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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늘눈 Mar 10. 2016

12. 한 달 살 데가 있을까?

 10월 말에는 지금의 아파트를 내주어야 하는 상황에서 10월 말부터 11월 말까지 임시로 머물러야 할 기간은 한 달이 된다. 9월 중순이 넘어가는 시점에서 우리의 임시거처를 구해보기로 한다.

 

'착공 전에도 이런저런 고달픈 게 많구나.'


 나의 불찰로 생긴 일이라 가족에게 미안하다. 

 우리 아가들, 아내와 나는 한 달 동안 어디서 살아야 할까?


 오피스텔?


 지금 살고 있는 곳 주변에 오피스텔이 참 많다. 그리고 이제 막 입주를 시작한 것도 많이 있었다. 이런 신규 오피스텔들은 초기 공급 물량이 수요량보다 많기 때문에 단기 임대가 간혹 나왔다. 그런 단기 임대 오피스텔을 식구들과 함께 구경 갔다. 구경하러 간 오피스텔 건물은 복도가 참 길었는데 우리 아가들은 그런 복도가 신기하고 재밌는 놀이터 같았나 보다. 네다섯 개의 오피스텔을 구경하는 동안 두 아가들의 웃음이 끊임없이 복도 안에서 울리고 메아리쳤다. 복도 벽에 몇 번 튕겨진 아이들 웃음소리가 내 가슴에 와 닿아 마음을 흔들었다. 메아리까지 치는 동굴 같은 복도, 비좁은 방, 코를 찌르는 새집 냄새... 안 되겠다. 한 달이래도 이 오피스텔에서는 안 살기로 했다.


 제주도?


 제주도 한 달 살기가 붐이다. 그래서 집 구하기는 너무 쉬울 것 같아 아내에게 의견을 물었다.

 "한 달만 제주도에서 살아보자. 색다르고 흥미진진할 것 같은데 어때? 난 휴가를 일주일 정도는 낼 수 있을 것 같아. 일주일은 같이 지내고 그 뒤로 주말에 왔다 갔다 할게."

 단칼에 퇴자를 맞았다. 많은 이유가 있었다. 우선 우리 집이 지어지는 모습을 못 보는 게 마음에 걸린단다. 그리고 제주도에 한 달 살기가 휴양이 아니고 정말 생활하는 것인데, 아는 사람 하나 없이 홀로 아가 둘을 보살필 생각을 하니 엄두가 안 난단다. 그러고 보니 제주도에는 장모님도 안 계시고 친구들도 없고 어린이집에도 보낼 수 없다. 그러면서 집안 청소며 빨래며 장보는 일이며 식사 준비에 애들과 놀아주는 일, 씻기는 일, 재우는 일 등 등 모든 것을 아내 한 명에게 떠 맡기는 꼴이었다.

 제주도 한 달 살기는 너무 힘들어서 안 되겠다.


 게스트하우스?


 멀지 않은 곳에 게스트하우스가 있었다. 그곳에 우리의 사정을 설명하고 4 식구가 한 달간 지내도 되는지 물었다. 흔쾌히 허락했다. 우리는 약간 설렜다. 게스트하우스라는 그 특이함. 젊은 청춘들 만의 특권이라고 까지 생각하고 있었다. 지금 많이 늙었다는 것은 아니지만, 애 둘을 키우는 부모가 훌쩍 여행을 떠나 게스트하우스에 묵는 것은 어려우니까. 그런데 이참에 그 게스트하우스에 머물며 스쳐 지나가는 수많은 여행객들과 어울려 지낼 수 있겠다 싶어 설레었다. 새로움에 도전하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아직 어리지만 우리 아이들에게도 여행객들과의 만남은 좋은 추억거리가 될 것이다. 

 다음 날 바로 구경하러 갔다. 호스트는 우리의 사정을 배려해서 아주 큰 독립된 생활공간을 제공해준다고 했다. 그 독립된 공간이 마음에 들었다. 다른 게스트에게 혹시 모를 피해를 주지 않을 수 있었다. 사실 우리 아가들이 새벽에 자주 깨어 우는 편이다. 여행하다 편히 묵기 위해 방문한 게스트하우스에서 새벽에 만약 아가 울움소리에 밤잠을 방해받는 다면 얼마나 피곤하겠나. 독립된 공간이라 이 부분에 대해서는 한 시름 놓을 수 있겠다. 하지만 그런 배려에도 불구하고 우리 아가들의 울움소리가 다른 게스트들에게 방해가 될 수 있음을 아이러니하게도 그 호스트의 배려로 알게 되었다. 

