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은 배려라는 것.
어느날인가 따스한 햇살아래, 딱 걷기 좋은 날.
허리질환으로 거동이 불편하신 시어머니를 모시고 가벼운 산보를 하자고 나섰다.
당뇨까지 있으셔 어떻게 해서든 운동을 시켜드리고 싶은 마음이었다.
한걸음 한걸음 떼기가 마치 이제 걸음마를 시작한 아이마냥 더딘 어머니를
11살 아들이 보조를 맞춰 걸었다.
참고로 이 아들은 난간이란 난간, 계단이면 계단, 뭐든 장애물이 보이면 훌쩍 뛰어넘고,
어디든 냅다 달려대는 에너지 하이레벨의 아이다.
그런데 그런 아이가
느릿느릿, 열 걸음 가다 하늘을 올려다보시는 할머니와 보폭을 맞춰 걷는다고 생각해보시라.
얼마나 답답하겠는가.
중간중간 나와 눈을 열두번은 마주치며 입꼬리를 씰룩거리던 모습에서 그 마음을 읽을 수 있었다.
난 조용히 아들을 불러 속삭였다.
'아들, 너는 힘든게 아니라 답답해서 짜증이 날 수 있지만, 할머니는 걸음걸음에 허리가 끊어질 만큼 아프셔.
그런데 이쁜 손자와 함께 나란히 걷는 것이 좋아서 그 아픔을 참고 걷고 계신거야...'
그 뒤로 뭔가 느꼈을까?
아이는 할머니와 보폭을 맞추려 할머니의 지팡이를 포함한 세 다리를 연신 쳐다보며 걷기 시작했다.
자기가 조금 빨라질라치면 제자리 걸음으로 다시 나란히 섰다 할머니와 다시 천천히 걸었다.
그러다보니 어느덧 자연스레 할머니를 보며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누군가와 속도를 맞춰 걷는다는 것.
그것은 생각보다 많은 것들을 생각해야 한다.
바로 상대에 대한...
걷기에 신발은 괜찮은지, 걷는 길에 돌뿌리가 많아 불편한 건 아닌지, 목이 마르진 않은지,
힘들어 지쳐 좀 쉬기를 원하는 건 아닌지.... 등등.
이것은 곧 관심이고 배려였다.
covid-19 로 삶의 많은것들이 변화를 넘어 탈바꿈 되고 있는 요즘,
세상에 수많은 진리 중 새삼 수긍하게 되는 게 있다.
'이 복잡한 세상, 사람은 누구나 결코 혼자서 살아갈 수 없다는 것'
하지만 그와함께 덧붙여지는 또다른 진리 또한 잊어서는 안되지 싶다.
함께 더불어 잘 살아가기 위해서는 서로에 대한 배려가 필요하다는 것.
11살 아들도 할머니와 함께 걷기를 통해 그 진리를 조금씩 배워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