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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냇물 Jan 12. 2022

소가 똥을 싸놓은 고개에 가봤니?


소가 똥을 잔뜩 싸놓은 고개마을에 가봤니? 나는 오늘 속초에 사는 친구 부부와 함께 그곳에 다녀왔다. 거기에 또 한 명의 친구가 살고 있었기 때문이다.     


가기 전에 아침 일찍부터 아내와 함께 부산을 떨어 속초중앙시장에서 줄을 제일 길게 서야 하는   '강원도맛걸리빵집'에서 술빵 두 개를 사고 '만석닭강정집'에선 순살닭강정 한박스를 샀다.      


지난주 속초시민 자격으로 미시령 패스를 발급받았기에 울산바위가 평풍처럼 펼쳐진 미시령 터널길로 들어섰다. 그리 멀지는 않았다.


진부령 길 정상을 넘는 곳에서 부터 도로포장이 한창이다. 조금 더 내려가니 목적지 부근이다. 이미 산은 검푸르고 계곡은 흐른다. 그런데 소들은 안 보인다!   

   

우리가 간 곳은 소똥의 재미있는 스토리가 전해오는 소똥령마을이다. 


소똥령은 진부령 길을 연한 고성군 간성읍 일대로, 지명의 유래는 ‘팔러 가던 소들이 고갯마루에 있는 주막 앞에서 똥을 많이 누어, 산이 소똥 모양이 되었다는 설과 진부령의 여러 고개 중 동쪽의 작은 고개라는 뜻으로 소동령(小東嶺)이라 부르던 것이 자연스레 소똥령으로 바뀌었다는 두 설이 있다.   

   

이치로 보았을 땐 후자가 더 설득력 있어 보이지만 나는 당연히 전자의 소똥연유설을 전폭적으로 지지한다.


얼마나 정겹냐! 마을 동리 곳곳마다 나름의 지명이 있고 사연이 있지만 소똥령마을도 뽐낼만하다. 거기에다 반가운 친구 정녕이네가 있어서 더 그렇다!   

  

소똥령마을을 살펴보니 백두대간이 잠시 쉬어가는 진부령 꼭대기에서 발원한 맑은 물방울들이 시냇물을 이루어 진부령 길과 함께 북으로 향해 내닫고 있고 마을은 드문드문 보인다.


계곡은 계절 따위는 신경 쓰지 않는다. 그저 흐르는 대로 흐를 뿐이다. 인간군상들이 지지고 볶고 할 뿐이다. 아래쪽에 군부대 막사도 보인다. 우리나라 최북방에 위치한 포병부대라던가...     

친구의 집은 마을과 좀 떨어져 계곡이 얕아지기 시작하는 초입에 자리 잡았다. 꽤 오래전에 급매로 샀다는데 정성을 깃들인 흔적이 여기저기 역력했으나 손 볼 일이 만만치 않아 보인다.


그게 시골살이인 모양이다. 방이랑 허드레 공간을 정리하는 모습이 민박 손님을 받으려는 가 보다. 올 성수기 때는 가능할까?   

   

하여튼 농한기라 친구 내외와 부담 없이 수다를 떨었다. 평창에 가서 한옥학교 교육받은 이야기(대목수 과정, 3개월), 한밤중에 공현진항에 가서 도루묵 잡기, 초등학교 방과 후 교사하기(목공예) 등등 친구의 무용담에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친구가 여기 온 지 7년이 넘었으니 동해안살이 초고수님의 가르침이다.      


사실 내가 이곳에 정겨움을 느끼는 또 다른 이유는 군생활 첫 부임지가 바로 이 부근이었다. 여기서 채 10km도 안 되는 간성읍 해상리로 88여단 3대대 11중대 소속이었다.


지금은 율곡부대로 바뀌었다. 무장구보 측정하며 헤매던 기억, 주구장창 사격장 작업하던 생각, 거진으로 살짝 도망가서 먹었던 한치회의 맛...


지금 돌아보니 전체적으로 뭔가 알 수 없이 다가오는 하루하루가 긴장되었고 힘들었던 시절이었다. 뭐 특별히 본때 나게 잘한 것도 없고, 사람이 그리웠고, 시간의 흐름도 너무 지겨웠던 기억만 선명하다.

     

지금도 군생활을 시작하는 젊은이들도 이와 비슷한 생각을 하겠지? 알지 못하는 것에 대한 막연한 불안! 이를 어쩌나? 해결책이라 하긴 그렇고 서로 소통하고 공감해주고 적시에 필요한 정보제공이 좋을 것 같다. 리더십도 그래야 할 것 같다. 부부관계도 마찬가지다. 생각해보니 디지털이 이를 위해 뭔가 할수 있을 것 같다.


육군 통신학교의 구호가 '통하라'인데, 즉  통즉생(通即生) 차즉사(遮卽死) ‘통하면 살고 막히면 죽는다라는 평범한 진리가 답인 것 같다. 군대도 사람 사는 곳이다.

     

각설하고 하여튼 오랜만에 입이 얼얼하게 웃고 즐기다 보니 벌써 소똥령 계곡에 그늘이 들어 집으로 발길을 돌려야겠다.       


늘 푸른 소똥령은 하늘과 물이 맑다. 오염에 찌든 도회인들을 깨끗이 씻어준다.


백두대간 동녘이라 해가 짧다. 긴 밤 도라도란 이야기하며 보내면 안성맞춤이다.


인적이 드문 이 마을은 사람이 그립다. 만나면 반가운 사람들이 모여사는 곳!


사람사는 냄새가 나는 아름다운 소똥령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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