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랑호 물이 바다로 나가는 입구에서 출발해 새로 만든 수변 데크 길로 오면 끝단에 호수를 배경으로 충혼비 하나가 서있다. 통천군 순국동지 충혼비다.
6.25 전쟁 때 남으로 피난을 해 한국에 거주하는 통천 군민들이 전쟁 기간 자유민주주의를 위해 순국하신 통천 군민들과 경찰을 추모하기 위해 만든 기념비다.
행정단위로 지역마다 현충탑이나 충혼비가 있는 것은 자연스러우나 북한의 행정구역 단위 충혼비가 남한 땅에 설치된 곳은 드물다. 오히려 망향탑이나 망향공원은 흔하다. 그 사연이 있다.
전쟁 전에는 양양군 기사문 해변 부근이 38선이라 통천군은 북한의 종심 깊은 지역으로 원산과 연접해 있다. 이 충혼비는 한국전쟁 동안 원산을 중심으로 한 동해안 일대에서 북한군의 정보를 파악하고 화력유도, 유격전 등을 수행하다 산화한 통천 분들을 추모하는 기념비다.
기습적으로 전쟁을 일으키고 탱크를 앞세워 3일 만에 서울을 점령한 북한군은 초기 한 달여간 전장을 주도하였다. 그러나 UN군이 참전을 한 뒤 이내로 제공권과 제해권은 UN군이 장악하게 되었고 전쟁이 끝날 때까지 유지가 되었다.
백령도를 포함한 서해 5도는 물론 북한 남포 앞바다의 석호, 동해안의 원산이나 함흥 앞바다의 모든 섬들을 UN군이 장악하였다.
상륙작전을 선호한 맥아더 원수가 지휘하는 UN군이나 이를 대비하기 위한 북한군 입장에서는 서해의 남포와 동해의 원산은 전략적 관심지역이었으며 그 앞바다의 섬들은 작전적으로 매우 중요했다.
특히 원산상륙작전을 고려한 UN군은 원산~함흥 앞바다에 위치한 란도, 여도, 미양도에서 공세적 첩보활동 및 교란작전이 필요하였다. 이에 호응한 통천군 출신 애국청년들이 미 8군 산하 정보부대의 산하조직으로 유격 작전부대에 편성되어 작전에 참여하였다.
이는 UN군 10군단의 원산상륙작전을 보장하기 위한 매우 중요한 작전이었으며 임무수행 중 140여분이 순국하셨다. 이분들의 위국헌신을 기리기 위해 격전지였던 란도에 충혼탑을 세우고 전쟁 기간 충혼제를 지냈으나 휴전이 된 후 여건이 불가했다.
그 이유는 관리상 어려움을 이유로 한미 당국이 휴전선 이북 지역에 있는 UN군 관할 섬들은 서해 5도를 제외하고 모든 섬에서 군인과 거주자를 자발적으로 철수시켰다.
그런 연유로 란도 현지에서 충혼제를 할 수 없게 되어 국내에서 통천과 란도에 가까운 속초 영랑호 호반에 총혼탑을 세우고 그 혼령들을 추모하고 있는 것이다.
휴전 후 남포와 원산 앞바다의 섬들을 관할하기는 여러 면에서 어려웠을 것이다. 힘들었겠지만 계속 관리했으면 어땠을까? 지금 그리스와 터어키의 상황을 보면 이해가 된다.
1923년 터어키 독립전쟁 결과로 맺어진 로잔 조약에 의해 에게해의 모든 섬들은 그리스 영토가 되어 터어키 코 앞의 섬들도 그리스 영토이다. 최근에는 그 섬 인근에 대량의 석유와 가스까지 매장되어 터키 입장에선 너무 억울하다고 항변하며 군사적 시위를 하곤 한다.
그리스 입장에선 얼마나 쾌재를 부르고 있을까? 프랑스, 이탈리아 등 나토군의 엄호에 터어키가 함부로 결정적 군사행동도 못하고 있다.
NLL 관련 남북 간 분쟁 및 논란을 보면 만만치 않았겠지만 계속 관할하였으면 어떨까 상상을 해본다.
휴전 발효 시각 당시 실효지배를 인정하는 휴전협정 규정이 있기에 합법적 조치로 볼 수 있었는데... 적의 입장에서는 숨 막히는 일 아닌가? 우리가 전략적으로 주도권도 쥐었을 것이고... 하여튼 세상일은 생각이 지배한다! 생각을 생각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