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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냇물 Jan 15. 2022

누룽지 작전

군에서 나의 초임지는 강원도 고성군 일대의 대적경계를 담당하는 보병여단이었으며, 거기에서 GP장 임무를 수행했었다.


GP란 비무장지대 내에 위치하며 소대급 경계부대가 관측과 경계를 주목적으로 상주하며 임무를 수행하는 전초기지이다. 유사시에는 적정탐지, 화력유도 등의 임무를 수행한다. 평시에는 관측과 자체경계가 주된 임무이며 주기적으로 관할지역에 수색정찰과 매복 작전을 하기도 한다.  

    

수색정찰은 통문을 나설 때면 항상 긴장되고 사람이 보이면 복지부동을 하며 그를 주시한다. 매복은 밤의 정적에 긴장되고 풀벌레 소리가 갑자기 멈추면 숨이 막힌다.      


경계작전 임무보다 작전로나 진지보수와 같은 전투준비를 위한 부가적인 일들이 더 귀찮고 부담스럽다. 그러나 그것보다도 더 고된 일은 철조망으로 둘러싸인 직경이 4~50m 정도밖에 안 되는 기지에서 몇 개월을 견뎌내야 하는 것이었다. 그곳에서의 삶은 조금 긴장되고 매우 무료한 생활이다.  

    

그러나 후방편지를 받는 날은 무료함이 깨진다. 부모님이나 친구로부터 온 편지를 받으면 반갑다. 여자 친구로부터 편지를 받으면 난리부르스다.  행낭으로 도착한 편지를 전해주는 일은 항상 큰 이벤트였다. 특히 여자가 보낸 연분홍색 봉투의 편지를 받는 자는 주위로부터 부러움을 듬뿍 받고, 빈도가 좀 높아지면 은근히 시기도 받는다. 이 후방편지 받는 일이 끝나면 또 무료해진다. 조금 흥미로운 일이 하나 있기는 하다.     


그건 소위 대면작전이란 것으로 북한군과 대화하는 일종의 심리전 활동이다. 위치가 좋은 GP는 큰 앰프가 설치되고 대북 심리전 방송을 하는데, 우리 GP는 그런 곳은 아니고 육성으로 북한군과 농담 반 진담 반의 대화로 심리전을 하는 곳이었다.   

   

비무장지대는 인적이 없는 곳이라 아침에는 깔때기를 이용하면 너끈히 대화가 된다. 대화 내용은 정리해서 상황 계통으로 보고하는데 귀찮기 때문에 중요한 사항이 아니면 뭉개는 경우도 꽤 있다.     


4월 어느 날 북한군이 말을 걸어왔다. ‘동무들! 잤소?’는 인사에 우리가 반응을 보이니 또 인민의 낙원 자랑을 해댄다. 그러려니 하고 듣고 있는데 갑자기 커다란 물건을 가지고 나와서 동무들! 이게 뭔지 아냐?’라고 하기에 뭐냐?라고 했더니 이거 우리 수령님께서 보내주신 선물이다!라고 하면서 박스를 들어 보였다. 동태 상자란다 기가 막혔다. 의외이기도 하고...‘어쩌지! 밀리면 안 되는데’하며 옆에 있는 대원들을 돌아보았다. 

   

잠시 정적의 시간이 흐른 뒤 내 뒤편에 있던 선임하사가 제가 뭐 좀 가져오겠습니다하면서 막사로 급한 발걸음을 옮겼고 잠시 뒤 취사장에서 커다란 누룽지를 가져왔다. 그리고 깔때기를 잡고 동무들! 이게 뭔지 아니?’하며 말을 걸었다. 저들의 반응이 왔다.   

   

그러자 선임하사는 우리는 쌀이 남아 매일 누룽지 해 먹는다!’라고 외쳤고 이어서 우린 라면으로 매일 야식도 먹는다!’라고 전하자 저들은 조용했다. 카운터 펀치를 날린 것이다. 그러고 보니 그날이 김일성 생일(4월 15일) 다음날이었다. 그 동태는 1년에 한 번 받는 수령님 선물이었던 것이었다. 오죽하면 우리에게 자랑하고 싶었을까! 노련한 선임하사의 기지로 통쾌한 반격을 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조국이 분단되어 민족 간 갈등의 상처가 아직도 깊이 남아있다. 누룽지 사건도 그 일환이다. 지금 우리 집 아파트 창밖으로 속초항 내항에는 몇 년째 정박되어 있는 금강산 유람선이 보인다. 그리고 며칠 내내 북에서 발사한 미사일 뉴스가 씽씽 날아다닌다. 분단이 이어지기는 한참을 더 기다려야 될 것 같다. 가슴에는 연민과 증오가 함께 느껴진다.      


GP는 지금 통일전망대 바로 앞에 위치한다. 속초에서 멀지 않은 곳인지라 한겨울이 지나면 누룽지 작전의 추억을 되돌아볼 수 있는 그곳에 한 번 다녀와야겠다. 덤으로 아름다운 해금강 구경도 하고...낙타암, 구선봉, 감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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