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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냇물 Feb 27. 2022

GP에서 지뢰제거 작업

오래전 이야기다. 건봉산에서 철책 통문 소대장을 하다가 졸지에 수색중대로 전속이 되고 GP장이 되었다. 대한민국 제일 오른쪽에 위치한 곳이었다. 당연히 동해안 해안이 가시거리 내에 있고 우리 작전지역이었다.   

  

GP에서 생활은 조금 긴장되었으나 솔직히 마음 편했다. 상급부대의 검열이나 작업, 청소 같은 부가적인 일들이 작전 수행이나 경계, 전투준비 같은 주업보다 더 짜증스럽고 부담스러운 일인데 이들로부터 자유롭기 때문이다.   

  

또한 마달리 중대장님글에서도 언급한 그분께서 확실히 믿고 위임해주며 불요불급한 일을  최소화시켰기 때문이기도 하다. 자체 경계, 수색정찰(주 1회) 및 매복(월 2회), 총기 및 탄약관리, 신상관리, 자체 급식 등이 내가 책임지고 해야 할 일들이었다.   

   

그러나 그곳에서도 신경이 곤두 솟을 정도로 긴장되는 일은 있다. 두 가지였다. 한 가지는 한밤에 GP 울타리 밖에서 기척을 느낄 때다. 무월광 상태라 확인도 어렵고 동물인지도 애매해 무작정 사격하기도 그렇다. 그런 소동이 있는 날은 완전 잠을 설친다. 적 특작부대들의 담력훈련으로 알려져 있었지만 명확하지는 않다.  

   

또 한 가지는 야간 매복을 하고 있을 때 갑자기 풀벌레 소리가 중지되는 경우다. 정말 긴장되는 순간으로 숨이 멎고 두려운 적막이 다가온다. 총기 멜빵 닿는 소리나 무전가 키 잡는 소리에  긴장이 더 고조된다. 밤의 평온을 알리는 풀벌레 소리가 돌아와야 안도의 숨을 쉰다. 그래도 동트기 전까지는 너무나 긴 밤이 남아있다.   

   

예상치 못했던 일이 생겼다. 여단장이 인접 GP 현장지도를 한 뒤 철책 밖 불모지대 안전통로를 최소 1m 정도는 되게 넓게 하라는 지시다. 불모지대에 크레모아 전도나 눈비에 노출된 지뢰 등 관리를 위한 안전로 보강작업인데 일리도 있으나 위험천만한 작업이다. 지뢰 탐지기는커녕 덧신도 없는 알보병이 한다는 것이... 신경이 날카로울 또 하나의 일이었다.    

중대장은 절대로 무리한 작업을 하지 말라 하시고... 기한은 다가온다. 대대에서는 작업이 안된 GP 철수는 순연시킨다 한다. M16 대인지뢰는 탐침으로 찾기가 그리 어렵지 않으나 문제는 플라스틱 발목지뢰다. 그 위험을 아는 병사들이 불모지대를 선뜩 안 들어선다.   

     

불모지대 앞에서 묘한 긴장의 침묵만 유지된다. 누룽지 작전 때 묘책을 발휘했던 선임하사를 바라봤다. 그가 앞으로 나선다. 나와 함께 먼저 작업을 시작했다. 이어서 분대장들도 나서고 고참들도 나선다. 피가 마르는 3일간 무사하게 안전통로를 넓혔다. 솔직히 설렁설렁 작업을 했고 다행히 지뢰는 몇 발 없었다.    

  

GP에서 철수를 하고 다다음날 제진에 있는 간이해수욕장에서 소대 휴양을 하고 있을 때 비행금지선 북쪽으로 헬기 한대가 날아 들어간다. 이상하다 생각하며 저녁 무렵 중대로 돌아오니 내가 있던 GP에서 지뢰사고가 났다 한다. 발목지뢰라서 사망은 하지 않았지만... 평생 불구자가 된 것 아닌가? 인접 중대지만 내가 인수인계한 곳이라 너무 미안했다. 작업 간 확인하고 묻어둔 발목지뢰 아닌가 오만 생각을 다해봤다.  

     

지금 같으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작업이다. 전문 작업요원이 탐지기, 덧신, 보호안경을 쓰고 한다. 곧 로봇이 대행할지도 모른다. 끔찍했던 작업이었다. 무사함에 신령님께 감사드린다. 전우들께 감사드린다.    

지뢰는 격렬한 남북대결의 흔적 중 하나다. 지금도 수백만발의 지뢰가 비무장지대를 중심으로 묻혀있다. 대표적 비인도적 무기인 지뢰가 없어져야겠지만 그만큼 상호 신뢰하고 조치를 할 수 있는지는 의문스럽다.


전쟁의 무서움을 아는 군인 출신이기에 전쟁이 더 무섭다. 전쟁을 막아야 한다. 유비무환으로~~ #멸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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