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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눈눈 Oct 31. 2023

가면

잘 아는 척하느라 외로운 사람들(리사 손의 강의를 듣고)

얼마 전 가까운 선생님이 아주 조심스럽게 구글 설문은 어떻게 만드는 거냐고 물어오셨다. 사실 아는 사람에게는 버튼 몇 개만 누르면 되는 간단한 것이지만 남이 만든 설문에 응답만 해 본 사람으로서는 설문을 만드는 것이 엄청 대단한 일처럼 보이는 법이다. QR코드를 만드는 방법, 긴 웹페이지 주소를 단축하는 방법 같은 것도 마찬가지이다. 하지만 나도 해보기 전에는 모두 대단해 보였다. '포장지 같은 것에만 있는 QR코드를 내가 만들 수 있는 거라고?' 그런 것은 컴퓨터 프로그래머 정도는 되어야 만들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시간이 조금 지나 많은 사람들이 손쉽게 사용하는 것을 보게 되었을 때에도 그들에게 쉽게 물어보지 못했다. 혹시 너무 쉬운 것인데 '이런 것도 모르나?'라고 생각할까 봐. 디지털 네이티브가 아닌 나는 사실 모든 것에서 그랬다. 노트북에서 와이파이 설정하는 방법을 남에게 물어보긴 부끄러워 내내 눈치껏 남이 하는 걸 엿본 적도 많았다. 매우 간단한 것임에도 아직 혼자 해보지 않았거나 하는 방법을 모르는 선생님도 많다. 그런데 선뜻 물어보지 못한다. 그래서 모르는 채로 그냥 지내는 경우도 많다. 그 선생님은 나와의 친분이 있어 부끄러움이 조금 덜 했고 그래서 용기를 내어 물어보았을 것이다.




'메타인지 학습법'의 저자 리사 손의 강의를 들었다. 그녀는 특히 우리나라에서 메타 인지를 어렵게 하는 가장 큰 요인이 '가면'을 쓰는 거라고 했다. 나는 원래 잘한다는 가면, 10만큼 노력했지만 8만큼만 노력한 척하는 가면, 모르는 걸 아는 척하는 가면 등이 현재의 상황을 판단하여 성장으로 가는 길을 차단한다고 했다. 모두 노력을 숨기고 속여서 도움을 요청할 수 없고 잘 몰라도 가면을 쓴 채로 혼자서 해결해 나가려고 하기 때문에 외로워 보인다고 했다. 순간 눈물이 핑 돌았다. 학교의 많은 선생님들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아니 무엇보다, 그러했던 과거의 내 모습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예전에는 무언가를 열심히 준비했다는 말이 부끄러웠었다. '열심히 준비해서 그 정도인가?'라고 생각할까 봐 두려웠고, '대충 준비했는데 이 정도다.'라고 은근히 자랑하고 싶기도 했던 것 같다. 그런데 언제부터였을까? 나는 내 노력의 가치를 믿게 되었다. 최선을 다하는 것의 기쁨을 알게 되었고 최선을 다할 수 있음이 자랑스러워졌다. '난 머리가 좋아서 조금 준비했는데 이 정도를 얻었어요.'라고 말하는 사람보다 '난 진짜 못하는 사람인데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서 이 정도를 얻었어요.'라고 말하는 사람이 훨씬 멋있게 보이기 시작했다. 어떤 계기였는지는 모르겠다. 다만 전자보다 후자가 훨씬 어렵다는 것을 알게 된 순간부터였던것 같다.


나는 참 좋은 멘토를 만났다. 내 실력이 형편없던 때에도 그분은 항상 참 잘 배운다는 말로 나를 칭찬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대학까지 나오고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사라는 사람이 어떻게 이 정도도 모를까 싶은 것들이 한 둘이 아니었을 텐데 배우려고 노력하는 모습을 항상 칭찬해 주셨다. 그 칭찬이 동력이 되어 나를 더욱더 성장으로 이끌어 온 것이라 생각된다. 그래서 노력하는 모습이 부끄럽지 않게 되었다. 똑똑해 보여야 하는 가면을 조금은 벗어낼 수 있었다.


메타인지를 잘하려면 과거로의 시간 여행을 잘해야 한다고 했다. 나의 올챙이적을 제대로 기억하고 있어야 한다. 내가 그 부분에서 개구리로 성장해 나가기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여왔는지, 얼마나 많은 연습을 했는지, 그때는 무엇이 그렇게 어려웠는지, 어떻게 성취를 이루게 되었는지 생생하게 기억할수록 미래에서의 상황을 컨트롤하는 능력도 길러지게 된다. 그래서 잊지 않으려고 애를 쓴다. 내 올챙이적을.




구글 설문은 어떻게 만드는 거냐고 물어준 그 선생님 덕분에 가면을 쓰고 혼자 외롭게 있는 많은 선생님들이 보였다. 또 나의 과거를 떠올려보니 충분히 그럴 수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모르는 것은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는 생각에서부터 배움에 초점을 맞추어 간다면 우리는 덜 외로울 수 있을까?


선생님들께 메시지를 보냈다.

'나도 할 수 있다! 구글'연수를 시작해보려고 합니다.
매주 수요일 3회에 걸쳐서 점심시간 딱 30분씩만!

1차-담임 선생님들에게 더 좋은 '구글 설문 만들기'
2차-공동으로 함께 만드는 PPT '구글 프레젠테이션'
3차-공동으로 함께 만드는 한글 문서 '구글 Docs'

30분만 투자하면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서로의 가면을 벗고 도움을 청하고 도움을 주며 외롭지 않게 살아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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