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일전 아내와 속초 중앙시장에 들려서 장구경을 하다가 싱싱한 생고등어 여섯 마리를 만원에 샀다.
바닷가 시장은 조업상태에 따라 어종이 수시로 변한다. 겨울철이라 동해안에는 가자미, 양미리, 도루묵, 곰치는 흔하지만 예전 동해안 대표어종이었던 오징어랑 내 고향 시골밥상에서 귀했던 고등어는 생각보다 많지 않았다. 그런데 이번 출항에 고등어가 좀 잡혔나 보다. 싱싱한 고등어를 파는 좌판이 몇몇 보였다.
마침 아내가 몇일전 양양 5일장에서 사다놓은 시래기가 있어 그것과 함께 고등어 조림요리를 한다기에 무척 기대가 되었다. 사실 고등어는 나에게 특별한 느낌을 주는 생선이기에 더 그렇다. 그건 ’고등어 뒷다리‘라는 말 때문인데, 장모님이 나에게 붙여주신 별호였다.
장모님이 언젠가 우리부부와 편안한 자리에 함께 계실 때 ”엄서방은 고등어 뒷다리 같다“란 말씀을 하셨다. 충북 청원 현도 분이 셨는 데 성격은 음전하셨고 말씀도 별로 많지 않으셨지만 일곱자식을 헌신적으로 키우신 분이다. 그런데 배시시 웃으시면서 저 말씀을 하셨다.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그런 말씀을 하셨으리라 생각된다.
그런데 왜 생뚱맞게 ’고등어 뒷다리 같다‘라고 하셨을까? 혹시나 해서 사전이나 인터넷을 확인해 보아도 그런 말이나 표현은 없었다. 뭔가 창발적인 표현인데 제 머릿속에 잊혀지지 않는 단어였다! 뵐 때 마다 그 말이 맴돌았지만 여쭈어보지 못했다. 이제는 작고하셨는지라 더 여쭐 수도 없다.
고등어 뒷다리는 통통하게 살이 오른 고등어 즉 ’튼실(튼튼하고 실하다)과 원만’을 의미하는 말일 것 같은 데 ... 지금 부모된 입장에서 생각해보니 내가 지금보다 훨씬 젊었던 시절이라 몸도 꽤 단단했었고 둘이 열심히 아옹다옹 사는 모습을 보고 고마워서 그런 표현을 하신 것 아닌가 싶다. 그 말씀 뒤에는 고관대작이야 못되더라도 가정에 흔들림없이 금실좋게 잘살라는 함의가 있었고 그게 장모님의 진의가 아닌가 조심스럽게 유추해본다.
부부가 함께 살면 고비고비 수많은 굴곡이 있어 원만한 가정을 이루기가 쉽지않다. 지금도 종종 아내의 사소한 말 한마디에도 기분이 잡치고 통쾌한 말복수를 해주고 싶은 내마음을 억제하기 어렵다. 죽을 때까지 마음공부가 더 필요한 것이 인생인 것이다. 부처님 개 뒷다리를 귀히 여기듯이 살이 통통히 오른 고등어가 주는 편안함처럼 살면 그리 살 수 있을지 모르겠다. 돌아보니 장모님이 큰바위 얼굴이셨네!
오늘 아침에 아내가 맛깔스럽게 요리해준 고등어 조림을 먹으며 불현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고등어 조림을 먹으면 꽤나 행복한데 속초에서 너무 쉽게 구할 수 있어 그 행복이 반복되어도 행복할까? 혹시 밋밋한 일상이 되어가지는 않을까? 그러나 그건 괜한 걱정! 내가 먹는 고등어 조림에는 뒷다리가 있기에 ...
시래기가 곁들여진 생고등어가 자작자작 조려질 때 따뜻한 장모님 냄새가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