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나를 움직이는 힘은 무엇을 하고 싶을 때가 아니라, 하고 싶지 않은 일을 하지 않으려고 궁리할 때 생겼다.(엄마의 문장, 길화경)
아침 5시 알람이 울린다. 몸을 일으키진 못하더라도 정신은 늘 5시에는 깨리라 생각하고 맞춰둔 알람이다. 5시 알람이 울리면 잠결에도 머릿속에 여러 생각들이 지나간다.
'지금 꼭 일어나야 할까? 더 자도 오늘 일을 할 수 있는 시간이 있을까? 오늘은 영어학원 수업이 없어 낮시간이 좀 많을 테니 더 자자.'
최근에는 거의 새벽 기상을 하지 못했다. 새벽 기상은 과연 내가 하고 싶은 일일까, 하고 싶지 않은 일일까?
마지막 데드라인 6시 30분 알람이다. 남편이 일어나서 씻으러 가면 나는 겨우겨우 몸을 일으켜 주방으로 가서 커피 내릴 준비를 한다. 아침을 먹지 않고 일찍 출근하는 남편에게 올 한 해만큼은 커피를 내려 주기로 마음먹은 탓이다. 7시 즈음 남편이 출근하고 나면 또 고민이 시작된다. 지금 씻을까? 아. 씻기 싫다. 하지만 지금이 아니면 씻을 시간이 없다. 7시 30분에 아이들이 일어나서 8시 30분에 모두 나가고 나면 영어 수업 준비해서 9시에 화상영어 하고 마치자마자 영어학원으로 나가야 하니까. 어휴 바쁘다 바빠.
11시 30분에 영어학원이 마치면 오늘은 어디서 점심을 해결할까 고민한다. 아.. 밥 먹기 싫다. 안 먹으면 너무 배고플 테니 먹으러 가긴 하지만 밥 먹는 건 별로 재밌는 일은 아니다. 학교에 있으면 고민 없이 급식 먹으면 되는데 요즘은 매일 뭐 먹을지 고민해야 하니 그것도 고역이다.
점심을 얼른 해결하고 연구원으로 간다. 오늘은 금요일. 저녁에 교수님과의 교육학 공부모임이 있는 날이다. 지난주에 읽었던 것을 다시 한번 읽고 오늘 공부할 것을 미리 읽어야 한다. 그냥 읽으면 안 되고 읽으면서 질문도 생각해야 하고 요약도 해 볼 수 있어야 한다. 어렵다. 난 지금 오늘의 쓰담쓰담 글쓰기부터 하고 싶은데, 아니다 그저께부터 써오던 수업 참관록도 완성하고 싶은데, 결국 급한 순으로 할 수밖에 없다. 급한 일 때문에 못하고 미뤄두고 있는 일이 왠지 더 하고 싶은 일처럼 느껴진다. 지금 어쩔 수 없이 하고 있는 일이 가장 하기 싫은 일이 되어 버린다. 하기 싫은 것과 하고 싶은 것은 도대체 어떤 차이란 말인가? 이렇게 쓰다 보니 그것은 일 그 자체가 아니라 상황에 따라 상대적으로 느껴지는가 보다.
하루 종일 하기 싫은 일의 연속이다. 그런데 그게 전부 내가 하고 싶어서 만들어 놓은 일들이다. 아무것도 만들어두지 않으면 내가 움직이지 않을 것 같아 촘촘하게 많은 일들을 만들어두었다. 왜? 아무 일도 안 하는 내가 얼마나 공허하고 우울할지 아니까.
결국 나를 움직이는 힘은
내가 가장 하고 싶지 않은
무기력하고 공허한 삶을 꾸역꾸역 살아가는 내 모습을 마주하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