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랑 영랑을 찾아서

by 시냇물

영랑호는 내가 속초살이를 시작하며 제일 먼저 산책을 다녀온 곳이다. 이제는 단골이 돼서 무척 친하다. 요즘은 1주일 내내 가기도 한다. 호수가 정갈하고 편안해서 좋기도 하지만 이름도 너무 마음에 들었다.


처음에는 일견 김영랑 선생의 이름을 딴 곳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왜냐하면 호수가 선생님에 대한 느낌과 너무 같아서...


그런데 안타깝게도 호수 이름이 선생님하고 관련이 없는 걸 확인하고 조금 아쉬웠다. 섬세하고 영롱한 서정시인의 길을 걷는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라는 기대가 없어지기에...

확인해보니 신라 화랑 영랑의 이름을 따와서 영랑호가 되었다 한다. 조금 생경했다. 그분의 이름은 들은 적도 없었고 처음 만나는 사람과 바로 친해지지 못하는 성격이라 더 그랬다. 하기야 그렇게 하면 나만 손해인지라 그분과 친해지기로 마음먹었다.


몇몇 자료를 찾아보니 영랑은 효소왕 시절 화랑이었다. 삼국통일이 된 뒤 690년경 안정된 시기인지라 이분이 장군이 되어서 출전했거나 고위직에 있었다는 기록은 없다.

신라시대에 화랑이 200여 명 되는데 영랑을 포함한 사선(四仙)이 가장 어질었다고 여러 문헌이 전한다. 그 네 명의 이름은 영랑(永郎), 술랑(述郎), 남랑(南郎), 안상(安詳)이다. 고려, 조선시대 여러 문인들도 이들을 최고의 화랑으로 칭송했고 이들의 행적을 순례하는 게 유행했었다 한다.


전국 각지(주로 지금의 경상, 강원도 지역)에서 이들이 수련하면서 거쳐갔던 명승지에 관련된 흔적이 상당히 많이 남아있는데, 예를 들어 관동팔경 중 총석정과 삼일포의 이름이 이들과 관련돼 있다. 삼일포는 네 화랑이 3일간 유람하고 갔다고 해서 삼일포로 명명되었고, 이외에도 금강산 영랑봉과 영랑대, 고성군 선유담, 속초시 영랑호, 강릉시 한송정, 울진군 월송정 등이 이들의 행적과 연관된 이름들이다.

이름만 남긴 게 아니라, 예를 들면 삼일포에는 영랑도남석행(永郎徒南石行), 술랑도남석행(述郎徒南石行)이라고 직접 새겨놨다는데, 지금은 북한이 점령한 곳이라 그게 남아있는지는 확인할 수가 없다. 네 명은 금강산에서 수련을 했다고 하며, 서라벌에서 열리는 무술 대회에 참가하기 위해 동해안을 따라 내려가다가 영랑호의 경치가 너무 좋아 대회 날짜도 잊고 계속 머물렀다고 한다.

이곳은 천년이 넘는 세월의 사연이 깃든 곳이다. 산천을 주유하며 심신을 수련하던 사선들의 체취가 배어있는 곳이다. 비록 내 좋아하는 영랑 시인의 서정은 아니더라고 조상이 공감한 풍치가 어찌 부족한 곳이라 할 수 있으랴!

영랑 호반길을 걷다 보면 화랑도 체험장을 안내하는 간판이 보이는데 화랑 영랑의 컨셉으로 만든 곳이라 여겨진다. 가려고 몇 번을 망설이다 안 갔다. 지난번 설악누리길을 행복하게 걷고 마지막에 만난 풋냄새나는 자생식물원 같은 모습을 보지 않기 위해서다.

나는 이곳에서 곧 다가올 찬란한 봄을 기다린다. 절망과 기다림의 무산보다 희망과 평온의 만남이 있는 곳 영랑호를 사랑하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