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호 감상법

by 시냇물

동해안에는 아름다운 호수가 많다. 대부분 석호다. 석호(潟湖)란 해안의 만이 사주(모래더미)의 성장으로 바다와 분리된 호수를 말한다. 강원도 지역에 18개, 함경도 지역에 40여 개가 있다.


남한 쪽에는 화진포와 영랑호, 북한 쪽에선 삼일포와 동정호가 손꼽히는데 비록 크기는 작지만 이들과 어깨를 겨룰만한 호수가 DMZ내에 있는 감호(鑑湖)다.


특히 이 호수는 내가 군생활 첫 부임지인 고성 북방 무명고지에서 GP장을 할 때 매일 감시하던 임무지역이라서 지금도 눈에 선하다.


감호(거울鑑, 호수湖)는 바닷가 평지에 소나무로 둘러싸인 아담한 크기의 호수다(둘레가 3km). 맑고 잔잔해 그 이름이 붙여졌다 한다.


나무꾼과 선녀의 전설이 깃든 곳이기도 하며, 조선 명문필가 양사언도 집터를 마련하고 신선처럼 살겠다는 의지로 정자 이름을 비래정(飛來亭)으로 정한 것만 보아도 감호가 범상치 않은 호수임을 짐작할 수 있다.

이 호수가 예나 지금이나 호평을 받은 이유는 호수 뒤로 구선봉, 일명 낙타봉이라는 멋진 산과 조화를 이룬 것이 큰 이유 중 하나라고 본다. 바로 그 일대가 해금강의 빼어난 절경 중 한 곳이다.

GP장을 할 때는 이런 아름다움이나 운치를 살필 여유가 전혀 없었다. 그런데 감호가 군사분계선 바로 북쪽에 위치했기 때문에 수색정찰을 하며 두어 번 가까이 가본 적은 있다.


정자나 집터 이런 것들은 확인이 안 되었고 6.25 전쟁 말기 국군이 북한군과 격전을 벌렸던 월비산 전투지역이라 교통호 흔적, 녹슨 철모, 기관총 탄피들을 확인할 수 있었다.


GP 관측반에서는 호수 부근으로 접근하는 적을 추적 관리하는 데 여군들도 가끔 보였다. 대원들은 그 여군들이 감호에서 목욕하는지에 온통 관심이 집중되었었다. 그렇다면 선녀인데...


아쉽게 목욕 장면은 못 보았고 그녀들이 바로 옆 바닷가로 이동해서 해초를 건지는 장면은 여러 번 보았다. 비교적 대우가 좋은 전연(최전방) 부대라도 자급자족을 해야 하는 북한군이라 고되 보였다.

푸른 제복을 입고 첫 부임을 해서 6개월을 보냈던 그곳 무명 193 고지에서 빤히 내려다보았던 아름다운 감호! 분단으로 더 다가설 수 없음이 너무 아쉽다.


지난 설 명절 동안 통일전망대를 다녀왔다. 전망대에서 아내에게 초임장교 때 GP장 무용담을 처음 풀어놓았다. 내 군대생활 이야기에 관심이 없던 아내가 정성껏 들어준다. 말미에 당신이 그 선녀라 첨언을 하니 반색을 한다!


남북교류가 되면 지나가는 길목이라 눈 가까이 바로 볼 수 있는 감호! 언제쯤 가볼 수 있을까?


글을 마무리하다 재미있는 상상을 해보았다. 대한민국 경제번영의 주역 중 한 분인 현대 정주영 회장의 유명한 명언 '임자 해봤어?'가 감호와 관련 있지 않을까?


그의 고향이 감호와 그리 멀지 않은 강원도 통천군으로 감호를 한두 번 다녀갔을 꺼고 거기서 양사언 선생의 흔적을 보았으리라.

양사언의 유명한 시조에 답이 있다. 편안하게 감상하시기 바란다.


'태산이 높다 하되 하늘 아래 뫼이로다. 오르고 또 오르면 못 오를 이 없건마는 사람은 제 아니 오르고 뫼만 높다 하더라.'


'임자 해봤어?'가 이 시조에서 착안했다 하더라도 창조적 모방이고 그분이 온몸으로 실증해 주신 것이라 마음에 새겨들을 만하다.


#정주영 #통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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