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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냇물 Mar 09. 2022

저진해변의 어로저지선

고성 통일전망대 앞 무명 193 고지 GP에서의 마지막 중요 임무였던 지뢰제거를 대과 없이 마치고 전방에서 철수하여 마달리 중대로 복귀하였다.    

  

GP에서 도보로 철수할 때 행군대열에서 소대원들끼리 처음 만나는 사람(군인 제외)이 여자일까? 아닐까?’에 대해 내기를 하던 모습이 기억난다. 세상과 단절된 공간에서 청춘들이 그렇게 살았다. 처음 만난 사람은 아쉽게 명파리 마을 입구에서 밭일을 마치고 귀가하는 할머니였다.   


마달리에서 군장을 풀자마자 곧 우리 소대는 민통선 부근 간이 해수욕장에서 소대 단체 휴양을 하였고, 몇일간 정비를 한 뒤 해안경계 임무수행을 위해 저진에 있는 소초로 투입되었다. 해안소초에서의 경계근무! 남들이 보기는 평안해 보이는데 관리자에게는 정말 부담스러운 곳이다.    

  

느슨해지는 소대원, 상급부대의 잦은 검열, 예측하기 어려운 민간 요소(여자, , 민원), 일상화된 경계와 작업, 후반야 근무로 인한 업무능률 저하! 특히 간성 북방의 저진소초는 바다의 민통선이라 할 수 있는 어로 저지선을 담당하는 임무까지 있는 곳이라 더 그랬다.     


어로 저지선은 어업 및 항해의 안전을 목적으로 접적해역에 정한 어업규제선으로 이 선 북쪽에서 어업활동을 할 수 없다. 우리 소초 바로 앞이 어로 저지선이다. 이 어로 저지선은 그 뒤로 안보상황을 고려 위치를 조금씩 조정하였으명칭도 어로 한계선, 어로 허용선으로 변경되었다.  

민간인의 어로(漁撈) 활동을 저지하는 것은 만만치 않은 일이다. 이 선 북쪽에서는 어로활동을 못하는 지역이라 좀 과장하면 물 반 고기 반인 바다였다. 한 마리라도 더 잡으려는 어부들은 기를 쓰고 월선을 하려고 하고... 특히 성어기에는 더 그렇다.     


소초에서는 어로 저지선을 넘는 선박에 대해서는 매뉴얼에 따라 경고방송, 경고사격 순으로 통제를 하는 데 쉬운 일이 아니다. 또 바다 위라 명확하게 선을 그어 놓은 것도 아니고...     


날이 조금 따뜻해지면 해녀들이 작은 배를 타고 와서 저지선 근방에 와서 물질을 한다. 여러 차례의 경고방송에도 반응이 없으면 어쩔 수 없이 절차에 따라 경고사격을 하는데 총알의 바다에 입수각이 42도 미만일 경우 물속으로 들어가지 않고 튀는 현상이 생긴다. 일종의 도비탄이다. 안전을 고려하지만 항상 예측할 수 없는 파도가 치는 바다라 알 수 없다. 제일 걱정되는 부분이었다.      


그리고 그 당시는 임무에 급급해서 깊이 생각을 못했지만 어쨌든 우리 부모형제를 향해 총질을 하는 것 아녔던가? 참으로 위험천만하고 고약한 임무였다. 지금이야 해경이 어선을 통제해 이런 부담이 없지만...    

  

사람들의 손길 하나 없는 깨끗한 저진리 해변 소초에서의 생활! 낭만은커녕 어로 저지선 관리와 야간 경계, 그 외에 잡스러운 일 때문에 허겁지겁 보낸 기억만 남았다. 매주 일요일 오전 멀지 않은 명파초등학교에서 중대 본부팀과 축구하던 것이 유일한 위안이었다.      


확인해보니 그 초등학교가 학생이 줄어 학생수 6명의 분교가 돼서 존재한다니 그래도 반갑다. 통일의 기운이 이곳에 넘쳐 옛날처럼 학생수가 늘어나고 그 운동장에서 전우들과 한 게임했으면 좋겠다. 저진해변이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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