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랑 호반길을 거닐면 편안하다. 맑고 투명한 호수가 그 으뜸의 원인임은 분명하다. 바람이 불어 팔랑팔랑 파도가 쳐도 보기가 좋고 명경처럼 설악이 비치는 모습도 아름답다.
그리고 수변을 따라 형성된 산책로와 주변의 벚나무 군락은 물론 대나무나 소나무 등 늘 푸른 나무들은 호반길을 걷는 나를 평강하게 한다. 이미 낙엽이 져 앙상한 가지만 남은 활엽수들도 괜찮다. 봄이 곧 오리라. 범바위는 항상 늠름하다.
철 따라 빠짐없이 들려서 호수를 화사하고 여유롭게 해주는 흰 뺨 청둥오리, 쇠기러기 같은 철새들도 큰 몫을 하고, 무심히 지나친 수변가의 풀 한 포기도 제 몫이 있다.
알아주지 않는 조연이 있으니 묵묵히 자리를 지키고 있는 이름 모를 바위들이다. 그런데 그 바위들을 핵석이라고 한다.
사실 요즘 ‘핵’이란 말을 쓰기가 조금 불편하다. 북쪽에서 시도 때도 없이 미사일과 ‘핵무기’로 우리 국민들을 협박하며 사정을 하고 있고, 정치권에선 ‘ㅇ핵관’이란 짜증스러운 말이 이편저편에서 심심치 않게 뉴스를 탄다마는 오늘은 ‘핵’ 자와 관련된 이야기를 해야겠다.
이 ‘핵석’과 관련해서 내가 과문한 탓인지 처음 접했다. 창피함을 무릅쓰고 내 지식창고 검색을 하고 이리저리 확인을 해보니
핵석(corestone)이란 양파껍질 벗겨지듯이 둥근 모양으로 풍화가 진행되어 알맹이가 남은 암석으로 주변에 흙 또는 잘 부서지는 풍화 물질로 둘러 쌓여 있는 것을 말하며,
핵석과 관련된 토르(tor)는 핵석 주변의 풍화 물질(흙 등)이 모두 없어져서 알맹이 부분만 남아 켜켜이 석탑 모양을 이루는 것을 말한다.
쉽게 말하면 모진 풍파 다 겪고 각지지 않은 평강한 모습으로 홀로서 있는 바위가 핵석이라 이해해도 무방해 보인다. 영랑호반을 돌 때 범바위를 비롯 수변이나 수변 가까운 물속에 보이는 바위들이 핵석인 것이다.
범바위야 이미 이름이 알려져 있어 많은 이들이 다녀가고 사연도 듣고, 이름도 불러줘 영랑을 찾는 이들에게 사랑을 받는다만 산책로 부근이나 수변 가까운 물속에 묵묵히 앉아있거나 누워서 영랑 천년의 세월을 지켜준 핵석 바위들이 대견하다.
핵석을 영어로 쓰면 core stone 즉 단어가 ‘속, 중심의 돌’을 의미하며, 한자 핵(核)도 '씨핵'이라 중심적 의미를 가진 단어이다. 이 바위들이 소중한 것이었음에도 너무 무심했던 내가 미안하다. cornerstone이나 capstone, milestone은 알뜰살뜰히 기억하며 핵석은 모르다니 스스로를 자책해본다!
오늘도 영랑호를 걷는다. 영랑호 습지생태공원 입구 삼거리 길을 들어서자마자 바위들이 드믄드믄 보인다. 대견하고 미안하다. 호수를 빛내주는 보석 같은 핵석들이 보인다! 호수 아래쪽으로 내려가 동리에 들어서면 신축한 테라스형 아파트가 눈에 들어온다.
그래도 작은 위안을 받는 것은 이 아파트 설계자가 진중해 보이는 핵석과 건물을 조화롭게 건축하였고, 그 의미를 적은 자그마한 안내간판이 보인다. 나 같은 문외한이 다니다가 핵석의 가치를 알아보게 하였으니 참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