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at. 쓰다 보면 보이는 것들(진아, 정아, 선량)
오늘 아침 친한 선생님으로부터 중학교 2학년 학생의 글을 한편 받았다. 그 글은 중학교 영재학급에서 수업하며 프로젝트를 끝낸 후의 소감을 쓴 것이었다. 영재학급을 시작할 때의 기대감부터 프로젝트를 시작하며 느꼈던 일들, 주제 선정의 어려움, 실험과정 중의 고난과 역경, 그 과정에서 지도해주신 선생님에 대한 감사의 말과 자신의 성찰까지를 전체적으로 나타낸 글이었다.
'이게 중2가 쓴 글이라고?' 정말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훌륭했다. 글이 매끄러웠고 잘 읽혔으며 다양한 내용들이 자연스럽게 연결되었다. 비문이 하나도 없었으며 단어 선택도 정확했다. 모든 과정에서 자신이 경험한 것과 느낀 것을 정말 조화롭게 표현하였다. 보통 고등학생도 자소서에 자신이 느낀 것을 쓰라고 하면 '뿌듯했다. 보람을 느꼈다. 기뻤다.' 이런 정도의 표현이 대부분인데 이 학생은 자신이 느낀 바를 언어로 부족함 없이 드러내었다. 나는 흉내도 못 낼 수준이었다.
'이런 학생을 보고 천재라고 하는구나. 연구한 바를 이토록 글로 잘 풀어낼 수 있다면 나중에는 정말 훌륭한 과학자가 되겠다.'
글을 보내준 선생님은 스스로 한없이 작아짐을 느낀다고 하셨다. 이런 천재들을 눈앞에서 만나면 정말 내 능력과 노력은 너무나 미약하게 느껴진다. 그간 참 많이 느껴왔던 감정이었다.
그런데 오늘은 달랐다. 마냥 스스로가 작아지거나 부럽기만 하지는 않았다. 나는 내가 천재가 아닌 걸 이제 알고 있다. 그래서 새삼 실망스럽지 않았다. 글쓰기의 부분에서도, 노력하더라도 도달하지 못하거나 매우 오래 걸릴 수도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이제는 그렇다고 하여 낙심하거나 포기하지 않는다. 나는 꾸준히 글쓰기를 연습하고 노력할 것이다. 언젠가는 내 나름의 성취를 이룰 수 있을 거라고 믿는다.
그리고 이제는 천재를 부러워하지만은 않는다. 내가 가진 다른 능력을 더 잘 바라보고 닦아 나가야 함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내가 가진 다른 능력은 천재를 바라보며 좌절하는 수많은 사람들의 마음에 공감하고 응원해 줄 수 있는 것이다. 나는 지극히 평범한 사람이다. 잘하는 다른 이들을 보며 이렇게 스스로 작아지는 사람들에게 내가 도움을 주는 사람이 될 수 있다. 또 천재가 아니라도 꾸준히 노력하면 그 나름의 성취를 이룰 수 있다는 것을 몸소 보여주고 싶다. 평범한 아이들에게 얼마든지 잘할 수 있다는 믿음을 주고 싶다.
단기간에 유명해질 자신도, 글을 엄청나게 잘 쓸 자신도 없었던 저는, 다시 출판사에 투고할 자신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세상에는 유명한 사람보다 평범한 사람들이 더 많겠죠. 그러니 저처럼 일반적인 사람이 쓴 문장이 오히려 더 큰 공감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저자와 독자 사이의 괴리가 느껴지지 않는 글. 그 사이가 겨우 종이 한 장 차이인 글. 내가 가장 잘 쓸 수 있는 글은 바로 그런 글이라고 생각했어요.
쓰다 보면 보이는 것들(진아, 정아, 선량)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