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연수는 늘 꿈에 그리던 것이었다. 저런 해외 연수는 얼마나 많은 활동을 하는 사람들이 가는 걸까 궁금해하며 마냥 부러워하기만 했었다. 그런데 정말 운이 좋게도 2팀 선발인데 지원은 1팀뿐이어서 추가모집 공문이 나왔다. 함께 연구회 모임을 하고 있던 선생님께서 같이 해 볼 것을 제안하셨고 나는 그런 제안을 받았다는 것만으로도 감격스러웠다. 5명으로 팀을 구성하고 계획서를 제출하여야 했다. 물론 5명의 그간 실적도 점수에 포함되었다. 나는 그때만 해도 실적이라고 내세울만한 것이 별로 없었다. 나 때문에 우리 팀 총점이 낮아질까 봐 아슬아슬 마음을 졸였다.
지원을 위해 계획서를 준비하던 중 또 다른 지원팀이 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그 팀의 구성원들은 이름만 들어도 다 아는 활동이 왕성한 분들이었다. 아.. 희망이 별로 없구나.. 하지만 팀장님은 그래도 최선을 다해서 계획서를 써보자고 하셨다. 안되면 이 계획서로 내년에 다시 도전한다고 생각하고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데까지 해 보기로 하였다. 자료조사를 굉장히 많이 했다. 미국에 가서 방문할 대학과도 연락하여 세부 계획을 세웠다. 계획서만 보아도 연수의 과정을 예상할 수 있도록 상세하고 구체적으로 기술하였다.
결과는 우리 팀으로 선정!! 결과를 듣고도 믿을 수가 없었다. 선정된 팀들이 모이는 회의 자리에서 장학사님이 우리 팀 계획서가 너무 좋아 뽑지 않을 수가 없었다고 하셨다. 사실 나는 팀장님의 지휘 아래 아주 미약한 힘을 보탠 것이지만 우리가 해냈다는 생각에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 희망이 별로 없다고 생각한 아슬아슬한 경쟁에서 우리 팀이 최종 선정의 행운을 얻게 되었다.
2020년 수업연구발표대회
2019년에 고2 생명과학을 맡으며 나는 기존과는 완전히 다른 새로운 방식으로 수업을 시도하였다. 처음 한 두 달은 잘하고 있는 것인가 의문이 들었지만 4월 말에 실시한 학생 설문에서 수업 방향에 대한 확신을 가지게 되었다. 그렇게 1년을 혼자 고군분투하며 수업 연구와 자료 제작에 매달렸다. 처음이라 부족한 것 투성이었지만 순수한 영혼의 학생들은 너무나 잘 따라 주었고 열심히 배웠다. 처음으로 자발적 대외공개수업까지 하게 되었다. 주변에서 내년에는 그냥 공개수업만 하지 말고 수업연구발표대회에 나가보라고 하였지만 그런 건 주변에서 본 적도 없고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던 거라 나와는 관계없는 일이라 생각하고 넘겼다.
이듬해가 되자 더 욕심이 생겼다. 고2를 한 해 더 하면서 1년간 만든 자료들을 정교하게 다듬어 보고 싶어진 것이다. 우리 학교엔 내 친구가 생물교사로 같이 근무하고 있었고 내가 고2를 맡는다면 그 친구가 고3을 한 해 더 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정말 어렵게 말을 꺼냈는데 친구는 흔쾌히 수락해주었다. 더 연구해보고 싶은 마음을 충분히 이해한다며 응원한다는 말까지 해주었다.
4월이 되어 수업연구발표대회 안내 공문이 왔다. 작년에 들어본 터라 어떤 것인가 살펴보았는데, 계획서 10쪽 작성, 1차 통과 후 2차에서 최종 보고서는 60쪽 분량이었다. 사실 다른 것보다 분량을 보고는 그냥 덮어버렸다. 내 힘으로 2페이지 글도 쓰기 어려운데 10쪽, 60쪽이라니 내 능력에 비해 너무 엄청난 일이었다. 이건 안될 일이야... 그런데 내 활동을 눈여겨보고 계시던 선배 선생님에게서 전화가 왔다.
00 선생님~ 올해 더 연구해 보려고 고2 한 해 더 하는 거지요? 연구한 걸 잘 정리해서 수업연구발표대회 한번 도전해보는 거 어때요?
아... 순간 나에게 2학년 수업을 양보해준 친구가 떠올랐다. 더 연구해보고 싶다고 내가 말하지 않았던가.. 연구란 나 혼자 하는 것이 아니고 그것을 정리하여 공유할 때 의미가 있는 것이다. 수업연구발표대회가 바로 그것이었다. 안 하겠다고, 못하겠다고 말할 수가 없어 결국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도전하게 되었다.
