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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냇물 Apr 06. 2022

참으로 난감했던 문어잡이

고기를 잡으로 바다로 나서는 일은 설레지만 조금 두렵기는 하다.      


설렘은 만선의 꿈이다. 어부이든 어부가 아니든 고기를 잡으로 항포구를 나서는 자들은 모두 그 꿈을 안고 나선다.


두려움의 대상은 바다의 날씨 특히 파도가 걱정된다. 요즘 기상예보가 예전보다 정확하다 하지만 슈퍼컴도 정확히 알 수 없는 게 날씨다. 그리고 현장에서의 바다 날씨는 예보보다 훨씬 격하게 느껴진다. 


난생처음 피문어 잡이 낚싯배를 탔다. 육군 출신이고 해전의 경험이 전혀 없는지라 조금 긴장이 된다. 새벽 일찍 집을 나서기 전에 멀미약을 먹고 두툼한 겨울옷으로 무장을 했다.


이윽고 여진족을 소탕하려는 기세로 아야진항으로 향한다.(아야진 지명이 여진족의 지명이 아닐까 하는 상상에서...)     


아야진항에는 이미 전사 몇 명이 익숙한 몸놀림으로 어구를 챙기며 출전준비에 분주하다. 승선명부 작성을 한 후 배에 올랐다. 좌현 5번 어대다. 야구로 치면 중심타선인 격이다. 큰 걸로 한방 날려야지...     

  

6시가 조금 넘어 내가 탄 백호호는 아야진항 내해를 가르며 출발했다. 방파제 끝에서 본 바다를 만나자마자 북쪽으로 방향을 잡아 속도를 높인다. 


양현으로 부서지는 파도의 잔해들이 좌현 중간지점의 나를 위축시킨다만 의연한 척 바다를 응시하며 버틴다.     

  

북으로 한참을 올라온 우리 배가 자리를 잡는 모양이다. 전방에 조그마한 바위섬이 보이고 뒤로 멀지 않은 곳에 경계초소 같은 건물이 눈에 들어온다.


‘뚜’ 소리와 함께 모두들 부산하게 낚싯줄을 투척한다. 나도 덩달아 따라 한다. 계측된 수심은 28m, 고패질은 하지만 한참이나 소식이 없다가 이번엔 묵직하다.


팽팽해져 더 당겨지지 않는다. 헛방이다. 낚싯바늘이 바위에 걸린 모양이다.

바위가 많은 곳에 문어가 서식하기에 바위 리스크를 감래하며 낚시질을 해야 하고, 이게 중요한 테크닉인데 벌써 두 번 연달아 줄을 끊어먹었다.


줄을 한번 끊으면 봉돌 1, 에기(가짜 미끼낚시) 3, 반짝이 1개를 손실하니 아깝기도 하지만 그것보다 자존심이 상해 짜증이 난다.      


1시간이 넘었는데 내가 속한 좌현 쪽에는 소식이 없다. 이윽고 ~’(조업중지 신호). 선장이 뱃머리를 남으로 돌려 새로운 낚시 포인트로 달려간다. 한참을 달려 내려간 곳은 아야진 항과 멀지 않은 곳인데 분위기가 이상하다.    

  

낚싯배보다 더 작은 어선들이 여기저기 보인다. 해경선도 보인다. 우리 배가 낚시를 시작하는데 어선들 숫자가 자꾸 증가한다.


대략 작은 어선이 20~25여 척이며 해경선이 5, 문어 낚싯배가 6~7척이다.


어선에는 붉은 플래카드가 달려있고, 우리 배 주변으로 접근을 해 은근히 낚시를 방해한다.


어민들이 문어 낚시 반대 해상시위를 하는 것이다. 난생처음 희한한 광경을 현장 목격했다.   

해경들은 어민들에게는 낚싯배 조업을 방해하지 말라 하고, 낚싯배에는 600g 미만의 작은 문어는 잡지 말라고 계도하며, 어민들이 신고한 옆 낚싯배에 올라가 문어 크기를 검사한다.    


그러고 보니 낚시 배에도 플래카드가 걸려있고, 주장이 있다. 문어잡이 어민단체나 낚시 연합회나 나름의 주장들을 하는데... 이런 팽팽한 갈등에 답이 있을까? 갈등 해소가 정치이고 민주주의의 힘이라는 데... 답이 있겠지!  

  

난감한 상황 속에 시간은 지나가건만 문어는 기척이 없다. 낚싯줄을 감아놓고 좀처럼 보기 힘든 해상시위 광경과 어부들의 면면을 보며 생각해 본다.


저분들 중 낚싯배 선주와 동네 친구도 있어 오늘 저녁 가자미 물회에 소주 한잔 같이하지 않을까?   

   

우리 배 선장이 고민하다가 배를 다시 북으로 향한다. 다른 낚싯배도 따라오고 시위 어선 이십여 척도 그 뒤를 맹렬히 따라온다. 해경도 덩달아 따라온다. 진풍경이다.


여기서도 계속 방해를 하니 짜증이 난다. 낚시가 불법 어로행위가 아니며 적지 않은 돈과 시간을 투자한 낚시꾼들도 할 말이 있는데(참가비 8만 원, 어구 6만 원, 기타 2만 원).   

  

지루한 실랑이가 계속되다가 오전 11시가 조금 넘자 어선에서 철수!’란 지령 소리가 들린다. 주변 어선들이 한두 척씩 사라지기 시작한다.


어선들이 가버리자 해경선도 따라 내려간다. 이윽고 동해바다 문어 어장에 평온이 찾아왔다.      


선장이 애써 좋은 포인트로 배를 이리저리 옮겨준다. 우리 배 좌현에서도 문어 잡히는 소리가 들린다. 내 앞에서도, 뒤에서도... 나는 계속 헛스윙이다.


중심 타석 체면이 말이 아니다. 고패질 요령도 다르지 않는데... 어렴풋이 느끼는 것은 내 앞뒤로 문어를 잡히는 낚싯대가 내 것과 조금 다르다는 사실이다.      


그것은 마치 응원할 때 사용하는 수술같이 길며 조금 조잡하게 보이는 풍성한 반짝이를 부착한 점이다.


! 저게 노하우인가. 앞 좌석에선 두 마리, 뒷 좌석에선 세 마리를 잡았고 나를 포함 다른 다섯 명은 꽝이었다.


문어 다섯 마리는 다 내가 조잡하다고 생각한 반짝이 낚싯대 두 대에서만 잡혔다. 할 말이 없다. 졌다.     


선장이 미안하던지 약정된 시간보다 30분 정도 더 시간을 주었지만 의욕을 잃은 나에게는 별 효과가 없다.


이윽고 뚜~~뚜 철수를 알리는 경보소리가 들린다. 낚시를 간추리니 배는 죽도를 지나, 백도, 가도를 거쳐 모항으로 향한다.      

EXCITING 한 하루였다. 바다의 난폭자 대왕문어를 기필코 잡겠다는 꿈은 잠시 보류하고 다음 기회를 도모해야 할 것 같다.


하여튼 단순해 보이는 낚시질에도 노하우가 있고 곳곳에 애로가 있구나를 몸으로 느낀 날이다. 인생살이 만만한 게 있던가?


그래도 고단함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먼길을 가는 것이 인생이지! 좋은 날도 힘든 날도... #KEEP GO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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