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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냇물 May 10. 2022

진고개 route

지난주에는 오대산 월정사를 다녀왔다. 절 구경 가는 데 관심이 없던 아내도 무척 마음에 들어 했다. 귀갓길은 생경한 코스를 택했다. 주문진 방면 길인데 지도를 보니 꼬불꼬불한 길이라 더 가고 싶은 욕심이 생겼다. 진고개 길이다.

월정사를 떠나 한참은 평지길을 가다가 고개가 가까워지니 점차 고도가 높아진다. 진고개 휴게소가 보이는 곳에 960m 표식이 보이고 작은 터널을 통과하자마자 바로 내리막 길이 시작된다. 내 차가 골짜기를 왔다 갔다 하며 아래로 아래로 심하게 내려간다.   

   

운전 방심하면 큰일 날 길 같다. 조심조심 한참을 내려가 송천 약수터를 지나니 귀가 멍해지며 내리막 길도 완만해졌다. 태백준령이 험하고 높긴 높구나. 고속도로가 생기기 전까지 대관령 길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오백 년 전 어머니를 고향에 두고 그곳을 넘던 사임당의 발걸음이 얼마나 무거웠을까?

대관령 고갯마루에서 강릉의 친정집을 바라보며 늙으신 어머님을 고향에 두고 / 외로이 서울길로 가는 이 마음 / 돌아보니 북촌은 아득도 한데 / 흰구름만 저문 산을 날아 내리네!”라도 읊은 시가 대답을 한다.


비만 오면 땅이 질어지는 고개를 의미하는 진고개(泥峴)는 여러 곳에 있으나 서울 충무로의 진고개와 강원도 진고개가 대표적이다.    

  

충무로 진고개는 지금 세종호텔 뒷길 부근으로 이 일대가 그다지 높지는 않았지만 워낙 질어서 이 이름이 붙었다 한다. 도시발전을 하면서 3m 정도 깎아서 지금은 평지 도로가 되었지만 지명은 남아있다.  

   

강원도 진고개는 강릉 연곡과 평창 대관령면을 잇는 고개로 대관령과 함께 평창 방면에서 강릉 방면으로 연결하는 오래된 길이다. 여기에는 진고개 route라 불리는 색다른 사연이 있다.


한국전쟁 이전부터 북한은 끊임없는 대남 무력도발을 하였으며 1990년대 후반기까지는 무장공비나 간첩을 침투시키곤 했다. 그때마다 오대산은 유격 기지로서 필요 때문에 항상 그들의 중심에 있었던 산이다.  

    

오대산이 유격 기지로 적합함은 대관령면 일대 지형을 보면 이해가 된다. 특히 현재 오대산의 동, 서, 남, 북대와 월정사 일대의 산세와 지형 양상, 식생은 유격 기지로 최적의 조건을 가진 곳이다. 그러니 끊임없이 침투 시도를 한 것이다.      


1968120명의 무장공비가 침투했을 때 그들에게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라고 항거하다 참혹히 살해당했다는 이승복 어린이의 생가도 이 일대이다.   

   

강원도 진고개는 그들이 동해안으로 침투를 해서 유격 기지인 오대산으로 들어가는 중요 통로였다. 1949년 대남 유격대 100여 명이 침투해 민간인을 살해한 사건부터 1968년 울진 삼척 공비침투, 1969년 주문진 무장간첩, 1996년 강릉 잠수함 침투 공비사건에 이르기까지...     


그래서 강릉 연곡에서 진고개를 경유하여 오대산으로 이르는 통로를 마치 베트남 전쟁 당시 북베트남과 남베트남을 연결하던 보급 통로를 ‘호찌민 route'라고 부른 것처럼, ‘진고개 route라고 불려진다.       


이런 민족상쟁의 깊은 상처와 흔적이 남아 있는 평창! 영동고속도로가 생기기 이전까지는 강원도의 내륙 오지로 방치된 곳이 었으나 고속도로 개통 이후 날로 발전하는 희망의 땅으로 바뀌었다.    

  

특히 인간의 생체리듬에 제일 좋다는 평균 해발고도 700m에 위치한 청정지역으로 사계절 레저스포츠와 휴양관광지, 청정 고원 자연의 생명력 가득한 고랭지 농축산업의 중심지로...      


700m의 유토피아 평창에서 여름살이라도 하면서 진고개 route를 경유해 백두대간 종주라도 한번 시도해봐? 아니면 단기 출가학교라도 들어가 내면의 나를 돌아보는 시간을 가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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