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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속초맛집

고향 메밀전

by 시냇물

어릴 때 외갓집에 가면 외할머니가 솥뚜껑을 뒤집어서 부쳐주셨던 메밀전! 그 맛을 오늘 속초에서 경험했다.

그동안 속초 중앙시장 내에 전집이 두서너 집이 있었는데 내가 아는 메밀전 맛이 아니어서 실망했었고, 아내에게 “내가 한번 차려볼까?” 농담도 했었는데 ㅁㅅ 닭강정집 바로 앞에 전집 할머니가 부친 메밀전이 나를 즐겁게 했다.


무쇠로 만든 둥근 팬을 중불에 천천히 달군 뒤 아주까리기름을 살짝 둘르고 적당히 절여진 배추 두 잎과 쪽파 서너 개를 가지런히 놓고 메밀 반죽을 얇게 둘러서 부친다. 배추에 노란빛이 돌면 곧 옅고 밝은 회색빛의 군침 도는 메밀전!

메밀전은 식재료도 신선해야 되지만 반죽을 적당히 숙성시켰다가 얇게 두르는 것이 메밀전 부침의 포인트이다. 노릇노릇 반쯤 부쳐진 얇은 전을 잘 뒤집는 것도 일꾼의 실력이다.


사람들이 메밀전을 좋아하는 이유는 이효석 님의 단편소설 ‘메밀꽃 필 무렵’의 아름다운 한국인의 서정이 서려있는 메밀 음식이기 때문 아닌가 생각이 들기도 하다. 시보다 아름다운 구절을 다시 꺼내 본다.


“달은 지금 긴 산허리에 걸려있다. 밤중을 지난 무렵인지 죽은 듯이 고요한 속에서 짐승 같은 달의 숨소리가 손에 잡힐 듯이 들리며, 콩 포기와 옥수수 잎새가 한층 달에 푸르게 젖었다. 산허리는 온통 메밀밭이어서 피기 시작한 꽃이 소금을 뿌린 듯이 흐붓한 달빛에 숨이 막힐 지경이다.”


소설의 주 무대는 영월과 연접한 평창군 봉평인데 우리 외갓집과 가깝다. 그래서 나는 어려서부터 메밀전에 익숙했었나 보다. 그 덕분인지 영월 메밀전이 꽤 유명하다. 서부시장 전집이 여럿이며 관광객들로 붐빈다.


타향살이를 시작한 뒤론 고향에 들를 때마다 영월 서부시장 전집에 가서 따끈한 것으로 배불리 먹고 귀가할 때는 몇 박스 가져와 메밀전 좋아하는 처남집에도 보내고 며칠씩 즐겨 먹던 음식이다.


속초에 와서 두서너번 전집에 찾아보니 전의 때깔만 봐도 아니고 식용유를 흥건하게 둘르며 전을 부치는 모습을 보고 기겁을 해서 돌아왔는데 이번에 아내가 고향 맛을 내는 메밀전을 찾았다.

구수한 고향의 맛 배추메밀전이 나를 행복하게 해 주네!


*** 메밀은 예로부터 구황작물로 알려졌다. 불순한 기상조건에서도 상당한 수확을 얻을 수 있어 흉년이 들 때 큰 도움이 되는 작물로, 천대받고 못살았을 때 먹던 먹거리였으나 요즘은 담백하고 고소한 맛에다가 다이어트 효과까지 있어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즐겨 찾는다. 대표적 메밀을 식재료로 한 음식은 막국수, 메밀전, 메밀전병 등이 있다.


*** 흐붓한 : 사전에서 정확한 의미를 확인할 수 없으나 네이버 지식에 '푸근한' 즉 부드럽고 따뜻한 의미로 설명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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