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날은 종일 출장이 있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날이었다. 교수님과 만날 날은 바로 내일인데 마음만 급하고 아무것도 이해한 것이 없었다. 구글링도 해보고, 다른 논문도 검색해보긴 했지만 마음이 급해서인지 내가 원하는 내용은 나오지 않았다. 결국 1일 전까지 이렇다 할 공부를 하지 못했다.
아무것도 해결하지 못한 채 교수님과의 수업 날이 되었다. 그래도 교수님과 대화하며 하나씩 질문하다 보면 이야깃거리가 나올 거라고 생각하며 논문들과 노트북을 가지고 교수님 방으로 갔다.
교수님은 내 노트북을 직접 연결해서 프레젠테이션을 할 것인지 물어보셨다.
엥?? 발표??
순간 뭔가 잘못되었음을 깨달았다. 교수님이 논문을 공부해오라고 한 것은 당연히 정리하여 발표할 자료를 만들어 오라는 의미였던 것이다. 무조건 죄송하다고 했다. 학생이 수업 준비를 안 해와서 수업을 못하게 된 꼴이 되었으니 완전히 내 잘못이라고 생각했다. 대학원 수업 방식을 제대로 알고 있지 못한 자신이 부끄러웠다.
이왕 이렇게 되었으니 그 간의 일들을 말씀드렸다. 논문 내용을 전혀 이해할 수 없었고 나의 기초 지식이 부족하여 그런 것임을 알게 되었다고. 그러자 교수님이 질문을 하기 시작했다. 내가 어느 정도 알고 있는지 파악하기 위한 질문이었다. 교수님의 질문에 거의 제대로 대답할 수가 없었다. 교수님의 질문은 학부 수준의 질문들이었지만 임용고사를 친지 20년이나 지나 중고등학교 교육과정의 내용만 다루어온 내가 기억하고 있는 내용은 거의 없었던 것이다.
교수님이 놀라운 표정을 숨기지 않으며 고등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지 않냐고 하셨다. 생Ⅱ과목에서 다루는 영역일 텐데 어떻게 모를 수가 있냐고 하셨다. 얼굴이 빨개졌다. 부끄러움에 어쩔 줄을 몰랐다. 현직 교사들의 얼굴에 내가 먹칠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사실 나중에 찾아본 생Ⅱ 교육과정에 그 내용은 없었다.)
하지만 변명하는 건 더 구차한 일이었다. 내가 부족하며 그래서 너무나 부끄럽다는 것을 솔직하게 시인했다. 자존심 같은 것을 지킬 여유는 없었다. 그냥 다 내려놓아야 했다. 내 지식의 수준이 그만큼임을 말씀드리고 너무나 죄송하지만 다시 공부해오겠다고 하였다.
교수님은 고민하는 것 같았다. 나는 이미 교사이고 이 공부를 하든 하지 않든 사실 실제적으로는 별 의미가 없는 것이라 생각하셨다. 그래서 공부하길 원하지 않는다면 수업을 이대로 끝내도 된다고 하셨다. 하지만 나는 그럴 수 없었다. 내가 대학원에 진학한 이유가 바로 부족하다 생각되었던 전공 공부를 더 하고 싶어서였기 때문이다. 물론 논문을 통해 자신만의 연구를 하는 것이 석사 과정의 주된 공부이겠지만 멀어졌던 내용학을 조금이라도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이 컸기 때문에 진학한 것이었다. 결국 교수님은 지금의 내 수준에 맞는 과제를 주셨고 일주일 후 30분 분량의 발표를 준비하기로 하고 연구실을 나왔다.
부끄러움에 눈물이 났다.
처음 경험해보는 일이었다.
나는 무엇을 위해 여기에 있는가 의문이 들었다.
교수님 말씀처럼 이렇게 힘들게 공부하지 않아도 얼마든지 편안하게 살아갈 수 있었다.
공부를 시작하고 처음으로 '공부를 계속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하게 되었다.
그래서 그 공부하면 뭐 하는 건데?
사는데 어떤 도움이 되는데?
돈을 더 많이 벌 수 있나?
며칠을 고민하고 알게 된 것은
결국 그것은..
'이곳에서 내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어서'이다.
'내가 살아나갈 수 있게 해주는 것이 여기 있어서'였다.
부끄러움에 눈물을 흘리며 나는 내 삶의 의미를 다시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