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러움의 시대, 앵매도리로 답하다.

내 꽃은 내 자리에서 핀다.

by eyewisdom


딸이 없는 나는 종종 인스타그램에 올라오는 지인들의 피드를 보며 순간적으로 탄성을 내뱉는다.

“딸과의 쇼핑”, “딸과 함께한 전시회”

“와, 진짜 좋겠다!!! “

그러다 이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혼잣말로 나 자신을 다독인다.

“아니야, 부러우면 지는 거야.”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 보면, 부러움이라는 감정은 나를 꽤나 성장시켜 왔다.


초등학교 때는 인기 많은 반장 지은이를 보며 머리 모양도 따라 하고 말투도 흉내 냈다.

중학교 시절엔 악보도 없이 피아노를 치던 주원이를 보며 집에서 하루 종일 건반을 두드렸다.

세련된 글씨체로 편지를 건네던 선희를 따라 흘려 쓰는 글씨를 연습하던 사춘기도 있었고,

고전소설에 해박했던 수연이를 부러워하며 몰래 제목과 작가, 줄거리까지 외워보던 밤도 있었다.


그렇게 난 나름의 미적 감각과 음악 감각, 그리고 ‘ㅁ(미음)이 침 흘리는 글씨’(대학 친구들이 붙여준 나의 시그니처 글씨체)를 가진, 책을 좋아하는 지금의 내가 되었다.

돌이켜보면 내 안의 부러움이야말로 나를 조금씩 더 앞으로 나아가게 한 힘이었다.




그런데 언젠가 초등학교 3학년이던 아들과 나눈 대화가 내 생각을 뒤집어 놓았다.


“아들, 넌 안 부러워? 너도 조금만 열심히 하면 수학 잘하는 준우나 영어 잘하는 원준이처럼 할 수 있는데?”

내 말에 아들은 잠시도 머뭇거리지 않고 대답했다.


“엄마, 그게 왜 부러워? 준우는 수학을 잘하고, 원준이는 영어를 잘하지. 근데 나는 축구를 잘하잖아.

애들마다 잘하는 게 다른 건데, 그게 왜 부러워?”


순간 아이의 당당한 대답 앞에서 부끄러움이 밀려왔다.


내가 존경하는 스승의 말씀 중에 ’ 앵매도리(櫻梅桃李)’라는 말이 있다.

벚꽃, 매화, 복숭아꽃, 자두 꽃. 이 네 꽃은 제각각 생김새도 향기도 피는 시기도 다르다.

그러나 그 다름이 모여 봄을 더욱 풍요롭게 만든다. 매화가 벚꽃을 부러워할 필요도, 복숭아꽃이 자두 꽃을 흉내 낼 이유도 없다.

각자의 자리에서 자신답게 피어나는 순간, 그 자체로 완전한 아름다움이 된다는 말이다.


요즘 우리는 하루에도 수십 번씩 SNS 속 남의 삶을 마주한다. 누군가는 멋진 여행 사진을, 누군가는 자녀와의 다정한 순간을, 또 누군가는 화려한 성취를 보여준다.

그 앞에서 나도 모르게 마음 한편이 흔들리고 ‘부럽다’는 말이 절로 나오기도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남의 꽃일 뿐, 나의 꽃은 아니다.


자식은 미래에서 온 스승이라고 하더니 아들의 말이 바로 이 앵매도리의 가르침 같았다.

남과 비교하며 가지는 부러움은 때로 나를 자극하고 성장시킬 수 있지만, 거기에 머물면 결국 나를 잃게 된다.

중요한 건 남의 꽃이 아닌 나만의 꽃을 피우는 것.


그때 초등학교 3학년이던 아들이 중학교 2학년이 된 지금.

그때처럼 여전히 당당하게 “그게 왜 부러워? “라고 말해줄 수 있을까?

사춘기 한가운데서도 자기만의 꽃을 지켜가고 있을까?

가끔은 나처럼 남을 부러워하며 흔들리고 있지는 않을까?


그럼 뭐 어때. 괜찮다. 부러움을 느끼는 것도, 가끔 흔들리는 것도 자연스러운 일이니까.

다만 그 부러움이 나를 성장시키는 힘이 될 수는 있어도, 나를 잃게 만드는 이유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만 기억하면 되지 않을까?


아들아, 엄마도 여전히 배워가고 있어. 남의 꽃이 아닌 우리만의 앵매도리를 피워가는 법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