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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눈눈 Mar 05. 2023

두근두근 첫 수업

두근두근, 두근두근


3월 2일을 이렇게 떨리고 설레는 마음으로 맞이한 적이 있었던가?


학습 연구년제로 한 해를 보내고 난 후 일 년 만의 수업이고, 수석 교사로서의 첫 출근이고, 새로운 학교의 새로운 학생들을 만나는 날이다. 모든 것이 새로운 첫날이다. 전날 수업 준비로 새벽 한 시가 다 되어 잠자리에 들었는데도 학교에 간다고 생각하니 5시 반에 눈이 번쩍 떠졌다. 난 정말 학교 귀신이 맞나 보다.


오늘 첫 수업은 4교시다. 7시에 학교에 도착해서 수업자료를 좀 더 다듬다 보니 한 시간이 훌쩍 간다. 각종 메시지들에 답을 하고, 입학식에 참여하고, 여러 일들을 처리하느라 학교 여기저기를 다니다 보니 벌써 4교시 시작 30분 전이다. 교실의 컴퓨터 환경이 낯설어 10분 전에는 교실에 가야겠다고 생각하니 20분 밖에 남지 않았다. 너무 긴장이 되어 앉아 있기가 어려웠다. '내가 준비한 것들을 아이들이 잘해줄까? 시간이 남거나 부족하지는 않을까? 아이들은 어떤 표정을 하고 앉아 있을까?' 두근거리고 떨리는 마음이 고스란히 긴장감으로 이어졌다.


내 수업은 모두가 참여하여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하고 서로의 생각을 통해 함께 배워나가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이러한 수업에서는 학생들이 자유롭게 자신의 생각을 말할 수 있도록, 안전한 수업 환경과 분위기를 만들어 주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그래서 나는 학생들이 충분히 편안하고 자유로운 분위기를 느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무엇일까를 고민하며 첫 시간을 구상한다. 또 모든 학생이 목소리를 내어 설명하고 발표하는 것이 자연스럽고 당연한 것임을 첫 시간을 통해 경험하게 해 주려고 활동을 고민한다. 


그래서 첫 만남의 자리에서 교사인 나를 솔직하게 드러내는 것은 필수적인 단계다. 내가 먼저 경계심을 풀고 나를 보이며 아이들에게 다가간다는 제스처를 보이는 것이다. 그래야 아이들도 긴장했던 마음을 조금은 내려놓을 수 있다.


올해는 나를 소개하는 시간을 띵커벨 객관식 퀴즈로 준비하였다. 띵커벨 퀴즈 풀기는 배틀형식으로 자신도 모르게 빠져들어 풀게 되는 효과가 있다. 그렇게 나에 관한 문제를 11개 풀어보고 답을 확인하면서 간단한 정보도 제공하고, 내가 살아온 이야기, 아이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들을 같이 곁들인다. 친근하고 부담 없이 다가가고자 너스레를 떤다.


1. 생물 선생님의 이니셜은?

2. 생물 선생님은 누구일까요?(사진 찾기)

3. 생물 선생님의 나이는?

4. 생물 선생님은 어디서 근무할까요?

5. 생물 선생님의 MBTI는?

6. 생물 선생님이 요즘 좋아하는 노래는?

7. 생물 선생님은 연애를 몇 번 해봤을까요?

8. 생물 선생님은 키가 160이다.(O, X)

9. 생물 선생님은 학창 시절에 한 번도 생물 선생님을 꿈꾼 적이 없다.(O, X)

10. 생물 선생님은 영어 공부를 하고 있다.(O, X)

11. 생물 선생님은 윗몸일으키기를 하나도 못한다.(O, X)


1~4는 간단한 정보 제공, 5~6은 아이들에게 친근하게 다가가기 위한 것, 7~11은 내가 살아온 이야기와 함께 아이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들과 관계된 질문들이다.