모든 과정이 고난의 연속이었다. 논문도 한 번도 안 써본 터라 연구 계획서의 양식도 전혀 아는 것이 없었다. 10쪽을 어떻게 채워야 할지 몰라 전전긍긍했고, 겨우 페이지만 채워 가까운 선생님께 보여드렸는데 거의 전부 뜯어고쳐야 하는 피드백을 받았다. 기본적인 틀조차 갖춰지지 않은 것이었다. 막막하고 부끄러워 눈물이 났다. 겨우겨우 계획서를 완성하여 제출하였다. 코로나로 학교 수업도 정상적으로 되지 않던 때였다. 상대적으로 지원자가 적어서인지 1차는 통과하게 되었다.
약 8개월간의 수업을 운영한 후 그간의 내용들을 최종 보고서로 정리하여야 했다. 무려 60쪽이었다. 나는 개요를 잡는 데만도 일주일이 넘게 걸렸다. 어떤 것을 넣었다가 뺐다가, 그러기를 또 3주, 제출일이 4일 앞으로 다가왔다. 최소 이틀 전에는 완성해서 다시 읽어보고 수정하는 과정을 거치고 싶었으나 이때까지도 2/3밖에 완성하지 못했다. 아무리 봐도 도저히 가망이 없어 보였다. 애가 탔다. 완성하지 못한다면 의미가 없을 것 같았다. 3일을 하루 3시간씩만 자며 늦은 밤까지 보고서를 작성하였다. 너무 힘들었다. 포기할까라는 생각이 10번도 더 들었다.
그냥 포기하고 지금 침대로 가서 잘까? 그래도 안 하는 것보다는 덜 하는 게 낫겠지. 한 글자라도 더 채워보자.
제출일 전날은 2시간만 겨우 눈을 붙이고 출근을 했다. 최종 정리 후 목차를 만들어야 했다. 아.. 그런데 학교 노트북이 집에서 사용하던 PC와 한글 버전이 달라 내가 아는 방식으로 목차 정리가 되지 않았다. 마지막 날까지 이러고 있을 줄이야.. 정보실에 가서 한글 버전이 같은 노트북을 빌렸다. '침착해야 해' 속으로 얼마나 되뇌었는지 모른다.
제출 약 3시간 전 드디어 보고서가 완성되었다. 제본 테이프는 어디 있지? 서류는 뭘 더 챙겨야 하지? 혼자 이리저리 돌아다니고 있으니 보다 못한 옆자리 부장님이 제본 테이프를 찾아 주셨다. 출력물에 제본 테이프를 붙이는데 모양이 이쁘지 않다며 새로 한 권을 더 제본해 주신다. 두들기고 반듯하게 해서 훨씬 깔끔하게 만들어 주신 것이다. 급하게 제출서류들을 확인하고 약 40분 거리의 교육청으로 출발하였다.
제출 마감시간이 30분도 남지 않았다. 아슬아슬했다. 입구에서 다시 한번 서류 목록을 확인하다가 정말 기절할 뻔했다. 완성된 보고서는 2부를 제출하라는 것이었다. 옆자리 부장님이 새로 한 권을 더 해주시지 않았다면 모자랄 뻔한 것이다. 놀란 마음을 쓸어내리며 무사히 서류 제출을 마쳤고 나는 집으로 가 죽은 듯이 잠을 잤다.
이 대회는 2차 응시자의 40%가 등위를 받으며 그 안에서 1등급, 2등급, 3등급으로 나누어진다. 이후 수업 공개, 실사 자료 전시 등의 과정을 거쳐 최종 등급이 결정되는 시스템이다. 40% 안에만 들어도 잘했다고 생각했다. 그 안에 들지 못하더라도 난생처음으로 내 수업의 과정을 정리하고 글로 써 보았다는 것에 스스로 만족하기로 마음먹었다.
약 2달 뒤 발표된 결과에서 나는 놀랍게도 1등급을 받았다.
어리둥절했다. 포기할까를 10번도 넘게 생각한 보고서인데?
아슬아슬한 위기를 여러 차례 겪으며 낸 보고서인데?
2021년 2022년의 도전도 나름의 아슬아슬한 우여곡절이 있었다.
(이건 다음에 기회가 되면 이야기해보도록 하겠다.)
네 가지 모두 처음 시작할 때는 전혀 기대할 수 없던 것들이었다.
항상 나보다 더 나은 다른 이들이 보였다.
그 끝에 희망 없음이 보이더라도 그냥 내가 할 수 있는 것까지는 최선을 다하자는 마음으로 꾸역꾸역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