 자료들을 준비한다. 예시 자료만 드리는 것은 당장에는 관심이 생길지 모르나 선생님들의 수업에 별다른 영향을 주지 못한다. 단지 자료를 얻는 것뿐만 아니라 그 속에서 각자 나름으로 이론적 배경과의 연결도 있으면 좋겠다. 하지만 너무 이론적인 것으로만 치우치면 지루하다. 이런저런 생각으로 연수를 준비한다.


하지만 이것은 나만의 생각이다. 연수에 참여하는 선생님들은 강사가 어떤 생각으로 오는지 알지 못한다. 그러니 나의 역할은 별 기대 없이 오신 선생님들도 연수를 하는 과정에서 나름의 의미를 찾고, 얻은 것이 있다고 느끼도록 하는 것이다. 연수 준비에 대한 내 진심이 최대한 전해지도록 노력해야 한다. 선생님들의 마음을 여는 것이 중요하다.


어떻게 선생님들의 마음을 열 수 있을까 고민한다. 다른 연수 강사 선생님들은 각자 자기만의 방식들을 만든다. 핸드드립 커피를 내리면서 시작하는 선생님도 있고, 특유의 유머로 분위기를 이끄는 분도 있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의 방식이 좋아 보인다고 내가 그렇게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나는 나만의 방식을 만들어가야 한다.


이번 연수에서는 그런 고민이 좀 덜했나 보다. 연수가 끝난 후 선생님들의 반응이 별로 만족스럽지 못하다. 오늘은 선생님들의 마음을 완전히 여는 데는 성공하지 못했나 보다.




오늘 나를 처음 본 이곳의 선생님들은 어떤 생각을 하였을까? 처음 만나는 선생님들의 마음을 여는 것이 어려운 건 당연하지 싶다가도 나는 왜 이런 사람일까 생각하게 된다.


그냥 좀 편하고 재밌고 가벼울 순 없을까? 적당히 일찍 마치고 선생님들 하소연도 좀 듣고 이런 연수 만들어내는 교육청 뒷담화도 좀 하고 말이다. 그럼 굳이 어렵게 선생님들의 마음을 열고 진지하게 연수 내용에서 의미를 찾고자 노력하지 않아도 될 텐데 말이다.


'모든 사람이 똑같을 수는 없지. 나는 나만의 캐릭터를 만들면 되지. 나의 장점으로 만들면 되지.'라고 늘 생각하다가도 오늘은 이상하게 마음이 좋지 않다. '이왕 하는 거 의미 있게 해야지, 제대로 해야지'하는 내 생각이 다른 사람들에게는 부담스러운 것일까 봐 신경이 쓰인다.




한 사람이 가진 에너지는 유한하다. 각자는 자신의 에너지를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에 따라 나누어 사용한다.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사람마다 모두 다르다. 나에게는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것이지만 남에게는 그렇지 않은 것일 수 있다. 그래서 왜 나만큼의 에너지를 쓰지 않느냐고 비난할 수 없다.


그래서 자꾸만 신경이 쓰인다. 나도 모르게 강요하고 있을까 봐. 나만큼의 에너지를 들여 진지하게 임하라고 무언의 압박을 하고 있는 것일까 봐 걱정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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