 호스트의 배려는 우리의 설렘을 차단했다. 기대했던 여행객들과의 교류는 불가했다.

 왠지 그 게스트하우스에 초대받지 못한, 그리고 어울리지 않는, 여행객이 될 수 없는, 셋방 사는 가족이란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그 게스트하우스에서 지내지 않기로 했다.


 호텔?


 호텔은 비싸다. 그러나 결혼기념일 같은 특별한 날만이라도 가까운 호텔에서 편하게 묶어보고 싶다. 청소 걱정 없이, 끼니는 맛있는 호텔식을 이용하면서 말이다. 한 번도 못 해봤다. 멀리 여행 가는 게 아니라면 가까운 곳의 호텔 이용은 낭비로 생각되어져 앞으로도 못 할 것 같다. 이런 비싼 호텔 생활을 우리가 처한 상황을 핑계로 겪어보면 어떨까?
 아내에게 물었다.

 "한 달 내내 호텔 이용은 금전적으로 힘드니까 일주일에 월화수목금 이렇게 4박 5일 정도만 호텔에서 생활해보면 어떨까? 그리고 금토 일월 이렇게 주말 낀 3박 4일은 장모님 댁에 신세 좀 지는 게 어때? 게다가 공사기간에 유연하게 대처할 수 도 있어. 공기가 만약 3주 만에 끝난다면 3주만 호텔 이용하면 되고, 반대로 한 달에서 며칠이 더 길어진대도 한 달 단위로 월세를 또 구할 걱정을 안 해도 되잖아."

 역시나 반대다. 이유도 정확히 말 안해준 것 같다. 뭐 가격도 비싸거니와 애들과 다 함께 호텔이랑 장모님 댁을 왔다 갔다 하는 모양새도 보기에 썩 좋지 않았을 터다.


 아파트?


 지금 살고 있는 아파트 단지 안에서 단기 임대를 알아봐 달라고 부동산에 부탁을 해두었었다. 부동산 아저씨는 우리 집 매매 계약을 중개한 의리 때문인지 정말 열심히 찾아주었다. 그러나 단기 임대는 집주인들이 모두 외면했다. 지금까지 나름 여러 각도에서 방도를 찾아보았지만 딱히 좋은 방법을 찾지 못한 우리는 서서히 코너에 몰린 기분이 들었다. 초초해졌다. 그래서 우리의 새로운 집주인에게는 미안하지만, 부동산 아저씨의 조언을 듣기로 했다. 월세를 구하되 단기라는 말은 하지 않기로 한 것이다. 정상적으로 2년 계약을 하기로 했다.

 그리고 한 달을 사는 것은 너무 양심 없으니 두세 달 후에 사정이 생겨 나간다고 집주인에게 말하기로 했다. 새 집주인에게는 조금 미안하지만, 우리 가족의 안위를 우선시했다. 그러면서 약간의 불확실성을 안고 가야 한다. 만약 우리 다음 세입자를 찾지 못하면 찾을 때까지 월세를 계속해서 내야만 한다. 최악의 경우 계약기간 2년이 종료될 때까지 말이다. 

 이런 월세 납입기간의 불확실성을 안고 가는 것이 조금이나마 가족에 대한 미안함을 덜어준다. 


 새집증후군도 없을 거니와

 생활 영역도 변함이 없어 내 출퇴근 거리나 아이들 어린이집을 걱정 안 해도 된다.

 당연히 아이들은 동굴 같은 복도 대신에 안전한 놀이터에서 뛰어놀 수 있다.

 이삿짐을 보관소에 맡기지 않아도 된다.

 우리 집을 짓는 모습도 가까이서 지켜볼 수 있다.

 월세 보증금 구하는 부담은 생기지만 월세는 다른 방안들보다 싸다.


 우리 다음의 월세 세입자를 금방 구할 수 있을 거라는 기도와 함께, 우리는 같은 동의 다른 층 아파트로 월세 2년의 정식 계약을 했다.


 '고달팠던 일도 지나고 나면 성장하는 큰 나무의 밑거름이 되어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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