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도 만난 적이 없는 사람을 보고 싶어 한 적이 있나요?
내 친구 A는 옆 학교 S고의 교육과정부 기획 업무를 맡고 있다. 학교를 새로 옮기면서 처음 맡은 업무이고 담당 부장은 그 학교에서 여러 해 근무하신, A보다 몇 살 아래인 선생님이다. A와 만날 때면 그간의 지낸 이야기 속에 당연히 업무와 관련된 이야기가 나오고, 자연스럽게 담당 부장 선생님과 했던 대화들도 한 두 마디 섞이게 된다. 한 달, 두 달이 지나고 한 학기가 지나가며 A는 부장 선생님을 조금씩 더 알아갔고, 우리의 대화에 등장하는 그 부장 선생님에 대한 이야기는 단순 사실에서 감탄으로 점점 바뀌어갔다. A가 가까이에서 본 그 부장 선생님은 나이는 우리보다 어리지만 무언가 본받을 만한 점이 많은 분이었다. 많은 열정과 고민이 느껴지는 수업 이야기, 새벽 기상과 달리기를 실천하고 계시다는 삶 이야기 등등 세세하게 기억나진 않지만 들을 때마다 놀라우면서도 대단한 분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A도 나도 결국에는 스스로를 반성하며 성찰하는 것으로 이야기가 마무리되곤 했다.
다른 내 친구 B는 옆 학교 S고의 영어 선생님이다. 어느 날 B가 같은 교무실 선생님께 감동받은 이야기를 전했다. B와 같은 교무실에 계신 국어 선생님인데 그 선생님의 책상 위에는 언제나 책이 가득 올려져 있고 늘 책을 많이 읽으시는 분이라고 했다. 책의 분야도 매우 다양했고, 제목만 봐도 재미있어 보이는 책들이 많아 그 선생님과 책에 대해 종종 이야기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덕분에 B는 책에 더 관심을 가지게 되고 더 자주 읽게 되었다. 이 선생님은 사람들이 책에 관심을 가지게 되는 것을 진심으로 좋아하는 분이었다. B가 좋아할 것 같은 책을 소개해 주시기도 하고 선생님이 가진 책을 빌려주시기도 하여 여러 번 책을 빌려 읽기도 하였는데, 며칠 전에도 B는 그 선생님께 어떤 책을 추천받았었다. 그런데 그 책은 지금 구할 수가 없어서 비슷한 책으로 한 권 샀다고 하시며 새로운 책을 B에게 선물로 주셨단다. B는 선생님의 갑작스러운 선물에 놀랐고, 마음씀에 감동하여 나에게 그 이야기를 전한 것이다.
우리 학교에 새로운 사서 선생님 C가 오셨다. 도서관에 자주 가던 나는 자연스럽게 C와 좋은 관계를 맺게 되었고 종종 책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나는 아침 일찍 출근하는 편인데 C도 일찍 출근해서 교무실에 오는 날은 함께 이런저런 이야기를 주고받는다. 그러더니 어느 날 C가 내 책상 옆에 의자를 붙여 앉더니 나를 보면 생각나는 사람이 있다며 이야기를 꺼낸다. 수업에 최선을 다하는 모습, 책을 좋아하고 즐기는 마음, 하루의 시간을 허투루 쓰지 않고 의미 있게 보내려고 하는 삶의 모습이 나와 너무 비슷하다며 두 사람이 만나면 잘 통할 것 같다고 한다. 난 웃으며 이야기를 들었지만 C는 정말 진지하게 '언제 만날 약속 잡아볼까요?'라고 물어본다. 궁금하기도 했지만 한 번도 만나본 적 없는 사람을 만나자고 약속한다는 게 어색하게 느껴져 '다음에요.^^'라고 하고 말았다.
알고 보니 새로운 사서 선생님은 옆 학교인 S고에서 오신 분이었고, A가 말한 부장 선생님과, B가 말한 국어 선생님, C가 말한 선생님이 모두 동일한 사람인 걸 알게 되었다. 전혀 다른 세 사람이 나에게 한 사람에 관해 이야기를 전한 것이다.
' 와.. 정말 대단한 분이다. 이렇게 선한 영향을 주위에 나누고 계신 분이라니. 어떻게 나한테 이렇게 여러 경로로 이 선생님의 이야기가 들렸을까. 정말 한 번 만나보고 싶다.'
자연스럽게 이런 생각이 들었고 이후 정말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사서 선생님을 통해 우리 학교에 오실 일이 생긴 것이다. 그날 잠시 사서 선생님께 가서 인사하기로 약속해 두었는데 갑자기 예정에 없던 회의가 생겨버려 결국 만나지 못하게 되었다.
여기까진 모두 작년에 있었던 일이다. 그 후에도 친구들에게 여러 번 들었던 터라 내내 만나보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던 터였다. 그런데 얼마 전 S고의 공개수업을 참관하러 가게 되었다. 수업이 끝나고 수업자 선생님과 교무실에 잠깐 들렀는데 친구 B가 있었다. 친구와 인사를 나누던 중에 누군가 교무실에 들어왔는데 B가 반갑게 맞으며 나에게 소개를 해 준다. 바로 그 선생님이셨다. 나는 성함만 듣고 바로 알아차렸다. 어찌나 반갑던지.^^ 그렇지만 그분은 나를 전혀 모르실 테니 나는 조용히 이름을 말하며 사서 선생님 C를 통해서도 많이 들었다며 인사를 했다. 그런데 정말 놀랍게도 그 선생님이 내 이름을 듣자마자 너무나 반가워하며 정말 만나보고 싶었다는 얘기를 하신다.
정말 드라마 같은 일이었다. 우리는 서로를 전혀 몰랐지만 우리를 아는 사람들에 의해 서로의 존재를 느끼고 보고 싶어 하게 되었다. 서로의 삶의 모습을 높이 평가하며 더 알고 싶어 했다. 내가 직접 만나 알게 된 사람이 아니더라도 이렇게 관심이 생기고 보고 싶어 질 수 있다는 것이 참 놀랍고 신기했다.
얼마 전 연수에서 이런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
당신은 어떤 사람이 더 진짜 친구라고 생각하나요?
일 년에 한두 번 만나지만 고등학교 때부터 친했던 친구
vs
한 번도 만난 적 없지만 웹 상에서 매일 인사를 나누며 일상을 공유하는 친구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는 사람이 친구가 될 수 있나?라고 생각하던 나였다. 그런데 순간 이 선생님과 브런치의 많은 작가님들이 떠올랐다. 이 선생님과 가까워지고 싶고 알고 싶었던 내 마음과, 브런치에서 일상을 공유하며 남다른 우정을 자랑하고 계시는 작가님들.
모두 한 번도 만난 적 없지만 서로를 보고 싶어 하는 사이이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