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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냇물 Apr 23. 2022

만해는 출가하고, 일해는 가출해 온 백담사

용대리 백담마을이 많이 변했다. 상가들을 지나자 커다란 주차장이 보이고 중형버스가 여러 대 줄지어 기다린다. 내설악으로 가려면 저 버스를 타거나 걸어서 가야 한다. 주차료에다 버스비 까지... ‘시골 인심 야박해졌구나!’ 투덜대며 버스에 올랐다.      


좁은 외길은 중형버스가 지나가기 버겁. 계곡이 점차 깊어지고 물은 변함없이 맑다. 혹간 보행로가 보이나 길은 갈수록 사나워진다. 안전벨트를 확인하고, 버스비가 아깝지 않다고 스스로를 위안해 본.     

  

이윽고 절 초입 다리목! 내설악 깊은 계곡에 이렇게 편안한 터가 있어 큰 절이 자리를 잡다니... 대학시절 백담사를 경유해서 봉정암에서 하루밤을 보낸 뒤 소청봉에서 아침 일출을 보고 신흥사로 향했던 기억이 아스라하다. 산은 변한 게 없는 데 내 모습이 몰골이네.      

 

절로 들어가기 위해서 예전에는 징검다리로 건넜었는데 이제는 반듯한 대리석 교량이다. 일주문 자리가 생소한데 절 앞을 지나는 물소리는 낭랑하다. 교량에서 본 절의 모습은 정리정돈이 잘 된 군부대 막사 같.

다리 주변에는 수많은 중생들의 염원을 쌓아 놓은 돌탑들이 즐비하다. 한국인들의 돌 탑 쌓기는 유난해 보인다. 모두 종교적 행위라고 단정하기 어렵다. 놀이에 가까운 경우도 많다. 토속문화적 관점에서 바라봐야 하지 않을까?       


백담사! 절 이름이 독특해 확인을 하니 ()’못이나 소를 의미하는 데, 설악산 대청봉에서 여기까지 오는 길에 작은 연못이나 소가 많으며, 여기가 100번째 지점이라 한다. 절 이름사연도, 읽었을 때 운율도 담담하다.  

  

사실 이곳에 온 이유 중 하나가 연희동 집을 나와 이곳에 자의 반 타의 반 유배생활을 한 전직 대통령이 기거했다는 것에 대한 궁금증도 내심 있었. 어느 거처에 기거했을까? 어떻게 살았을까? 전혀 흔적이 보이지 않는다.      


거처하던 곳(화엄실)과 생활용품을 모두 없앴다 한다. 뒷맛이 씁쓸하다. 하여튼 그분의 호가 일해(日海)이고 연희동 집을 나와 이리로 왔으니 일해의 가출인 샘이다.     


반면 예상치 않았던 분을 만났다. 만해(卍海) 한용운 선생이다. 26세에 출가하여 이곳 백담사에서 승려가 되셨다 한다. 3.1 운동 대표로 활약은 익히 들은 바 있지만 불교혁신 운동, 불교 대전 간행, 불교 대중화 등 큰 활약을 하신 분이다.      


남양주에 근무할 때 망우공원 사색의 길에 위치한 이 분의 묘소에 가보고 이런 국가유공자 분을 좀 더 정중하게 모시지 못했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었는 데, 이곳 엉성한 기념관을 보니 오늘도 같은 마음이 든다.  

    

그래도 어설픈 디스플레이지만 곳곳에서 이 분의 행적과 향취를 느낄만하다. 선구자의 삶을 살았구나! 기념관을 나오면서 입구에 새겨진 예쁜 시 알 수 없어요!’를 오랜만에 다시 한번 감상하며 힐링을 받았다.     


하여튼 한 분은 가출해서, 한 분은 출가해서 이곳과 인연을 맺었다. 설악의 대자연은 두 사람에게 포용의 안식과 생명의 에너지를 주었지만 두 사람은 저승으로 갔다. 유한한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생각하게 해주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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