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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냇물 Feb 22. 2022

양양 기사문에 38선이 흐르네!

강릉에서 양양방향으로 7번 국도를 타고 오다보면 기사문 항에 오기 직전 좀 낡은 휴게소가 보인다. 이름이 38선 휴게소다. 38선 표지석도 진입로 초입에 낮은 곳에 있기에 관심을 갖고 보지 않으면 발견하기 어렵다. 또한 38선이 무슨 의미인지도 모르는 이들도 적지 않다.      


38선은 2차 세계대전 막바지인 1945년 8월 6일 히로시마에, 9일 나가사끼에 원폭 공격을 받은 일본이 비밀리에 항복 의사를 전해온 후 미국소련군의 남진을 저지하기 위해 급히 설정한 선이었다.  

   

워싱턴에 위치한 미 국방성 소속 본스틸 대령이 한국지도를 보고 한반도의 중간을 지나며 그 중심인 서울과 서울의 관문인 인천항이 포함되었기에 기안을 하고 미국 수뇌부가 승인하였으며 소련이 동의해서 탄생한 일본군 무장해제를 위한 미소 양국 군대의 작전 관할 구분선이다.   

      

38선이 남북 분단의 단초가 되었음은 분명하다. 그러나 이 조치가 없었다면 대일전 참전 명분으로 8월 9일 두만강을 넘은 소련군과 그 시각 오키나와에 있던 미군의 한반도 진군 레이스의 결과는 불문가지다. 우리나라는 소련군 통제하 일본군 무장해제가 되고 군정이 시작되었을 것이다.


그러면 그 뒤에 어떤 나라가 만들어졌을까? 하여튼 이 38선은 남북 분단은 물론 범세계적 차원에서도 동서 이념대결의 상징이 되었다.   


5년이 지나서 6.25 전쟁이 터진 뒤, 후퇴했던 국군은 UN군과 함께 반격을 하여 9월 하순 서울을 포함하여 실지를 거의 회복하였다. 우리 국민의 북진 열망은 강했으나 미국은 중국의 거듭된 경고로 신중했는데 양양 기사문 해변에서 국군의 묘책으로 38선 돌파의 명분을 얻고 북진의 전기를 마련하였다.

         

현 휴게소 지역의 낮은 우리 관할지역을 감제하는 적 벙커가 잔교리 소하천 건너 맞은편 능선에 있어 이를 제압하겠다는 명분으로 101일 경계선을 넘어 그 고지를 탈취한 뒤 그 사실을 보고하여 38선 돌파를 기정사실화 시켰다.      

 

그 부대는 3사단이었다. 이 공로를 높이 평가한 이승만 대통령은 3사단 전장병에게 1계급 특진을 시켰고, 그날을 기려 국군의 날이 제정되었다. 우리 국민이 통일의 염원이 얼마나 컸는지를 상징하는 사건이다.  

   

기사문 해변을 돌파한 3사단은 질풍노도처럼 7번 국도를 따라 공격을 하여 10일에는 원산까지 진출하였다. 북진을 거듭한 국군 6사단은 10월 말 압록강 물을 수통에 담아 이 대통령에게 보냈고, 통일이 눈앞에 보였으나 중공군의 개입으로 전쟁은 새로운 양상으로 변하여 결국 오늘에 이르렀다.

 

한반도 현대사의 중요한 현장이었던 38선 표지석 앞 기사문 해안은 요즘 젊은이들의 서핑 천국으로 변했다. 그들 할아버지들의 희생으로 얻어진 자유 덕분이다. 요즘 젊은 세대의 안보의식을 탓하는 이들도 있지만 나는 단호히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2002년 연평해전시 그 당시 나약하다는 젊은이들이 보여준 용감한 행동이 답을 해준다. DNA가 계속 흘러 서핑을 즐기는 이들이 소중한 자유를 지키고 향유할 것이라고...    

분단과 이념대결 75! 체제경쟁은 끝났지만 통일의 길은 아직 잘 안 보인다. 김씨 3대 세습체제가 정리되어야 한반도의 진정한 평화와 통일의 기회가 올 것 같다. 언제까지 기다려야 하나?   


방금 브레이킹 뉴스로 푸틴이 소련군에게 우크라이나 진입명령을 내렸다고 보도가 된다. 전쟁의 도화선에 불이 붙은 샘이다. 한반도에는 저런 비극이 다시는 없어야 하는데...6.25 전쟁의 폐허 속에서 우리가 피땀으로 이만큼 이루었다. 지킬만한 가치가 있는 아름다운 금수강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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