그 이후 활동은 학생들 자신을 소개하는 것이다. 먼저 자신을 소개할 말을 생각해서 활동지에 간단히 쓴다. 그리고는 옆 사람과 짝을 짓는다. 서로 짝에게 자기소개를 하는데 마지막에는 반 전체 학생들에게 자신의 짝을 소개할 것이라고 미리 얘기해 주었다. 전체에게 짝을 소개해야 한다고 하면 조금 더 잘 듣고 적극적으로 하기 때문이다.


그러고는 각자 10초씩만 소개하도록 하였다. 10초는 엄청 짧은 시간이라 뭔가 시작하려고 하면 끝이 난다. 내가 10초 만에 '그만'이라고 외치자 모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쳐다보았다. '아직 아무 말도 못 했는데요?'라는 표정으로. 그러고는 나는 선심 쓰듯이 20초를 주었다. 아이들은 혹시나 시간이 또 금방 지나갈까 봐 열심히 자기소개를 하였다.


휴. 성공적이었다. 첫 시간의 어색한 공기를 금방 소란스럽게 만들었다. 이제는 발표할 차례이다. 나는 한 명 한 명의 이야기를 모두 가치 있게 여긴다는 메시지를 주고 싶어 모든 학생이 짝을 소개하도록 하였다. 먼저 나와 짝을 이룬 학생과 함께 시범으로 짝소개를 하였다. 그리고는 교실 뒤쪽의 짝들부터 둘씩 같이 일어나 짝을 소개하도록 하였다. 아이들의 이야기에 흥미를 보이며 추가 질문도 하고 내 경험과 연결시키기도 하였다. 25명의 소개가 제법 긴 시간이 드는 데도 아이들은 끝까지 열심히 잘 들어주었다.


이후에는 나의 수업 철학과 관련하여 동영상을 보여주고, 내가 수업에서 추구하는 것들은 이렇게 모두가 생각하고 의견을 말하고 서로 함께 배워나가는 것이라는 것을 이야기하였다. 한 시간 수업이 무사히 끝이 났다. 아이들의 눈빛과 온도가 수업 전과는 달라져 있음이 느껴졌다. 역시 아이들은 교사가 이끄는 대로 따라주고자 하는 순수한 영혼을 가진 존재임을 또 한 번 느끼게 되었다.




사실 새 학교의 교실에는 모두 전자칠판이 있고 PC가 따로 있었다. 그전에는 대부분 내 노트북을 연결하여 수업했기 때문에 무언가가 안 되는 일은 걱정하지 않아도 되었는데 이 경우는 전혀 예측할 수가 없고 미리 해볼 수도 없어 더 긴장이 되었다. 아니나 다를까 첫 수업 교실에서는 외부입력부터 한참이 걸렸다. 이것저것 다 해봐도 잘 안 되어 처음 보는 아이들에게 혹시 방법을 아느냐며 도와달라고 했다. 아이들은 쭈뼛뼛하면서도 기꺼이 도움을 주고자 애를 썼다. 외부입력이 해결되고 나니 인터넷 방화벽이 또 문제였다. 보안이 너무 강하여 내가 준비한 퀴즈 사이트가 열리지 않는 것이다. 또 다른 학생이 나와서 이리저리 시도해 보며 문제를 해결해 주었다. 진심으로 고마움을 과장되게 표현하였다.


모든 문제가 해결되고 정식으로 앞에 선 순간, 실제 내가 이 학교에 처음 왔으며 이런저런 이유로 매우 긴장되어 30분 전부터 앉아 있을 수가 없었다는 것을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그러면서 이렇게 처음 보는 나에게 도움을 주어서 고맙다는 말로 수업을 시작하였다.




이런 과정 덕분에 아이들과 더 빨리 가까워게 된 것 같다.

마음이 따뜻해지고 행복감이 가득한 첫날 첫 수업이었다.

벌써부터 아이들이 사랑스럽다.

새 학교에서의 날들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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