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무던한 사람이다.
어디에서 특별히 내 의견을 내세우는 일이 없고 상대에게 거의 맞춰주는 편이다.
이건 내가 성품이 넉넉해서가 아니라 그게 그냥 편하기 때문이다.
어릴 때부터 말수가 적은 아이였고, 그래서 늘 다른 사람들의 말을 듣는 것을 좋아했고, 그들의 말이 다 그럴듯하게 들렸다.
그래서 사실 나는 '내 의견'이라는 것이 별로 없이 지내왔다.
내 의견이 없으면 편했다.
모든 결정을 남에게 미루면 되기 때문이다.
특별히 고민하지 않아도 되고 생각하지 않아도 되었다.
상대방이 하고 싶은 대로 내가 다 따라주니 그들도 그런 나를 편안해했다.
3년 전부터 해오던 교육학 공부모임은 교육학 책을 읽고 교수님과 함께 토의하는 수업이다.
교수님은 나에게 이렇게 물으셨다.
'선생님 의견은 어떤가요?'
'선생님은 이 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요?'
'지금 드는 생각 아무거나 말씀해보세요.'
나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책을 읽고 내 생각을 얘기해 본 적이 없었다.
저자가 말하는 대로 그저 따라가는 식의 독서만 해온 터라 저자의 생각과 다른 생각은 생겨나지 않았다.
늘 '아~ 그렇구나'라는 식으로만 책을 읽었다.
교육학 공부모임을 하며, 그저 다른 이의 생각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고 무던한 사람인 척하는 것은 공부에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책을 무던하지 않게 읽어야 그것이 비로소 내 것이 되는 것이었다.
글을 쓸 때도 마찬가지이다.
그저 무던하게 세상을 바라보고 삶을 살아가서는 깊은 사유를 나타내는 글을 쓰기 힘들다.
무던하지 않은 마음으로 섬세하게 느껴야만 그것이 글로 표현되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무던하지 않으려는 연습을 하고 있다.
책을 무던하지 않게 보려고 애쓰며, 삶을 무던하지 않게 느껴보려고 애쓰고 있다.
그래야만 공부도, 글쓰기도 한 단계 성장할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